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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Gray Aug 08. 2016

안나푸르나에서 보낸 편지 6

비교적 맑은 날씨가 지속.


트래킹 5일차 드디어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에 도착했다. 4130m. ABC로 향하는 내 발걸음 하나하나가 내가 인생에서 걸어올라 온 가장 높은 발걸음으로 대체되었다. 천천히 뗀 걸음에도 불구하고 공기가 희박하여 현기증이 일어났다. 하지만 여태 잘해왔는데 코앞에 두고 뒤돌아서고 싶지 않아, 여태 해오던 그대로 변함없이 천천히 걸었다. 산행을 시작하자, 새벽 내내 오던 빗줄기가 그치고 구름이 걷히면서 그 사이로 안나푸르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차푸차레를 시작으로 히운출리, 안나푸르나 사우스, 안나푸르나 원까지 웅장한 봉우리들이 모두 보였다. 이곳에서 안나푸르나를 마주하고 있는 것이 마치 내 운명인 것처럼 느껴졌다.


죽음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가 지금 몸담고 있는 이 세계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 내 수명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고, 인간의 평균수명 상 하고 싶은 모든 일을 다해보면서 살 순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운명이라고 느끼는 것이 있다면 주저하고 있어선 안된다. 찾아가야 한다.


나는 여태 많은 것들을 뒤로 미루어왔다. 내일로, 일주일 뒤로, 한 달 뒤로, 일 년 뒤로.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해야 할 것들을 뒤로 미룬다. 그렇게 우리는 지금 해야 할 것들을 다음 생으로까지 미룬다. 그러나 나는 이제 죽음에 대해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죽음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 나는 나의 생 이전에도 없었고 나의 죽음 이후에도 없을 유일한, 그래서 고귀한 존재다. 이제껏 많은 책들을 통해서 혹은 자신을 사랑한다는 여러 사람들을 통해서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이 모든 일의 기본임을 배웠다. 그러나 나는 여태 이 말을 머리로만 이해하고 있었을 뿐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여기 이곳에 와서 나를 마주하고, 내 두 걸음으로 이곳에 올라선 순간 비로소 온 마음으로 나를 사랑하고 인정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이곳, 안나푸르나에 와서 얻게 된 가장 큰 것은 바로 '나'다.

어떤 실패와 고난 속에서도 나를 지키고 나를 사랑할 수 있는 법을 배웠다. 내가 나를 안고, 내 안에서 울고 있던 어린 나를 일으켜 안녕을 고하는 순간 나는 비로소 맑고 애정 어린 두 눈으로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살면서 절대 잊어서는 안될 나'
결국 나는 이 산행의 막바지에 다다라 그런 나를 만나게 되었다.
앞으로 내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시련과 고난이 있을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때마다 이곳에서 만난 나를 항상 떠올리고, 다시 힘을 얻어 나를 일으켜 세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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