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보통 심플한 디자인의 스니커즈만 신는다. 컨버스나 반스 같은 브랜드인데, 다른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내가 평소 입는 옷 스타일과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더욱이 나는 여자치고는 발이 컸기 때문에-과거형인 이유는 나이가 들수록 발이 작아지고 있기 때문이다...-발이 얄쌍하고 작아 보이는 단화가 좋았다. 나름대로 합리적인 이유 덕분에 스스로 신발을 구매해서 신을 때부터 줄곧 그런 디자인만 찾았으니 최소 10년은 묵은 취향이자 고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나마도 직장인이 되고 난 후부터는 운동화는 자주 신을 기회가 없어서 자연스레 새로운 트렌드를 받아들이는 작업은 미뤄두고 있었다. 그러다가 며칠 전, 친구가 나에게 뜬금없이 물었다.
"이런 스타일로 된 운동화는 어때?"
그의 손에 들린 핸드폰에는 운동화 사진이 하나 있었는데, 딱 봐도 내가 평소에 신던 실루엣과는 확연히 달랐다. 일단 운동화가 약간 울그락불그락(?) 해 보였다. 근육질이 많은 사람들처럼 말이다. 나중에 찾아보니 그런 걸 어글리 슈즈라고 한다던데. 딱 그 모양새였다.
사실 나도 그런 스타일을 시도조차 안 해본 건 아니었다. 운동화를 사러 매장을 가면 예뻐 보이는 것들은 시착을 꼭 해보므로 두어 번쯤은 나이키 에어맥스 같은 모델을 신어봤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내 눈에 발이 너~무 커 보였다. 어릴 때 언니들은 발이 크고 키가 작은 나를 늘 호빗이라고 놀렸는데, 그런 스타일의 운동화를 신을 때면 꼭 매장 입구에서 따라란~ 하며 언니들이 등장해 김호빗! 김호빗! 놀리는 상상이 자연스레 이어져서 허겁지겁 운동화에서 내려왔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당시 PTSD를 앓고 있었던 것 같다...)
"아, 내가 이런 걸 잘 안 신는 이유는....."
하고 주저리주저리 해명을 시작하는데 별안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한테 에어맥스를 경험하게 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데?'
늘 반스나 컨버스 같은 굽 낮고 얇은 스니커즈만 신어온 나의 발이었기에 가끔은 굽 빵빵하고 몸체 두꺼운 나이키 에어맥스를 경험해보고 싶을 수도 있지 않은가. 발이 크든 말든, 옷 스타일이 어울리든 말든, 내 몸뚱아리가 걸쳐 보고 싶었던 걸 이성과 고집이 뜯어말린 거라면? 이라는 요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 길로 귀가하자마자 검색창에 나이키 운동화, 아디다스 운동화 같은 온갖 검색어를 입력해 신어보기는커녕 평소엔 관심도 없던 새로운 스타일의 운동화를 500개는 본 것 같다. 그리고 그중 가장 맘에 드는 모델을 고르고 골라 주문까지 완료했다.
내 취향을 저격하는 운동화만 늘상 신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주인 된 노릇으로 짧은 인생에서 할 수 있는 경험의 폭을 늘려주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만 원 남짓으로 삶이 다채로워질 수 있다니, 가성비 좋아~ 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