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에 관한 편견에 대해
아주 오랜만에 도서관 옆 카페에 갔다.
다이어트를 시작해 디저트를 줄이기 시작하면서
자연히 카페와 멀어졌다.
(나는 디저트 없는 카페에 가지 않는 사람이다.)
오늘은 큰맘 먹고
카페에서 내가 좋아하는 빅토리아 케이크를 먹으리,
따땃-한 아메리카노 한잔과 함께
묵직하고 부드러운 크림을 온몸으로 느껴야지
맘먹으며
바쁜 점심시간 이후를 기다렸다가
문을 열고 들어갔으니
얼마나 대단히 비장한 마음을 먹고 카페에 간 것인가.
아메리카노 한잔과 케이크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책 몇 쪽을 읽었다.
얼마 안 있어 근처 대학생으로 추정(대화내용상 확신)되는
앳된 성인 여자 둘이 내 앞 테이블에 앉았다.
그 앳된 여학생들의 대화가 시작되고
나의 선입견에 대한 회의(懷疑)도 시작되었다.
앳된 여대생들의 성량은 당연히 조곤조곤 까르르 일거라는 나의 선입견.
우악스럽게 큰 성량을 보유할 줄이야 예상 못했던 것이다.
물론 목소리가 클 수야 있지만
여기는 자그마한 카페인데
카페가 울릴 만큼 큰 소리의 대화는 지양하는 게 낫지 않겠냐며
가서 목소리를 조금만 낮춰주라고 부탁하고 싶은 욕구가
온몸을 감쌌다.
양손으로 귀를 막아도
모든 장애물을 뚫고 들어오던 그녀들의 목소리.
책 읽는 시간 방해받지 않으려고 지불한
커피와 케이크값이 아까울 정도였다.
집에 포장해 가서 먹을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괴로움에 몸부림치다가
그 힘마저 바닥났을 때
나는 그냥 방청객처럼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들을수록 그녀들의 이야기는
그저 그런 스몰톡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상태를 걱정하고 격려하고
조언을 구하고 토닥여주는
아름다운 대화였다.
사생활이 담긴 대화기에
현장에서 귀를 막아도 들려오는 소리를 들은 것은 어쩔 수 없더라도
글로 옮겨 퍼뜨리지 못함을 이해해 주시길.
출근 시간이 되어 자리를 뜰 때
그녀들에게 케이크라도 대접하고 싶은 마음까지 들 정도로,
어떤 환경에서 자라는지 들여다보고 싶을 정도로
속 깊고 따듯한 마음을 가진
그저 목소리가 클 뿐인 그녀들이었다.
카페를 나오며
내가 에어팟을 가지고 왔다면
오늘 그녀들의 대화는 듣지 못했을 텐데.
에어팟이 없어서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동안 수많은 대화를
놓치고, 흘려보냈겠구나.
생각하니
내 계획대로 되지 않아
오히려 좋은 일이 또 생겼구나
생각으로 이어진다.
에어팟을 또 놓고 왔다.
오늘은 또 어떤 사람의 이야기가
내 삶에 흘러 들어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