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 관하여
요즘 나를 포함한 내 주변 또래들의 가장 큰 이슈는 '결혼'이다.
혼기가 찬 나이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제대로 된 연애도 못하는 이들이 태반이니 더 결혼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들을 한다. 나도 결혼이 무척이나 어렵고, 무섭다.
우리 이전 세대, 그러니까 우리 부모님 세대는 개인들의 다름을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배운 적이 없다. 늘 사회 구성의 일부로 살아오셨으며, 그 과정에서 많은 부조리함을 견뎌내셨다. 그랬기 때문에 우리 세대에서의 개인은, 적어도 각자의 가정에서는 특별한 존재로써, 즉 사회의 구성원이 아니라 하나의 개별적인 존재로써 양육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결국은 가정을 벗어나 또 다른 사회로 나아갔다. 유치원으로, 학교로, 직장으로. 그리고 우리는 하나의 구성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부딪히고 좌절했다. 나는 분명히 존재만으로 특별한 사람이었는데, 사회에서는 나의 특별함을 증명해내지 않으면 안 되었고, 성취는 또 다른 차원의 경쟁으로 입장하는 길에 불과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체득한 것이다. 집단에서 하나의 톱니바퀴가 되는 방법, 그리고 특별한 개인으로써 존재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사회성으로 타인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일, 나와 분리된 삶을 존중하는 일, 그리고 내 소신을 갖는 것 모두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관계라는 것이 이렇게 피곤한 일인 것을 체득한 우리는 이제 결혼이 무척 두려워지는 것이다.
분명히 나는 존재함이라는 단순한 것만으로 존중받을 수 있는 특별한 사람이었는데 어느새 나의 특별함을 입증하기 위한 발악이 디폴트가 되는 어른이 되었으니까 말이다.
또, 우리들 부모님의 결혼은 로맨틱하지 않다. 내 또래의 부모님들 대다수는 선으로 결혼을 했다.
가정을 이루기 위해 최소한의 정보만을 갖고 결혼을 목적으로 만나 결혼하셨다. 그리고 그때는 먹고사는 것, 생계전선에 온 힘을 쏟는 것이 덕목이었다. 그래서 우리 부모님은 지금의 우리 세대처럼 관계를 위한 세련된 방법론 따위는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미련하기 짝이 없는 미개한 형태의 부조리들이 난무하던 시대에서 그들은 감정을 다스리는 법, 갈등을 해결하는 법, 나의 내면과 대화하는 법 따위와 같은 것들을 소비할 여유가 있을 리가 있겠나. 그래서 우리만큼은 특별한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소망하셨던 것.
철학은 일종의 사치다. 특히 먹고사는 것보다 중요한 게 없었던 그 시절에는 더 그렇다. 철학을 기반으로 세련된 자신을 빚어내기 위해서는 부단한 공부와 노력, 그리고 연습이 필요한데 이것에는 엄청난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아주 효율적인 방법으로 결혼을 해서 난데없이 부모가 된 그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씨름을 하기도 지친 그들에게 철학적으로 세련된 태도는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우리는 너무나 적나라한 현실을 보게 된다. 지독하게 현실적인 가정 문제에서 기인한 갈등들을 수도 없이 눈앞에서 목격한 우리는 결심한다.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결심에 불을 붙이듯 매체를 통해 공급되는 드라마, 영화 형태의 애틋하고 예쁘게 빚어진 사랑 포르노. 그것도 모자라 최근에 만연하는 연예인들의 관찰예능. 나와 비슷한 고민을 토로하는 그들에게 내 모습을 투영시키기 십상이니 행복의 기준이 천정부지로 솟는다. 모든 개인이 특별하다고 생각을 하고, 특별함을 유지하기 위해 과도한 에너지를 쏟으며, 특별함의 기준점을 높이기 위해 온 세상이 합심한다.
뿐만 아니다. SNS를 포함한 각종 플랫폼에서 생산되는 각종 컨텐츠는 너나 할 것 없이 개인의 특별함을 완벽한 형태로 편집하여 뽐낸다. 그것도 아주 자극적인 형태로. 넋 놓고 소비하다 보면 속수무책으로 우리의 무의식에 내 현실이 시궁창으로 여겨진다. 그렇게 우리는 서서히 완벽하지 못함에 대한 지독한 두려움에 떨게 되어 관계를, 결혼을 기피한다.
정리하자면 우리의 성장 환경이, 가까스로 빚어놓은 현재의 안정적이고 마음에 드는 내 삶의 밸런스가, 그리고 요즘의 사회 양상이 모두 합심하여 관계를 맺는 것에, 결혼에 대해, 완벽하지 못함에 대해 공포를 느끼게끔 조성되고 있다. 사회가 전에 없이 외로워지고, 날카로워진다. 사랑이 없어졌다.
20대 초중반 이후로 한 번도 사랑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느끼는 사랑의 정의가 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