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4개월, 취업 준비를 하며 느낀 인생
25살. 남들은 직장을 갖는다는 그때에 나는 취업준비를 시작했다. 의도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남들보다 세상 물정을 너무 몰랐고 나에 대해 과대평가 했을 뿐이었다.
대학교 입학 후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공부였다. 12년동안 미친듯이 하기 싫었던 수학공부를 다신 안해도 됐으니, 행복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 독서였고 글쓰기였으므로, 대학 4년 내내 책을 읽고 글을 쓰면 좋은 성적을 주는 국문학 공부가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창작의 고통을 느끼다가도 어느 순간 영감이 떠오를 때면 온 몸 가득 전율이 돌았다. 조금 과장하자면, 그렇게 매 순간 행복한 대학생활을 했다. 졸업 당시 나의 학점은 4.17, 졸업 동기 54명 중 4등이었다.
거기까진 좋았다. 부모님께도 자랑스러운 딸이었고 우리집 유일의 4년제 졸업생이었으며 여전히 공부를 좋아하는 모범생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만 좋았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나는 목적과 목표를 잃었다. 하고 싶은 것도 없었고 할 줄 아는 것도 없었다. 등단이나 작가 준비를 제의 받았지만 거절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글쓰기로 밥벌이를 할 자신은 없었다. 4년 동안 내가 배운 건, 그것이었다. 세상엔 재능 있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나같은 '어정쩡한 재능'으로는 먹고 살 수 없다는 사실. 애석하게도 문학은 나에게 현실을 가르쳤다.
그래서 몰아치는 절망을 견딜 힘은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대기업 인사팀에서 인턴으로 첫 스펙을 쌓기 시작했지만, 이 사회가 나를 얼마나 하찮게 바라보는지만 뼈저리게 깨달을 뿐이었다. 소모품처럼 쓰여졌다가 버려지는 내 글이 아까워서 하루가 늘 벅찼다.
퇴사 후 다시 취업 준비를 하면서 직장을 선택하는 나만의 기준을 세웠다. 첫째, 안정적일 것. 불안정한 직장은 내 삶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다. 둘째, 워라밸이 어느정도 보장될 것. 직장은 직장이다. 돈을 벌러 온 곳에서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너무 많은 시간과 체력, 열정을 투자할 필요는 없다. 셋째, 내 전공과 상관 없을 것. 버려지는 글을 보면서 스스로 자괴감을 갖고 싶지는 않았다.
나름대로 획기적이고 합리적인 이유로 직장을 골랐다고 생각했는데,... 인생이 늘 그렇듯 나만 이런 생각을 한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세 가지 기준을 모두 부합하는 곳은 인기가 많았고, 최소 몇 백명과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하고 나서야 가까스로 면접 기회를 얻었다. 나는 입사 시험에 통과하기 위해 팔자에도 없던 상경과 법정, 회계를 공부했고 인바스켓 면접과 상황 면접의 차이를 알아야 했다. 꼭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만학도가 된 벅차고 초조한 기분으로 2년을 보냈다.
그렇게 2년이 흐르고 또 반 년을 더 채워가던 어느 날. 나는 그토록 갈망하던 공기업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3번쯤 같은 링크를 클릭하고 덜덜 떨리는 손가락으로 내 이름과 생년월일을 입력하는 행위를 반복하고서야 오류가 아니라 진짜구나라고 실감했다. 그 때서야 '악'하는 외침을 지르고 침대에 쓰러졌다. 27살의 12월. 조금 늦은 직장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라는 말이 있었다. 진부하고 흔하지만 느린 게 체질인 내 가슴을 언제나 설레게 하는 고전적인 명언이다. 뭐든지 빠르게 경험하는 사람이 있다면 느리고 뒤늦게 인생의 절정을 향해 가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나는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앞서 치고 나가는 것보다 뒤에서 관망하고 하나하나 두드려보며 걷는 사람. 그래서 앞으로의 직장생활동안 난 느린 시작이 체질인 사람답게 가능한 많은 것을 흡수하고 느끼며 걸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