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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몽이 쓰다 Sep 08. 2023

고립이 아닌 자립의 시간

방황하는 엄마의 시간

아이가 생기고

모든 에너지를 너로 쓰고 있었다.


나에게 허락된 시간조차

외부로부터 즐거움과 행복을 찾으려고 했다

육아에 버거울수록 외로웠고

힘이 들수록

내면의 힘이 아닌

타인으로부터 받는

긍정의 에너지를 흡수하려고 했다.


아이에게 남편에게 필요한 욕구를

채워 줄 사람은 나뿐이었다.


내가 흐릿해져 갈수록

그들은 또렷해져 갔다.


스스로 괜찮다 독려하며

무탈하게 시간이 흘러가길 바랐다

버텼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아이를 키우며 가슴 벅찬 감동들과

함께했던

아름답고 행복했던 시간들을 부정하지 않지만

나를 잃은 무력감과

사회적 고립감은

아이의 성장 남편의 성과들로

충족되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다 괜찮아지는 줄 알았다.

덮어 놓은 무거운 욕구의 감정들은 사라지는 줄 알았다.


안갯속에 스스로 갇힌 줄도 모르고

사람들 속에서 희로애락을 공유하는 그 시간 동안

늘 나는 빛났고

삶이 흡족하다고 착각했다.


그러나

내 것이 아닌

타인의 것으로 채워진 나는

결국 공허함으로 텅 빈 가슴으로 살고 있었다.


힐링이라는 이름으로

외부에 에너지를 쏟는 날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헛헛함..... 씁쓸함.


순간의 쾌락으로 탕진한

자아가 내게 질문을 한다.


계속 이렇게 살아갈 것인가?


허울만 좋은 껍데기인 나인채로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갈 것인가?


외부의 반응에 일희일비하는

바스러질 것  같은 마음을 부여잡고

언제까지 아슬아슬 버틸 것인가?


애써 외면하고 싶은 나를 불러 세운다.


나는 무엇에 직면하고 싶지 않아

나를 만나지 못하고

끊임없이 사람들을 만나

채우려고 하는 것인가.


낮아진 자존감인가

높아진 자격지심인가

대상 없는 응어리인가

풀리지 않는 억울함인가

토해내고 싶지 않은 슬픔의 잔상인가

회피했던 침묵의 시간인가


결국은

꺼내고 싶지 않은 내면 아이인가


나약한 눈물을 흘리기 싫어

입술에 상처가 나도록 꾹 참아내던

그 상흔의 시간들이

성숙이라는 우아한 단어로 포장돼

미성숙함을 묵살했다.


난 무엇을 피하고 싶은가

난 무엇을 토해내고 싶은가

그 속에서 조차 내게 집중 못하고

타인에게 집중하는 가.


너울 치는 감정의 심해에

나를 깊게 꽂을 날들을 더듬어 본다.


모든 수간에 우문현답을 찾아갈 수 이길.


나는 누구인가.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온전히 내게 집중할 시간들이 필요하다.


고립이 아닌 자립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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