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의 삶 - 8

나의 멋, 자존감, 그리고 확신

by 잠실섹시

나는 고집이 세다.

나는 내 멋에 살며, 내가 멋없다고 여겨지는 일들을 소비하지 않는다. 이런 소신을 갖기까지 내 멋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과 테스트 거듭했고 여전히 그 확신에 살을 붙이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쓴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늘 자의식 과잉에 시달리곤 한다. 확신의 저편 극단에는 늘 갑작스레 엄습하는 불안감에 시달리며, 어제 아니 불과 몇 분 전에 멋있다고 생각해서 취한 행동이 현재에 이르러 후회에 신음하고 귀가 후 샤워실에서 비명을 지르며 분노의 샴푸질을 일삼는다.


헤겔의 변증법적 토의, 그러니까 내가 세상을 인식할 때 주로 쓰는 도구인 '작용과 반작용'은 내가 가진 태도의 확신에도 적용된다. 나는 내 멋에 취해 살지만 이따금씩 잦아드는 불안감은 그 확신의 크기만큼,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나를 괴롭히곤 한다. 몇 주 전 어떤 계기로 나는 평가대 위에 섰고, 불특정 다수에게 점수가 매겨졌다. 그리고 그 점수는 내가 기대한 절댓값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추구하고, 소비하는 삶의 태도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까지 누적하며 추구해 온 "멋있는 삶의 태도"가 어쩌면 틀린 것은 아닐까?'

사회하는 동물로써의 인간은, 특히나 자유경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사는 태도, 속된 말로 'ㅈ대로 사는 태도'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로 귀결될 수 있으나, 타인을 과하게 인식하면 자주적인 삶을 살 수 없다는 점에서 개인으로써의 삶의 권리를 스스로 박탈하는 꼴이 된다. 나는 자의식 과잉이 심한 편이고 열등감이 있는 편이다. 남들보다 열등한 것을 상당히 거슬려하고, 모든 부분에서 소위 말하는 '평타' 정도는 쳐야 안정감을 느끼는 편이다. 그러나 그 평가대에서의 결과로 나는 불안감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잠실섹시는 말입니다..


나는 나로서 온전하기 위한 태도를 6년째 영위 중이다. 새벽 5시에 기상하는 것이 바로 그것의 시작이다. 나는 독서, 명상, 일기, 달리기, 웨이트, 주 1회 스스로 하는 집청소, 그리고 찬물샤워까지 성공한 사람들이 입을 모아 추천하는 모든 태도를 실행한다. 그중 독서, 명상, 달리기는 하루 일정을 시작하기 앞서 무조건 적으로 우선순위에 두고 영위한다. 나를 위한 행위를 경제활동보다 우선순위로 둔 덕택에 나는 사회적인 지위가 상위 포지션에 위치하기 취약한 환경인 '고졸'임에도 불구하고 단단한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 나를 위한 행위뿐만 아니라 경제활동 또한 지독하게 영위한다. 나를 위한 행위 이후에는 자정에 이르는 시간 동안 끊임없이 일에 처박혀 하루를 살아간다.


그렇게 형성된 자존감을 바탕으로 확신이 들게 된 '나의 멋'은 평가대 위에서는 취약하기 마련이다. 부가 설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삶은 냉정하고, 사회는 피곤하며, 시간은 곧 돈이다. 남이 삶을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지 구구절절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인생에서 무엇을 이뤘니?'가 중요하다. 즉, 결과만 듣기를 원한다. 우리가 누구의 출신을, 직업을 궁금해하는 것은 불필요한 에너지 소비를 막기 위한 합리적인 도구다.


그런 맥락에서 나는 내 스스로를 축약할 수 있는 한 단어로 '잠실섹시'를 채택했다. 10대 시절 아무 생각도 없이 낄낄대며 게임아이디로 만든 단어지만 여전히 꽤 매력적이고, 캐치(catchy)하다. 뿐만 아니라 20년 가까이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름대로 단어에 걸맞은 사람으로 성장했고 여전히 하고 있으나 time is running out인 현대 사회. 짧은 시간 내에 극강의 효율로 이루어져야 하는 평가 앞에서는 비웃음을 살뿐이다. 섹시라니. 사실 좀 부담스럽기도 하긴 하지.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일 뿐입니다


평가 이후에 위와 같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스스로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성에 대해 의심에 신음하기를 며칠, 어느 날 아침이었다. 거슬리는 무거운 마음으로 달리기를 하다가 문득 짜증이 솟구쳐 러닝머신 속도를 냅다 올리고 전력질주를 했다. 고작 30초를 뛰고도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이 악물고 1분을 버텨냈다. 1분. 짧디 짧은 시간에 불과하지만 나에게는 생사를 오고 갈 정도의 묵직한 싸움이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헌데 그것을 해냈다는 기분에 뭔가 짜증스러운 마음에서 해방된 기분을 느꼈다. 그래서 그다음 날은 1분 10초, 그다음 날은 1분 20초를 뛰었다. 하찮게 시간을 야금야금 늘려가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남들 보기 하찮은 노력일지라도 나와의 싸움을 지속하는 행위에는 어떤 에너지가 있다는 사실을. 나에게 그런 에너지가 방출되기 때문에 사회적 배경이 취약한데도 불구하고 분에 넘치는 밥벌이와 나를 인정해 주는 좋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자본주의 사회는 곧 경쟁사회다. 그래서 우리는 내 peer들과의 경쟁을 당연시 여긴다. 그래서 많은 경우, 타인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으로 자존감을 형성하곤 한다. 내가 열등하지 않다는 사실이 타인과의 경쟁 결과를 통해 드러나기 때문이다. 피할 수 없는, 어찌 보면 당연한 싸움이다. 자본주의를 떠나서 우리를 동물의 범주로 엮으면 먹이사슬에서도 적용되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생각하는 존재인 고등동물이다. 경쟁의 극단은 살육일 뿐이다. 삶과 죽음 앞에서 사회적 직위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하찮은 가치들일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 만으로 채워진 자존감은 위험하다. 우리의 삶을 이루는 것은 실력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건강도, 성장 배경도, 현재의 위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도 운은 늘 우리 삶에서 언제나 작용한다.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당장 심장마비가 걸려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운'의 존재를 망각하고 승리에 취해 살게 되면 교만해지기 십상이고 교만은 결국 사회에서 개인을 몰락시킨다.


전력질주 이후에 나는 결심했다.

나는 나와의 싸움에서만 경쟁하기로. 타인과의 경쟁 결과로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평가하지 않기로. 나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습관으로 형성된 자존감만을 바탕으로 하여 이 세상에 존재하기로. 현재까지의 내 존재에 대해 감사하기로.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로. 사회적 직위보다 삶과 죽음의 차원에서 인간의 존재를 인식하기로. 광활한 우주의 개념에서는 우리의 존재는 하찮은 먼지일 뿐이라고. 우리 모두를 하찮은 존재로써 인식하고,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그들의 존재 있는 그대로 존중하기로. 사회적 지위와 배경이 열등할지라도 그들만의 싸움을 지속하는 존재들을 존경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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