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리는 법 배우기

내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기

by 제이앤

우와! 너무 잘해왔다! 다음 곡은 좀 어려우니까 2줄만 스스로 악보 봐올까?

이거 너무 쉬운데요? 그냥 끝까지 다 해올래요.


아이의 대답에 나는 울 뻔했다.

오늘까지 2페이지 곡을 두 달을 쳤다.

분명히 아이는 악보를 볼 줄 알았다. 심지어 재능이 뛰어나 누구보다 잘하는 아이였다.


첫 상담 때 아이의 어머니는 이전에 쓰던 교재를 가지고 와서 내 앞에 펼쳐놓으셨다.

“선생님, 저 원래 전혀 터치 안 하는데요. 우연히 교재를 봤는데 계이름이 다 써져 있는 거예요.

이건 아닌 것 같아서 원장님 SNS보고 바로 왔어요.”

체르니 교재에 계이름이 모두 쓰여 있었다. 체르니 교재는 중급이상이라 이렇게 많이 계이름을 쓴 걸 읽기도 어려운 악보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선생님이 왜 다 써주셨을까…

“네, 어머님. 저도 어머님 생각처럼 피아노 배우는 첫날부터 스스로 악보를 보는 교육을 지향해서요. 악보 보는 법에 집중해서 잘 가르쳐보겠습니다. “

그렇게 그 아이의 레슨을 시작했다.


아이는 악보 외 다른 표시가 없는 악보를 못 치겠다고 했다.

그럼 한마디만 읽어오라고 하니 정말로 한 번 레슨 때마다 한 마디씩 쳐왔다.

근데 이상했다. 틀리게 쳐온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집중력을 발휘해서 성실히 연습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아이는 악보를 모두 읽을 줄 아는 아이였다. 분명 전에 가르치던 선생님께서 모르실리 없었다. 그렇다면 아이는 계이름을 써줘야 치는 것이었다. 왜 굳이?


아이에게 직접 물어볼 수 없었기에 내가 찾아야 했다. 아이들과 수업 외 대화를 나누기 위해 매주 금요일마다 특강을 한다. 금요일 특강이 나한테는 아이들과 마음으로 손잡는 필살기다. 아이의 마음을 더 잘 알려면 금요일마다 하는 특강 때의 모습을 면밀히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그림책 수업을 할 때도, 노래 수업을 할 때도 아이는 부정적인 단어를 잘 이야기했다. 그렇게 이야기할 때마다 몇 분 시간이 흐른 뒤 모두에게 알려주는 것처럼 긍정적인 단어로 바꾸어 말해주며 아이들과 수업을 이어갔다. 아이는 굴하지 않고 부정적인 단어들로 다시 바꿨다. 그런데 그 부정의 대상은 자기 자신이었다. 아이는 함께 특강수업에 참여하는 아이들이 모두 듣는 앞에서 자신이 불행하다고 했다.


하지만,

나도 굴하지 않고 긍정적인 단어로 바꿔주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너야.

부모님께서 너희들을 너무나 사랑하신다고 선생님한테 말씀하셨고, 선생님은 상담할 때마다 느끼고 있어. 너희들이 느끼는 것보다 그 사랑이 더 크단다.

진심이었다.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그리고 내 옆의 친구도, 또 만나는 어른들도 우리 모두가 우주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이며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를 사랑해야 한다고. 노래의 가사에서, 그림책에서, 좋은 글을 필사하며,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고 아이가 학원 문을 열고 들어올 때 인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피아노에 반사되는 아이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너 악보 다 볼 줄 알면서 왜 한 마디씩만 하는 거야?”

“틀리기 싫어서요.”

“틀려도 괜찮아. 안 틀리게 치는 사람은 학원을 다닐 필요가 없어. 선생님은 네가 틀릴 때 …”

아이가 불편해한다. 나는 말을 멈췄다.


보통 수업을 하면 열에 서넛은 선생님 앞에서 틀리는 걸 무서워한다.

틀리게 치고 있는 것을 알려주면 아니라고 우기기도 한다.

아이들은 틀렸다는 말을 듣고 우는 경우가 많고, 성인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물러설 수는 없다.

그날 수업은 “음악이 완벽해야 한다면 피아니스트대신 AI가 연주해야 한다.”는 이야기와 “내가 틀린 것을 찾아내서 개개인에게 맞는 방법으로 알려주는 것이 나의 일이며, 발견한 것이 다행이다.”는 이야기로 설득하는데 힘을 쏟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 설득의 과정은 레슨시간을 버리는 것이 아니다.

레슨은 단순히 피아노를 누르는 기술만 배우는 것이 아니다,

악보를 읽고 악기를 연주한다는 것은 손 끝으로 악기를 연주하기 전에 마음을 만지는 것부터 시작인 것이다.

틀려도 멈추지 않는 것. 어려워도 포기하지 않는 것. 악기와 내가 일대일로 마주하고 신체로 마음을 표현하는 것. 그렇게 되기 위해 차곡차곡 쌓아야 하는 절대적인 시간의 양과 깊이가 채워져야 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이 마음으로 이해되어야 손가락이 내 뜻대로 안돼도 물러서지 않고 될 때까지 도전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에는 해낸 나의 연주를 선생님 앞에서 보란 듯이 들려줄 때의 짜릿함! 솟구치는 자존!

포기하지 않으면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이렇게 자주 느낄 수 있는 것이 또 있을까?


아이는 그렇게 수업시간마다 틀리는 법을,

아니 틀리는 모습을 마주하는 법을 배워나갔다.


플래너를 선물해 주면서 1년 달력 페이지를 펴보라고 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의 생일을 써보라고 했다.

“가장 소중한 사람이 누구라고?” “저요!”

아이들의 밝고 맑은 모습에 나는 불시에 천국으로 끌려들어 간다.


그 아이가 조용히 물었다.

“선생님 생일은 언제인데요?”

그리고 아이는 가장 먼저 내 생일을 체크했다.

너무나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라 울컥 차오르는 눈물을 겨우 힘주어 삼켰다.


“정말 고마워. 그런데 다음엔 꼭 네 생일 먼저 쓰고 그다음에 선생님 생일 생각해 줘. 선생님보다 네가 더 소중해.”


이 순간은 내가 살면서 받았던 감동적인 순간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일이 되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아주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리고 아이는 하루에 한 페이지씩 악보를 연습해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처음부터 끝까지 쳐오겠다는 것이었다.

그날 나는 가까운 지인에게 한 마디씩 쳐오던 아이가 2페이지를 하겠다고 했다며 자랑하다 울었다.

사실은 그 이야기를 할 때마다 아직도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콧잔등이 시큰거린다.


촉박한 일정을 쪼개 수업을 듣던 아이는 수업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아이가 긴 호흡의 악보도, 스스로 마음껏 시작할 수 있는 마음이 되었기에 걱정되지 않았다.


아이는 지금 어떻게 자라고 있을까?

틀려도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소중하다고 망설이지 않고 말하고 다니는 중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