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처참했던 1시간 23분
1999년 6월 5일, 초여름의 지열이 달궈지기 시작하던 그날을 나는 잊지 못한다. 그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뜨거웠던 10km였고, 동시에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굳게 맹세한 날이기도 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나의 최애 취미는 검도였다. 1996년 취직 후, 월급을 받으면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버킷리스트가 바로 검도였다. 호구를 쓰고 죽도를 휘두르는 그 서늘하고도 묵직한 매력에 빠져 평일은 물론 주말까지 도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때의 나는 나름대로 ‘운동 좀 하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이 하늘을 찔렀다.
그런 내 앞에 마라톤이라는 낯선 세계를 들이민 분은 대학 시절 은사님이셨다. 제자들과 산을 타길 즐기시던 교수님은 어느 날 마라톤에 심취하시더니, 급기야 ‘진주시민마라톤대회’라는 판을 직접 깔기에 이르셨다. 1회 대회 때는 소식을 몰라 스승님의 열정에 힘을 보태지 못했다는 부채감이 있었다. 그래서 2회 대회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실험실 맏형으로서 일종의 ‘의리’를 발휘하기로 했다.
“행사 진행은 후배들에게 맡기고, 나는 직접 뛰겠노라.”
그것이 얼마나 무모한 자신감이었는지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회 당일, 공과대학 1호관 앞은 제법 축제 분위기였다.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번쩍이는 마라톤 복장의 고수들 사이에서, 나는 검도로 다져진 체력 하나만을 믿고 출발선에 섰다. 신호 총소리와 함께 경찰의 통제를 받으며 학교 밖 도로로 나갈 때까지만 해도 기분은 상쾌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고등학교 체력장 이후로 처음 마주한 ‘장거리 달리기’는 검도와는 전혀 다른 괴물이었다. 얼마 가지 않아 푹신한 운동화 바닥에서 타오르는 듯한 열기가 올라왔고, 땀은 눈을 가릴 정도로 쏟아졌다. 무엇보다 나를 당황하게 한 건 통제 불능이 된 호흡이었다. 폐가 찢어질 듯한 통증 앞에 자존심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반환점도 돌기 전, 나는 걷기 시작했다. 내 곁을 지친 기색 없이 스쳐 지나가는 주자들의 뒷모습이 경이롭다 못해 외계인처럼 보였다. 발바닥이 너무 뜨거워 급기야 운동화까지 벗어 던지고 맨발로 걷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교문에 다다랐을 때,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지켜보는 눈들이 무서워 마지막 1km를 억지로 쥐어짜듯 뛰었지만, 시계에 찍힌 숫자는 냉혹했다.
10km 최종 기록: 1시간 23분.
나중에 확인해보니 뒤에서 2등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축구 선수였고, 운동회 때마다 반 대표 릴레이 주자로 트랙을 누비던 나의 화려한 과거가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1km 이상의 달리기에는 젬병이라는 사실을, 20년 넘게 잊고 살았던 것이다.
그날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었다.
‘내 인생에 마라톤은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다시는 뛰나 봐라!’
하지만 인생은 참으로 알 수 없다. 그 처참했던 1시간 23분이, 앞으로 내 20년 인생을 달리게 할 연료가 될 줄은 그때의 나는 꿈에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