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로 온 날은, 모두 박수!

by 제이앤

아이들이 학원을 들어올 때 빼먹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 바로 '인사'다. 선생님과의 관계를 위해서 중요하기도 하지만 학원에 처음 들어올 때 수강생의 얼굴을 확인하며 체크할 것들이 많다. 레슨 시간, 연습실 배치 등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수강생의 '감정 상태' 파악 때문이다.


문을 열기 전부터 밝고 명랑한 인사가 먼저 들어오는 경우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들어온 경우라면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라던지, 집에서나 오는 길에 생긴 일들을 나에게 말하고 싶어 안달나 있다. 반가이 들어주고 너무 길어지지 않게 잘 조절해 주면 그만이다. 기분 좋게 들어온 경우라면 연습도 어지간하면 잘되고 쉽게 지치지 않는다. 나도 마음을 놓아도 된다.


진짜 긴장이 될 때는 문이 열리는지도 모르게 (도어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울리지 않을 만큼 힘없이) 열고 들어온 경우이다.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들어와서 언제 왔는지 모르게 지나가다 마주치는 경우이다. 분명 학원에 올 기운이 없었던 경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무거운 발을 끌고, 그 무거운 문을 열고 겨우 들어와 있다.

엎드려서 겨우 이론을 하고, 30분 이상 연습해야 하는데 악보만 펴놓고 멍하게 앉아있다. 그렇게 레슨을 받으러 오면 당연히 연습을 왜 안 해왔냐는 잔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왜 인사 안 했어?"라고 하며 아이에게 이유를 말해줄 책임을 준다. 위축되는 마음이 들지 않게 이어서 물어봐준다. "오늘 학원 오기 싫었어? 오기 전에 속상한 일 있었어?" 마음을 털어내도 될 판을 깔아준다. 마음이 많이 상한 상태라면 벌써 눈물이 차오른다. 단순히 귀찮아서였다면 수줍어하며 이야기하지만, 속이 많이 상한 상태라면 그날 수업은 오히려 그 마음이 힘들게 할 뿐이다.


처음 학원에 상담올 때 보호자에게 두 번 세 번 강조하는 부탁이 있다. 아이가 학원을 빠지지 않도록 해주실 것. 그리고 억지로 온 날은 반드시 저에게 미리 알려주실 것. 하루, 이틀 빠지다 보면 가기 싫어지고 여러 핑계를 찾는 것이 사람이 본성이다. 그 아이를 밀어 넣는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안쓰럽고 걱정될까. 이유야 어찌 됐든 학원에 겨우 들어와 앉아있으니 이건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 아닌가! 자, 모두 박수!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건, 초등학교 1학년 때 피아노 학원 가는 차에서 조수석이 앉았을 때였다. 집에 가서 연습해 오라고 하셨는데 집에 피아노가 없으니 할 수가 없었다. 가는 차 안에서 레슨카드를 꺼내 막 색칠을 했는데 아무래도 차량선생님이 원장선생님께 밀고를 하셨던 것 같다. 학원에 들어갔는데 원장 선생님이 내 범죄 행각을 줄줄 읊으셔서 너무 놀랐던 기억이 있다. 학원이라고 연습이 좋았겠는가. 피아노는 참 힘든 악기다. 결국 악보에 있는 음표들이 나를 공격하는 환상(?)을 보며 울며 뛰쳐나간 후 다신 피아노를 치지 않으리라 맘먹었더란다. 하지만 지금 학원 운영을 하는 것을 보면 인생사 참 뜻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그래도 넌 선생님보다 훨씬 낫다. 선생님은 한번치고 열 번 쳤다고 했었어. 그리고 울면서 학원을 뛰쳐나갔지. 나보다 네가 더 훌륭하지?"

이런 말을 들으면 아이는 아직 눈에는 눈물이 촉촉한 채로 킥킥 웃음이 새고 만다. 그건 너무 했다고 자기가 훨씬 낫다 한다. 아이 얼굴에 웃음이 돌아왔다는 것, 게임 끝이다. 그 뒤로 아이는 오기 싫은 마음이 들어도 학원 문을 당당히 열고 들어온다. "선생님, 저 오늘 오기 싫은데 억지로 왔어요. 레슨은 힘들어요. 대신 연습은 열심히 할게요." 당연히 오케이다. 연습실에서 연습하는걸 밖에서 다 들으며 체크하고 있고, 내가 힘들어도 음악은 날 받아주는구나,라는 마음의 확신을 얻는 것이 레슨 수백 번 보다 훨씬 중요하다.


그리고 학원에 책을 많이 뒀다. 내가 음악과 책은 반드시 가까이해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학원에 들어오면서 핸드폰을 내야 하는 학원 원칙상, 아이가 연습을 아주 잘해도, 피곤해도 남는 시간에 할 것이 없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소나타를 연주하는 중학생들도 잠깐 책 읽고 다시 하겠다고 한다. 흔쾌히 허락한다. 책을 읽다 보면 또 악기 연주를 하고 싶다. 시간을 안 지키고 연습을 모자라게 하고 가는 아이는 한 명도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힘도 마찬가지다. 적극적인 태도와 열린 마음으로 모든 것을 해내면야 너무나 좋지만, 사람이 매일 그럴 수 없음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너무 열심히 해서 지쳐버렸든, 마음의 에너지가 바닥나서든 몇 번이고 주저앉을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하기 싫은 마음으로 어기적거리며 기운 없이 자리를 찾아 앉더라도 누군가처럼 능동적인 태도로 임하지 않는 타인, 또 나에게 비난하지 말자.


아니, 오히려 박수를 보내자. 그렇게 힘든데도 자리를 지켰다고.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를 일으켜 있을 자리에 겨우 걸쳐 있는 것도 결국 해낸 것이라고. 잘 해냈을 때만큼, 가능하다면 그보다 더, 박수를 보내주자.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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