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의 요리를 따라 만들자! ] 레이먼드 카버의 풋내기들 편
“그녀는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초콜릿 케이크를 주문했다.”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 중 한 작품의 초입 부분이다. 그 위에는 우주선과 발사대가 그려져 있고, 빨간 행성과 하얀 크림 별로 가득한, 상상하기만 해도 눈이 찡긋해지는, 겉면을 버터크림으로 다 덮어버린 직사각형 모양의 널찍한 케이크다. 이 만큼만 봐도 한국 엄마는 아닐 확률이 높다. 요즘엔 주문 제작이 늘었다지만, 적어도 필자의 경험을 토대로 한국의 어머니들을 봤을 때, 그녀들은 어젯밤 재어놓은 갈비의 간이 잘 되었는지가 더 중요하신 분들이다.
소설을 읽다 잠시 눈을 감고 직사각형의 우주 케이크를 떠올려봤다. 여자 주인공이 주문한 케이크의 모서리 부분을 백설기처럼 잘라 오목한 종이 접시에 담고는, 버터크림이 몰려있는 모서리 부분부터 움푹 파서 한입 가득 넣는 것을. 아- 행복하다. ‘미끄럽게 넘어지는 버터크림의 유분이 천천히 침과 섞이면서, 버터의 향이 코로 올라온다. 입 안아, 노력할 거 하나 없다. 그저 세-네 번 부드럽게 굴려주면 알아서 너희 밑의 목구멍은 힘차게 밑으로 내리는 운동을 할 것이고, 곧이어 두 배로 넘치는 침이 입안에 고이며, 식도를 타고 내려갈 때 붙잡은 버터의 향기가 점점 너의 뇌를 고장 내 이미 손쓸 새 없이 아까보다 더 큰 조각을 만들라고 지시를 내릴 거야. 그래서 언제 케이크를 먹는다고?’ 필자는 소설 속 초등학생 아들만큼 그 케이크를 기다렸다. ‘분명 빵집 주인이 월요일까지 오라고 했으니, 월요일 9시에 가면 되겠지? 아니 그러고 보니, 정확히 몇 시까지 오라고 했는지 왜 안 알려 주는 거야? 작가가 너무하네. 이런 디테일을 까먹다니. 아-뭐야. 어? 왜 아들이 갑자기 차에 치이는 거지? 아놔. 카버 진짜. 뭐야. 왜 병원으로 가. 의식불명? 뭐야. 죽었어? (책 바닥으로 던짐)’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워낙 흥분하며 버터케이크의 출현을 기다린 나로서는, 정하나 붙지 않은 아들의 죽음보다는 더는 우주 모양 케이크가 나와, 조촐히 노란 전등 밑에서 촛불을 꽂고는 생일 노래를 부르고, 엄마는 플라스틱 케이크 칼을 잡고 누가 모서리 부분을 먹을 것인지, 누구 먼저 줄 것인지, 케이크의 단면은 어떤지, 또 맛은 어땠는지, 남은 케이크는 이웃 중에 누구를 나눠줄 것인지에 대한 미래가 없다는 것에 화가 났다. 본 적도 없는 카버가 담배 연기를 후 내뱉으며, 내 입에 있는 케이크를 다 긁어내고, 접시에 있는 것까지 다 뺏어간 기분이었다.
대리만족이라도 해야 했다.
필자는 핸드폰으로 배달 앱을 켰다. 버터케이크를 검색했다. 정확하게 직사각형 모양의 생일케이크는 없었지만, 버터크림을 올린 컵케이크 정도는 있었다. 아쉽지만 뭐라도 입에 넣어야 했다. 나는 크림치즈 아이싱을 올린 초콜릿 맛 케이크를 골랐다. 제발 하루 정도 지난 미국 마트 특유의 꾸덕꾸덕하면서도, 인위적인 설탕의 단내가 케이크 상자를 뚫고 나오는 느낌이길 바랬다. 제발 파티시에가 조금은 게으른 스타일의 후덕한 외국계 아저씨이길 빌면서, 나는 케이크를 입에 넣었다. ‘으윽. 부드러워. 아이싱에 뭔 짓을 한 거지. 설탕 알갱이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아. 명문 조리학과를 나온 느낌. 이런 섬세한 아이싱은 처음이야. 초코빵은 설탕보다는 초콜릿 본연의 달콤쌉쌀한 맛을 끌어올렸군. 소금을 좀 넣어서, 감칠맛의 균형을 잡았어. 좋은 케이크야. 하지만-’ 필자는 그 완벽한 케이크를 변기에 뱉었다. ‘이 맛이 아니야.’ 필자는 다시 책을 펼쳤다.
