카뮈는 부조리를 이성을 통해 세상에서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인간과, 아무리 노력해도 의미가 찾아지지 않는 세상 사이에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부조리가 영원과 순간 사이에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영원을 바라지만 영원한 것은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 영원하지 않은 것들을 영원하길 바라며 견디는 것은 비이성적인 사고이며, 비약이다. 하지만 이러한 비약 없이도 우리는 사라져가는 것들을 견딜 수 있을까.
이러한 순간들은 그것들의 필멸성을 인식하고 받아들여야 견딜 수 있다. 영원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 역설적이게도 이 순간을 영원에 가까워지게 해준다. 물론 그마저도 영원은 아니지만, 영원하지 않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오히려 그 순간의 지속과 기억의 시간을 증폭시켜 준다. 반드시 끝이 나는 순간들이고 사라지는 기억들이기에 그 순간을 더욱 소중히 하게 되고, 그와 같은 순간을 또 다시 만들기 위해 노력하게 한다.
이러한 부조리는 의미의 유무가 아닌 의미와 의미 사이의 간극에서도 존재한다. 나와 그의 서로에 대한 의미의 차이도 이러한 부조리의 일종이다. 서로의 의미가 완벽하게 동등한 관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우리는 누구를 만나든 부조리를 안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그를 기억하지만, 그는 나를 잊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나 또한 언젠간 그를 잊게 될 테니까. 동등하지 않은 의미를 지닌 관계일지라도 언젠간 그 의미마저도 끝이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저 살아가야 한다. 이러한 부조리들은 소나기처럼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이러한 부조리들을 인식을 하고 외롭더라도 웃음 지을 수 있다면 그것이 나의 길일테니까. 잊을 수 없을 것만 같던 기억도 점점 희미해지고 있듯이 결국 모든 것은 끝이난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러한 부조리를 우리 속에 품은 채 부조리한 존재로서 삶을 영위해야 한다. 물론 그것도 아무 의미가 없겠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