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돌아봐도 박사 졸업은 기적 같았다. 은혜 말곤 설명할 길이 없다.
통합8년차가 되고 나니 더 이상 새로운 주제를 찾아 연구해서 졸업할 여유는 없었다.
어떻게 보면 내가 대학원 생활에서 가장 심하게 실패한 부분인데, 부지런하지 못해서 핫해질만한 연구 주제를 빨리 정하고도 결과물도 못 내고 시간만 낭비했다는 것이다. (기회가 몇 번이나 왔는데 잡지 못했다는 건 정말 내가 최고로 반성해야되는 부분)
물론 말은 이렇게 해도, 실제 생활에서는 여유를 부릴 수가 없었다. 이제 와서 자퇴네, 휴학이네 할 수 없었다. 자퇴는 너무나 아까웠고, 휴학은 현실적으로 휴학 기반에 생활할 기반을 마련할 방법이 없었다. 아버지도 곧 은퇴를 하시는 마당이라 경제적으로도 더 기댈 수는 없었다. 결국 지금 상황에서의 최선은 어떻게라도 졸업을 빨리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조각모음을 통해서, 어떤 측면에서는 억지 아닌가라고 할지도 모르는 논문 주제를 잡아서 (A-C'' 정도?) 어떻게든 학술지에 낼 논문을 써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조각모음이 꽤나 걸렸던 탓에, 나는 통합9년차 여름에 겨우 논문을 마무리하였다. 사실 어떻게든 마무리를 해서 학술지에 투고했다는 자체가 중요했다. 심사가 되고 게재승인이 되야 디펜스를 진행할 수 있기 때문.
(재학연한 연장을 한 번을 더 진행해서 교수님께 또 욕을 먹은 것은 덤.)
어떻게든 억지로 디펜스 시작하기 전에 학술지에 게재를 시키기는 했다. 이게 됐다는 거부터가 사실 은혜이긴 하다. 일반적인 심사 기간을 고려한다면 거의 4개월 이내로 끝냈다는 것인데...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나의 두번째 실책은 학위논문 준비를 안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보통 학술 대회 (컨퍼런스)나 학술지 (저널)에 논문을 내는 것과 별도로 학교에서 요구하는 형식의 학위논문 작성이 필요하다. 그런데 학술지 논문을 9년차 여름에 완료했으니, 학위 논문이 준비되어있을리는 전혀 전혀 없었다.
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하자마자, 나는 조각 모음에 영끌에 영끌을 더해 어떻게든 학위논문의 형태를 띤 누더기를 하나 만들어내기는 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해도 억지스러운데, 교수님들이 이걸 모를 리는 없었다. 그래서 디펜스 때 모든 교수님께 폭풍으로 까였고, 이 상태로는 싸인을 해 줄 수 없다고 다시 써오라는 말을 듣고야 말았다. 디펜스를 하고 났는데 후련한게 아니라, 이게 지금 내가 직면한 현실이구나 하고 공포에 휩싸였다.
디펜스를 하고 나서 학과사무실에 졸업 승인을 받으려면 남은 시간은 1주일 반 정도. 그렇게 나는 눈물의 대장정을 시작했다. 하루 두시간만 자고, 실험 데이터 보강하고, 논문 보강하고의 무한 반복.
당시 커미티 중 교수님 한 분이 감사하게도 나의 수정본을 계속 리뷰해주셨고, 또 연구실 후배들의 피어 리뷰에 힘입어 나는 결국 모든 커미티 교수님들께 싸인을 받을 수 있었다. "내용이 완전 훌륭하진 않지만, 너가 노력한게 보여서 싸인해주는 거다"라는 말과 함께.
사실 '여름에 제출하고 나서 학위논문에 4개월이면 그렇게 시간이 없는 것 같지는 않은데?'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회사 채용 프로세스와 학위 논문 준비를 동시에 진행하다 보니, 4개월은 그리 여유로운 시간이 아니었다. 학위논문만 쓰기도 바쁜데, 회사 가서 면접 보고 코딩테스트하고 해야 하니 너무나도 어지러웠다. 그래서 다른 채용 프로세스는 병행했지만, 끝내 기술면접은 디펜스 끝나고 진행시켜달라고 요청해서 그나마 막판에 디펜스 준비할 시간은 있었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
하지만 인간은 상황이 되면 초인의 힘을 발휘하더라. 채용 프로세스도 무사히 진행했고 (코딩 테스트 합격까지), 고생고생해서 무사히 박사 학위 논문도 승인되었다. 이제 남은 건 기술면접이었다. 내가 연구한 내용들+산학/정부 과제한 내용들 영끌해가서 면접을 봤는데, 그 분야에 정통한 분이 계셔서 질문을 꽤나 많이 받았다. 분명 15분 정도 할 거랬는데, 하도 질문을 많이 받아서 1시간이 넘어갔다. 정말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그렇게 나를 긴장시킨 기술면접 후 합격발표는 한달 정도가 더 걸렸다. 이게 졸업식 이후라 참 마음이 쫄렸다는게 함정.)
(자세한 취준 이야기는 스레드에서는 "나는 어쩌다 이 회사에 들어왔는가"로 완결했고, 브런치에서도 곧 다듬어서 올릴 예정)
이렇게 기술면접까지 마치고 나니, 이제 대학원 생활에서 남은건 졸업식밖에 없었다.
나는 이미 박사과정 중에 결혼하고, 아들을 육아하고 있었기에.. 아내, 아들, 그리고 양가 가족 모두가 나의 졸업을 축하해주었다. 비록 성실하게 생활하진 않았지만, 후반부에 어떻게든 정신을 뒤늦게라도 차려서 누더기 상태로라도 졸업을 했다는 것은 아주 감사할 일이었으니까.
위에서 말했듯 최종 합격 발표가 지연됐기에, 졸업식 이후에도 나는 2주 정도를 학교에 더 있다가 회사가 있는 곳으로 이사를 왔다. (불합격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확정이 되기 전 상태는 언제나 불안하니까.) 입사 전까지의 약 3주간의 시간은 나에게 무한한 휴식을 허락하는 기간이었다. 수능 끝나고 대학 입학 전까지의 시간처럼.
이렇게 내 인생의 두 번째 학위과정은 끝이 났다. 빛이 나는 누더기처럼. (끝)
[스레드에서 작성한 나는 어쩌다 컴공을 전공했는가 27-30편을 내용 추가하고 다듬어서 게시하였습니다.]
- 스레드 27편: https://www.threads.net/@jamongcoffee/post/DAwXbh5OJYC
- 스레드 28편: https://www.threads.net/@jamongcoffee/post/DAwYbBNOlSV
- 스레드 29편: https://www.threads.net/@jamongcoffee/post/DAwZlINO0e3
- 스레드 30편: https://www.threads.net/@jamongcoffee/post/DAwafwBua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