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듀이 Sep 19. 2021

우주를 휘감는 엄마의 기운

추석을 맞이하는 30대의 자세


"독립하겠습니다"


외동딸. 게다가 결혼이 아닌 독립은 절대 원하지 않았던 집안 분위기. 

덕분에 홀로 나와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독립의 '독'자만 꺼냈을 뿐인데, 왜 엄마와 살기 싫은지로 이상하게 흘러가는 질문을 마주하게 되었고, 결혼하면 남은 생은 새롭게 만들어지는 가족과 살아야 하는데 왜 빠르게 집을 나가려고 하는지(그땐 엄마도 내가 이 나이까지 결혼 안 할 줄은 몰랐을 거다)에 대한 부연 설명을 요구받았다. 그렇게 이어지는 무수한 질문과 신경전... 


그래서 그 당시의 나는 몰래몰래 부동산을 보러 다니다가, 그냥 덜컥 새로운 집의 계약을 해버렸다. 선 계약 후 통보. 그간의 내 삶에 등장하지 않은 규모의 사고였다. 엄마는 눈물을 훔치며 '그래 엄마가 그렇게 싫으니'를 연발했고, 심지어 내가 이사 나가는 걸 보기 힘들어서 이삿날 새벽부터 동네 어드메 산으로 산책을 가버렸다. 그렇게 나는 누구의 배웅도 없는 자발적 독립을 완성했고, 이후 엄마와는 6개월간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엄마의 눈물은 모른 채 독립 쟁취의 기쁨을 맘껏 누리던 시절이었다.


독립 풋내기를 지나 이제 어느덧 독립 6년 차. 명절은 '내 집에 가는'이 아닌, '가족에게 가는' 느낌으로 차츰 바뀌어 간다. 본가에 가면 가족으로서의 못다 한 일과 부족함 들을 마주하게 되고, 그동안 켜켜이 쌓였던 이야기들을 듣고 집안의 온갖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삼시 세 끼는 기본, 플러스 간식 2타임 정도는 돌아줘야 하고, 너무 말랐다, 밥은 먹고 다니냐, 월급은 얼마 받니 요즘, 남자 친구는 있고, 등등의 질문을 소화해야 했다. 하여, 언제부턴가 싸우고 집에 휙 돌아와 버리기도 하고, 나 또한 집에 가는 일이 부담이 되기도 했음은 부끄러운 사실이다. 


그러던 최근의 하루, 비가 무섭게도 쏟아지던 지난 여름날이었다. 그날도 역시나 무거운 발걸음으로 엄마에게 들렀다가 나의 스윗 홈으로 돌아오려던 참이었다. 엄마의 넘치는 에너지는 하룻밤 새 내 체중을 2kg나 불게 했다. 매끼 새로 해주는 쌀밥, 독립한 집에서는 쉽게 하기 어려운 생선구이, 내가 좋아하는 미역줄기 볶음에 도토리묵무침, 빠질 수 없는 한우까지... 모든 사랑들이 몸에 차곡차곡 잘도 쌓였다. 밥상을 물리자마자 등장해 잇따라 투하되는 무화과와 수박에 부른 위장은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1박 2일 동안 먹은 모든 음식, 좋다고 산 화장품, 엄마는 아끼느라 포장도 못 뜯은 선물들은 바리바리 포장되어 내 두 손에 들려있었다. 


다행히도 근처의 친구가 집까지 라이드를 해주기로 해서, 이 모든 짐을 싣고 빗줄기 아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집으로 향했다. 정말 비가 무섭게 내렸고, 차도 많았고, 뭔가 귀가 웅웅대는 듯한... 이상하게도 뭔가 불안했던 날이었다. 친구가 날 내려주고자 우회전 깜빡이를 켜고 가장 바깥 차선으로 합류하려던 찰나, 빵- 어마어마한 클락션을 울리며 달려오는 차에 거의 치일 뻔했다. 너무 많은 비가 왔고, 사이드 미러로 그 차가 보이지 않았는데, 그 차 또한 빗줄기에 가려 우리 차를 보지 못했던 것. 정말 오줌 찔끔 나게 아슬아슬했던 5센티미터의 차이. 


그때 뭐랄까 나는 그 사고가 나지 않은 게 온전히 엄마 덕이라고 생각했다. 1박 2일 내내 엄마 품 같은 본가에 있으며 엄마의 기운이 잔뜩 내게 스며있는 덕. 엄마가 발원하고 간절히 바라는 수 차례의 기도 속 내 안위 덕분이랄까. 온 우주의 기운을 담아 내 입으로 들어온 여러 음식들 때문일까. 게임 캐릭터가 스스로의 HP나 MP를 보호하는 주문을 걸듯, 우리 엄마도 어젯밤 내내 나에게 그런 주문을 걸어주었겠지, 하는 생각에 평범하고 익숙하고 무료해진 지난날들을 다시금 차분히 들춰보았던 하루였다. 


다시 또 추석이 왔다. 한우에 과일을 싸들고 이제 엄마에게 갈 참이다. 그전에, 지난여름을 다시 한번 더 되새겨본다. 엄마의 애틋한 걱정을, 눈물겨운 사랑이 담긴 음식을, 미처 말하지 못한 마음까지도, 더 잘 먹고 오자고. 연봉이 얼마큼 올랐는지, 결혼은 언제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따로 준비한 현금으로 방어하자고 다짐하면서... 독립하고 나니 나도 엄마가 더 애틋하다. 잘해야겠다. 이번엔 세 밤 자고 와야지. 

작가의 이전글 당신, 탁월한 리더와 일하고 있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