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의 삶 - 2

그럼에도 불구하고, 낭만

by 잠실섹시

삶에서 낭만이란 새로움이며, 새로움은 곧 설렘이다. 설렘은 우리 삶에 활력을 준다.

이러한 맥락에서 내 30대의 낭만은 이전의 것과는 다르다.


그때의 나는 작용과 반작용을 인지하지 못했다. 모든 결과에는 과정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돌아갈 힘을 만들어 놓고 저질러야 했는데 새로운 것들 투성이니 맞닥뜨리는 모든 현상과 경험에 온 힘을 다 쏟았다. 지독하게 사랑하고, 미련하게 노력했다. 요령이 없었다. 하면 무조건 된다고 생각했다. 현실성이 없는 허황된 노력, 속된말로 허공에 삽질하듯 애쓰니 하나씩 무너지는 경험을 마주했다. 지독하게 아파하고, 고통스러워했다. 좌절했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존재를 부정하기도 했다. 넘어지고 깨지고 다치고 신음했다. 사실 맞딱뜨리는 모든 경험이 '새로움'이니 낭만 그자체다. 그러나 요령이 없으니 고통에 더 잠식되곤 한다. 남들과 비교하기 더할나위 없이 좋은 세상이니 자꾸만 나의 추함과 타인의 완벽함을 비교한다. '나는 왜 안되지?' 의심으로 점철된 삶, 낭만이 부재된 삶.


그 시기를 지나 지금의 태도를 바라본다. 썩 안정적이다. 커리어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다소 불안하지만 초조하지는 않다. 유난을 떤다고 달라질 것이 없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현실적인 것들 위주로 소비한다. 그때를 회상하면 만감이 교차하지만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는 않는다. 꿈이 희미해진다. 다시는 그때처럼 온몸을 불살르는 노력을 할 수 없을 것 같고, 지독한 사랑에 빠지기도 어렵다고 생각하며, 마주하는 어떠한 것에도 그러려니 하기 십상이다. 현생이 바쁘고, 신경 쓸 것들이 한두 개가 아니다. 냉소와 염세는 현생에 집중하기 위한 아주 편리한 도구이다. 일단 내 인생이 바로 서는 것이 중요하다.


실존에 집중하는 것도 버거워 실재하는지도 모르겠는 '낭만' 따위를 영위할 겨를이 없다.

그렇게 새로운 것들을 경계하게 된다. 쥐고 있는 것들부터 반듯하게 세우고 싶지만 뜻대로 되질 않는다. 애쓰고 노력하고 지독하게 외로운 싸움을 지속한다. 그래서 이따금씩 마주하는 괴로움을 잠식시키고자 '예측가능한 낭만'을 영위하고는 한다. 새로운 만남보다는 주로 혼자, 혹은 가까운 지인과 시간을 보낸다. 사치를 부리기도 하고, 부어라 마셔라 술을 마시기도 하고, 헛짓거리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금방 다시금 지독한 외로움을 마주한다. 새로움의 부재, 낭만이 부재된 삶.


그렇다면 30대와 그 이전 세대에서 낭만의 부재를 야기시키는 것은 결국 '불안'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30대 이전 삶의 불안은 '도태'였다. 남들보다 뒤처지면 안 되고,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증명해내지 못할까 봐 불안에 사로 잡혀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험해보지 못한 다양한 것들에 대한 호기심 덕분에, 또 나의 잠재력에 대한 맹신 덕분에 낭만을 추구하는 태도를 잃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현재의 불안은 곧 '좌절'이다. 어렵사리 구축해 놓은 내 삶의 시스템이 주는 안정감에서 벗어나는 위험을 감수했을 때 내가 맞닥뜨릴 '좌절'은 큰 두려움이다. 새로운 시작이 실패했을 때 겪을 좌절이 현재의 안정이 주는 불행보다 더 크다고 생각한다. 이전의 좌절했던 경험이 너무 처절해 다시는 겪고 싶지 않으니 보수적인 태도로 일관한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삶의 지독한 권태와 외로움에 빠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나는 낭만을 추구하는 자세를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규정하였다.

120세 시대라는 우리 세대에서의 30 대란 이제 막 삶의 1/3을 살아냈을 뿐인데, 코흘리개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삶을 권태에 잠식시킨다면 남은 생은 버텨내는 태도일 뿐일 테다. 게다가 30년이 넘는 세월의 경험을 통해 쌓아 올린 내공이 있을 터인데 새로움이어야 봤자 내가 경험한 범주 내의 고통일 것이다. 삶은 원래 고통과 행복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어른이라면, 그것을 도전함에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는 사실도 인지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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