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의 삶이 영원히 반복된다 하여도 나의 삶과 영원을 긍정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어쩌면 영원회귀를 긍정하는건 나의 심장 박동 소리를 내가 듣는 것과 같지 않을까. 사람이 자신의 삶을 극도로 부정하고 혐오할때 자살이라는 선택을 하곤 한다. 그들은 자신의 심장박동 소리를 듣는 것이 고통스러울 것이다. '왜 이 심장은 아직도 뛰고 있는거지? 난 이 심장을 멈추게 하고 싶어. 더 이상 나의 심장박동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세상은 비극으로 가득하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피할 수 없는 비극들을 가지고 태어난다. 정해져있는 비극들을 겪지 않고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어차피 겪어야 할 비극이라면 겪을 수 밖에 없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비극을 겪는 것만이 비극을 극복하는 일이니까. 그렇다고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비극들을 단지 기다리기만 하며 슬퍼해야 할까?
어느 순간 희망이라는 것을 가지는 것이 어색해지고, 두려워졌다. 희망은 언젠간 좌절될 것이니까, 결국 내가 겪을 수 밖에 없는 비극만이 나에게 닥칠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나에게도 분명 희망이라는 것이 존재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의 나는 비극이 다가올 것을 몰랐던 것일까. 한때 나는 이 곡 들으며 희망을 노래했다. 언젠가는 온 세상이 나의 노래를 부를 것을 꿈 꿨다.
아직 나의 심장이 뛰고 있고, 세상의 종말이 아니라는 것은 비극 또한 끝이 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삶 가장 어두운 순간에도 심장은 계속해서 뛰고 있다. 비극이 끝나고 다음 비극이 다가올 준비를 하더라도, 우리에겐 그 사이의 시간이 있다. 우리는 비극과 비극 사이를 아름다움으로 채울 수 있다. 그것이 희망이다. 희망이란 것은 비극을 겪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아니라, 우리가 겪어야 할 비극과 비극 사이를 아름다움으로 채우는 것이다. 삶 속에서 비극에 대한 아름다움의 비율을 높이는 것이 바로 희망이다. 나의 심장이 멈춰 버린다면 나의 삶은 결국 비극이 더 많은 삶으로 남게된다.
영원히 반복되는 나의 삶을 긍정하기 위해서는 비극과 비극 사이를 어떻게 채우는가가 결정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이 비극의 순간이든, 아름다움의 순간이든, 아직 나의 심장이 뛰고 있다면 충분히 아름다움을 늘릴 수 있을거라고. 그렇기에 자신의 심장이 뛰는 소리를 스스로 들을 수 있고, 그것이 나를 고통스럽게 하지 않을 수 있다고. 내 심장을 멈추게 하지 못한 비극은 단지 나를 강하게 할 뿐이다. 그러니 나는 나의 심장 소리를 듣고, 그것을 긍정하고 사랑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내 삶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