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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선 Sep 14. 2019

김밥집이 폐업했다

나는 조금 더 게을러진 모습으로 다정을 잃었다

매일 아침 피곤한 내 허기를 책임지던 김밥집이 폐업했다. 얼마 전까지도 그냥 김밥을 먹어야 할지, 참치나 치즈들이 가득한 김밥을 고를지 고민했는데. 평소 같던 아침, 평소와 달리 가게의 불은 꺼져있고 촌스러운 흔적들이 묻어있는 가게의 유리문 위로 ‘임대’라는 메모가 붙어 있었다.

그리 칭찬할만한 맛은 아니었지만 속을 채워주는 그 김밥의 든든함에 기대어 오전을 견디곤 했다. 김밥을 먹겠다는 생각으로 오분정도 이른 시간에 알람을 달았고, 어떤 날은 그냥 굶고 말자며 오분의 더 게으름을 누리다가 일어났다.

그런 날을 제외하면 아침마다 버스 정류장 앞 김밥집에 도착해 아주 짧은 시간의 고민 후 주문을 했다. 아주머니는 늘 내가 고른 김밥을 꼭 한 번 되물은 뒤에 조리를 시작했다.

그냥 김밥이요.
그냥 김밥이요~

매일 같은 김밥을 선택했다면 편했을 텐데, 나에겐 단골 메뉴를 고르는 친절함이 없었다. 그렇게 불친절한 나에게 돌아오는 아주머니의 되물음은 오늘 나의 김밥을 틀리지 않겠다는 다정함이었다.

김밥을 말던 손은 그다지 빠르지도 그렇다고 너무 늦지도 않은 속도였다. 빠를 수도, 느릴 수도 없는 아침을 깨우기에 가장 적절한 리듬이었다.


적절한 기상을 모두 마치고 가게를 나설 때면 아주머니의 다정한 인사가 뒤로 닫히고, 나는 그 말을 메아리처럼 따라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다정이란 부끄러운 구석이 있어서 나는 다른 말을 보태지 못했다. 아침을 거르던 며칠을 제외하면 아주머니와 나는 항상 서로의 말을 따라하며 각자의 오전을 지냈다.

그렇게 오분의 부지런함으로 다정을 배우던 김밥집이 갑자기 폐업했다. 인사하지 못한 마무리는 설운 일이라고 늘 생각했지만 미리 알고 있었다고 해서 내가 어떤 다정한 표정과 친절한 말투로 인사를 뱉을 수 있었을까. 확신하지 못하는 건 내 미숙한 숫기가 불친절이 아니라고 믿고 살았기 때문이다.

김밥집이 폐업하고 아침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들른 편의점에는 친절을 배울 수 없는 기계가 손쉬운 계산을 도왔다. 공장에서 나온 김밥은 차가왔고, 그토록 시린 것들이 내 속을 채우면 나는 조금 더 미숙해지는 기분이었다.

아침마다 괜스레 눈길이 가는 김밥집은 문을 굳게 닫은 채 인기척이 없고, 서로의 말투를 따라하며 다정을 배우던 우리는 스스럼없이 각자가 되었다.

어제 밤에는 알람을 다시 오분 뒤로 미뤘다.

나는 조금 더 게을러진 모습으로 다정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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