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리워드에 관하여 part. 2
몇주전 '보상심리에서 기인한 불만족을 소비가 아닌 것으로 다스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고민으로 글을 맺은 적이 있었다. 하루를 열심히 살아낸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리워드가 소비로 집약된 형태의 삶은 결국 파멸이고 공허함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최근 몇 주간 해소되지 않는 불만족에 신음하는 중이었다.
요즘 내가 하루 중 가장 긴 시간을 보내는 업장의 근처에는 마땅한 음식점이 없다.
업장 특성상 배달음식을 시켜 먹는 것도 다소 눈치가 보이고, 최근의 배민 사태도 그렇고, 배달음식은 영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그래서 늘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다가 문득 몇 주 전부터 닭가슴살과 밥이 지겹게 느껴졌다. 그래서 닭다리 살로도 바꿔보고, 닭안심살로도 바꿔봤지만 영 먹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옵션이 고작 업장 바로 앞에 위치한 편의점에서 세끼 때우기였다.
물가가 엄청나게 오른 것을 체감하는 게, 요즘 편의점에서 대충 한 끼 때우기 용으로 두세 개만 사도 만원이 넘는다. 내가 많이 먹는 것도 있지만 (사실 이게 맞다), 편의점에서 파는 고작 100g짜리 닭가슴살 한 개가 5천 원 꼴이다. 하긴, 최저임금이 만원에 육박하는데 그럴 법도 하다. 그렇게 세끼를 먹으니 매일 편의점에서 소비하는 돈이 3만 원 수준이 되었고, 그게 매일 누적되니 꽤 큰돈이 되었다.
나는 먹는 것에 돈을 아끼지 않는 편으로, 보통은 맛있게 먹었으면 됐다고 여기는데 편의점에서 때우기 용도로 지불한 돈의 총계에 비해 와닿는 만족도가 썩 크지는 않았다. 뭐 그럴싸한 음식도 아니고 끽해봐야 컵라면, 삼각김밥, 닭가슴살, 등이니까. 그렇게 되니 편의점에서의 식사마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지속적인 불만족이 누적되니 이제 식사 자체의 문제라기보단, 내 마음의 문제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궁금했다. 남들이 돈을 아끼지 않는 것은 무엇인지, 그들의 셀프 리워드는 무엇인지.
내 직업이 만족스러운 이유 중 하나는 정말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데 있다.
저마다 다른 가치관과 생각을 갖다 보니 삶의 태도에 대한 의문이 생겼을 때 수업 중 쉬는 시간에 캐주얼하게 그들의 의견을 물으면 보통 좋아하고 흥미로워하니 쌍방으로 즐거운 시간이 되고는 한다. 아마도 ㅎ
그중 최근에 등록하신 회원님 한분이 계신데 소위 말하는 '초식남'같은 분이시다.
취미가 뭐냐는 물음에 '... 딱히.. 그냥 코딩하는 거?'라는 나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대답을 하셨고 술도, 영화도, 게임도, 운동도, 커피도, 심지어 음식마저도 (엄청나게 소식을 하신다..) 흥미가 없으신 분이시다. 한주를 보내고 인사치레로 주말에 뭐 하셨냐는 물음에 늘 수줍게 웃으시면서 항상 같은 대답, 일했다고 하신다. 도파민에 절여진 요즘 시대 그리고 내 주변에서 찾아보기 드문 분이시다. 그래서 궁금했다. 회원님은 돈을 아끼지 않는 게 무엇인지, 셀프 리워드가 무엇인지 묻는 대답에 싱긋 웃으시며 이렇게 대답하셨다.
'저는 뭔가를 배우는 것에 돈을 아끼지 않는 것 같아요. 뭔가를 배우고 있으면 나아지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서요. 그래서 그런지 최근에는 딱히 셀프 리워드가 필요한 것 같지는 않았어요. 왜냐하면 최근에 이직을 했고, 그래서 회사에 출근할 때마다 새로운 걸 하나씩 배우는데 그게 너무 재밌고 만족스러워서 그런지 딱히 보상심리가 작용하는 것 같지는 않네요..'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 삶은 원래 자기만족이다. 나 또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기분이 들 때 가장 행복해하는 사람이다. 최근 들어 운영 중인 업장의 성과가 다소 부진했다. 그래서 지난 몇 달 동안 셀프로 마케팅을 해보겠다고 다양한 시도를 해보며 광고비로 많은 돈을 썼는데 영 성과가 시원찮았다. 유입량을 늘리는 데까지는 성공했는데, 그게 구매 전환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비밀 금고의 모든 열쇠를 손에 쥐고도 문을 여는 방법을 몰라서 발을 동동 구르는 기분이 들었다. 일을 시작하며 기대한 성과는 차치하더라도, 뭔가 다음 스텝을 알고 싶은데 결론이 나질 않은 채 지지부진한 상태로 돈만 지출되니 초조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누적된 스트레스를 잠식시키려 방향도 없이 그놈의 '더 열심히' 타령으로 미련하게 이래저래 스스로 몰아세웠다. 그럴수록 마치 모래알을 한 움큼 움켜쥔 것처럼 목표했던 모든 성과가 맥없이 손틈새로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최근 몇 달 전부터 일기도 안 쓰기 시작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성공한 사람들이 하는 모든 행위를 따라 해야 한다며 영위하던 몇 가지 습관 중 하나였던 그것을 행위 자체에 집중하느라 정작 중요한 것에 힘을 쏟지 못한다고 판단하여 중단했던 것이다. 사실 저녁 늦게 집에 와서 피곤해 죽겠어서 그전부터 엄청 쓰기 싫었다... 그게 현재의 불행이 내 삶을 잠식시키게 된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하루에 16시간에 육박하는 근무시간 과정에서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하고,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낭비하기도 한다. 그런 만큼 기록의 과정에서 하루를 복귀하며 내가 잘한 것, 못한 것을 돌이켜보면 결과위주의 태도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테다. 내 불행, 그러니까 셀프 리워드에 대한 집착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되었던 불만족에 대한 퍼즐이 맞춰졌다.
삶은 원래 부조리하다. 그렇기 때문에 삶을 원하는 방향으로 운영해 나간다는 것은 교만이다. 인생의 행복은 하루 속 촘촘하게 박힌 작은 성취를 끄집어내어 기록하며 누적할 때 몸집을 불린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한다는 것은 무조건적으로 성과와 비례하지 않는다. 그 안의 메시지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초조함은 독이 된다. 실행에 집중하여 기록하며 만족하는 삶. 그것이 행복 그리고 삶의 본질에 더욱 가까워진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다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 이상 헛돈 쓰기를 멈추고 전문가에게 업장 마케팅을 위탁했다. 가을이 찾아왔고, 내 통장잔고와는 사뭇 대조적인 삶의 충만함도 다시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