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와 이상의 괴리, 그 간극에서
하루가 다르게 유행이 바뀐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이슈와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하면 도태된다. 온 신경이 시대가 방출하는 자극적인 정보에 압도된다. 1시간만 휴대폰을 들여다보지 못해도 초조하다. 늘 세상과 연결되어 있어야만 한다. 휴대폰 배터리는 곧 내 생명선과 같다. 혼자서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 왜냐하면 세대가 가진 모든 의문의 해답이 휴대폰에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세대에게 노력이란 무엇인가.
노력은 곧 적은 양으로 최대의 효율을 내는 것이 정답이다. 애매하게 표면을 훑고 지나가고 아는척 할 수 있다. 모든 정보가 일목요연하게, 아주 짧디 짧게 편집되어 1분이면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오랜 시간을 투자하여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것은 비효율적인 접근이다.
혹은 남이 혀를 내두를 만큼의 '총량'이 중요하다.
당장의 결과가 없으니 답답하다. 그러나 대단한 결과를 위한 과정으로써 나의 노력은 '표현되어야만' 한다. 5시간을, 10시간을, 15시간을, 노트를, 문제집을, 인강을, 운동을, 연습을, 어떤 방식으로든 어떻게든 타인에게 납득시킬만한 근거가 필요하다는 차원에서 무엇보다 '총량'이 중요하다.
우리 세대에게 성공이란 무엇인가. 영 앤 리치 앤 머슬 앤 핸썸. 누구 하나 늙어보이는 사람이 없으며, 누구 하나 싸구려 끼니를 떼우는 사람이 없고, 누구 하나 열등한 외모가 없다.우리 세대가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사는 삶. 평일 주말 밤낮 할거 없는 잔치의 연속.
열등은 곧 도태를 의미한다. 그러니 늘 잘해야만 한다.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가 '드러나야'한다. 시간이 없다. 조금만 방심해도 타이밍을 놓치기 일쑤다. 이러한 사회적 기조에 맞춰 열등하기 싫은 우리들의 노력은 '타인의 시선과 관심'에 의해 SNS를 빚어가기 시작한다.
이러한 기조가 팽배한 탓에 세대가 느끼는 삶의 정답이 SNS에 초점이 맞춰진듯 하다. 내 삶, 내 커리어, 내 미래. 빠르게 정답이 나와야만하고, 빠르게 결과가 나와야만 한다. 너무 쉽게 노출되는 타인의 화려한 삶이 내 삶에 대한 비난이 된다. 열등을 피하고자 시작된 여정에서 되려 열등이 양산된다. 내 삶을 비난하거나 혹은 타인의 삶을 비난하는 치졸한 태도가 곧 삶이 되고는 한다.
SNS와 실제를 구분하지 못하는 이들이 문제일까. 구분이 모호하고 본인의 상품성을 위해 지독하게 자극적인 컨텐츠를 양산하는 공급자가 문제일까.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는 것일까. 그것에 절여져 실제와 이상을 구분하지 못하며 도파민 속에서 허우적대는 우리들의 문제일까. 삶의 의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틈을 주지 않고 자극만 찾는 우리의 태도가 문제일까. 아니면 성공을 꿈꾸면서 미련한 방식으로 노력하는 것이 문제일까.
나는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농담같던 말이 오늘따라 내겐 하나도 웃기지 않고, 오히려 진지해.
20대 초반 방황하던 시절에 위로가 되었던 그 구절의 노래가 지금까지 변함없이 같은 맥락에서 위로가 되는게 우습기도 하고 기가 차기도 하고. 어쩌면 나이가 든다는 것은 같은 고민을 반복하며 결론을 번복하며 바꿔가다가 맺어지는게 삶이 아닐까. 두서도 없고 오랜만에 글쓰니까 잘 안써지고 뭐하고. 죄송합니다. 저번주 글 까먹고 안썼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꼭 써야지 했는데 뭔가 주제를 요즘 잘 고민 못하고 사실 사는 것에 집중하느라 좀 그랬습니다. 다들 어떻게 그렇게 글 쓸 컨텐츠들이 계속 나오시나요. 대단하네. 나도 이번주는 고민 많이 해서 다음주에는 더 양질의 컨텐츠로 찾아뵙겠습니다 여러분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