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을 하다보니 혼자 있는 시간이 부쩍 늘어나면서 영화를 자주 보게 된다. 최근에는 작년도 개봉작인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를 보게 되었다. 마블시리즈를 일일이 챙겨보는 찐팬도 아니오, 그 엄청나다는 '어벤저스 앤드게임'을 영화관에서 보면서 꾸벅꾸벅 졸았던 나다 (앤드게임 잘못이 아니다. 나는 원래 영화관에서 잠이 잘오는 이상체질이다). 그런데 어쩐지 그냥 킬링타임용으로 튼 이 마블영화가 마음을 울린다.
완다와 닥터스트레인지가 우주차원으로 강력한 존재임에도 결국 자신의 행복을 단 하나도 지켜내지 못했다. 그들이 무한의 힘을 내뿜으며 악당을 처치할 때는 쾌감을 느낀다. 그들이 자신의 나약함에 무너져 흑화하거나, 평생을 그게 최선이었는지 자문하며 괴로워할 때는 그 이상의 감응(感應)이 든다. 말 그대로 마음이 동한다. 그들의 강력함에서 나는 내가 원하는 나를 보았으나, 그들의 나약함에서 나는 그냥 나를 보았다.
자기계발서를 즐겨보는 나는 종종 자신의 단점보다는 장점에 집중하여 그 역량을 키우라는 조언을 본다. 그러면 단점 같은 것은 어느샌가 신경쓰지 않게 된다고. 이성적으로 한참 맞는 말이렸다. 잘 고쳐지지도 않는 단점에 시간을 낭비할 바에야 그 시간에 장점을 개발하는 데 쏟아부으면 뭐가 되도 되리라.
헌데 인간은 바보인가. 대다수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자신의 단점과 나약함에 괴로워하며 인생을 보내는 경우가 더 빈번하다.
그게 인간의 서사다. 이상할 것도 없고, 고쳐야할 것도 아니며, 그냥 삶을 사는 우리네 서사.
내가 인피니트 사가의 그 어떤 인물보다도 남겨진 사람들인 완다와 닥터스트레인지의 이야기에 슬펐던 것은, 영웅인 줄 알았으나 자신의 아주 작은 행복마저도 지키기 못했던 나약하기 짝이 없는 인물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와 다름없다. 한 때는 모든 것을 이루고, 모든 이들에게 그늘이 되어 줄 수 있는 막강하고 대단한 사람이 될 거라고 믿었고, 또 그렇게 되어야겠다 살아왔으나 사실 나는 무력하고 힘없는 인간에 불과하다. 먹고 싸는게 전부인, 게으르고, 의지가 박약하며, 과거의 상처에 허우적거리고, 그나마 쥐고 있는 것조차 사라질까 두려워하는.
나는 참 그런 나약함을 잘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가까운 사람들조차 늘 내게 제발 힘들면 힘들다고 이야기하라고 역정을 낼 정도이니. 내 나약함은 종종 말이 아닌 글로, 내 일기장에 풀어 내려간다. 남에게 기대지 않고 강해보이고 싶은 생각도 있고, 나의 단점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오기 창창한 자존심 때문이기도 하고. 남들에게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못한다.
헌데 나의 그런 오기창창함이 내 서사를 갉아먹는다. 한 인간으로서의 나의 서사. 그 서사가 누군가를 감응시킬 수 있다는 걸 모르고. 늘 강할 수만은 없는 법이고, 늘 장점만을 지니고 살 수는 없는 법인데, 그 불가능을 바라고 살았다. 그 집착이 스스로를 더 힘들게 했고, 내 주변인을 지치게 했을 지도 모르겠다.
인피니트 사가에 그토록 많은 이들이 동고동락했던 것도, 그 오랜 고전들이 인생의 크나큰 고통을 이야기하는 것도, 브런치에 그토록 많은 이혼, 자살, 우울증 경험담이 공감을 받는 것도 다 인간이라면 누구든 크고 작은 나약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긴 말 없이도, 한 사람의 서사 자체가 큰 위로이자 용기가 되는 때가 있는 법이다.
요즘은 나의 단점을 인정하는 법을 찾고 있다. 쉽지는 않다. 단점을 찾으면 왠지 극복해서 없애야 할 것만 같은 압박감이 먼저 들기 때문이다. 내가 완다와 닥터스트레인지에 대해 그랬듯, 인간이기에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할 수 없으며 나를 줄곧 따라다니는 나약함을 안고 있다는 걸 먼저 내보이고 인정해야, 남도 나의 서사에 감응하리라. 그 생각으로 좀 노력해보고 있다. 그런 나약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두 다리에 족쇄를 달고서도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일 수 있다면 그건 무슨 이유 덕분일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