아들은 죽었다. 사고를 당한 날로부터 이틀이 지난 수요일에. 부부는 집으로 돌아갔고, 때마침 전화를 받았다. 빵집 주인의 호통이었다. 아마 집을 비운 며칠 내내, 케이크 좀 가져가라고 몇 번이고 전화했을 것이다. 부부는 당장이라도 빵집에 있는 모든 케이크를 엎을 작정으로 주인을 만나러 갔다. 부부는 당당하게 자신들의 기분을 표출할 만한 사정이 있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그 어떤 사정도 ‘아들의 죽음’만큼 강한 것은 많지 않다. 부부는 분명 어딘가를 향해 아들의 죽음을 탓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딱히 그럴만한 곳이 없다. 사고나 재해란 것이 그렇다. 백날 하늘을 향해 억울함을 외쳐봐라. 누가 응답이나 해주나.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에 안정을 느낀다. 하지만 부부는 증오할 만한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상태다. 믿을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는, 우연이 만든 처참한 상황 속에서 그들 스스로가 이겨내야 한다. 말이 쉽지. 이겨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사실 필자도 저런 상황에서 어떻게 이겨내야 할지 모르겠다. 직접 내뱉은 단어긴 하지만, 저 단어밖에 쓸 수 없는 내 필력에 벽에 머리라도 박고 싶을 뿐이다. 차라리 벽에 머리라도 박으면, 벽을 보고 왜 이렇게 딱딱하냐고 노려라도 볼 수 있지. 그들은 분노할 대상도 없지 않나. 어쩌면 좋을까. 언젠간 저런 상황이, 저런 감정이 나에게 온다면 말이다.
빵집에 도착하자마자 빵집 안은 버터와 설탕, 계피, 초콜릿, 딸기 등의 향기로 가득했을 것이다. 하지만 부부에게는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느끼는 분노, 슬픔, 공허는 아무 이유 없이 사라지지 않는다. 빵집 주인은 그들에게 상해버린 케이크 대신 오븐에서 갓 나온 계피 롤빵을 건네줬다.
“이럴땐 먹는 게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거든요.”
부부는 계피 롤빵을 먹는다. 여자는 3개나 먹는다. 그렇게 그 부부는 내일도 있을, 내일모레도 분명 있을, 어쩌면 평생이고 벗어날 수 없는 슬픔을 잠시나마 멈추고, 오로지 빵에 집중했다. 빵의 냄새에 집중하고, 빵의 다양한 맛에 집중했다. 그들도 알고, 책을 읽는 독자들도 아는 사실은 바로 이 순간이 다음 트랙으로 가는 ‘정지’가 아니라, ‘잠시 멈춤’의 버튼이라는 것을. 살 좀 찌면 어떤가. 주변에서 이상하다고 보면 어떤가. 지금 잠시라도 멈출 수 있는 버튼이 눌렸다면, 그 순간을 즐기자. 무한의 멈춤과 무한의 재생은 결국 원치 않아도 정지를 향해 가고 있다. 이렇게 쓰다 보니, 스님이 된 격인데, 필자는 그 정도의 깨달음까진 없다. 그저 아는 척 좀 해봤다. 첫 글이니까. 하지만 결론은 이거다. 해결하지 말고, 골머리 쌓지 말고, 그냥 먹는 것에 집중하자. 이왕 이렇게 된 거 오감을 느끼며 만들어 먹자. 촉촉하고 말랑한 밀가루 반죽을 느껴보고, 젖병을 물다 잠이 든 아기 배처럼 도톰히 올라오는 반죽을 지켜보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하- 이번 생에 다이어트는 무리.’라고 중얼거리며 설탕을 한 숟가락 더 넣자. 설탕 알갱이들이 스테인리스 볼에 떨어지는 소리는 마치 소인국 버전 차임벨 같다. 비록 약간의 번거로움이 있지만, 그래서 더욱 추천한다. 이보다 좋은 멈춤이 없을 것이다. 필자는 책을 다 읽고, 창고에 처박아둔 대리석 반죽 밀대를 꺼냈다. (한참 허세와 물욕이 넘칠 때 인스타그램에서 보고 사 놓은 것이다. 유튜버 되겠다고. 유튜브를 하겠다는 건 살을 빼겠다는 다짐 이래 내 평생의 거짓말 순위 2위에 올랐다) 암튼, 만들 거다. 나만의 계피 롤빵을.
<궁극의 계피 롤빵 만들기>
재료:
-계피 롤빵 반죽용-
1컵 양질의 지방이 들어간 우유 (저지방 극히 혐오)
1 한숟가락 드라이 이스트
6 숟가락 녹인 버터
1 티 숟가락 바닐라 엑스트렉
4 컵 밀가루
1 티 숟가락 소금
1 티 숟가락 계핏가루
반 컵 설탕, 1 한숟가락(TBS) 설탕
-계피롤빵 필링용-
1 컵 갈색 설탕
2 숟가락 계핏가루
6 숟가락 꾹 누릴 정도의 버터
-크림치즈 아이싱-
크림치즈 한 덩어리
1/4 컵 버터
2 컵 파우더 설탕
1/2 티 숟가락 바닐라 엑스트렉
소금 한꼬집
1. 우유를 전자레인지에 몸 담그면 따뜻할 정도로 데운다. (대략 40초)
2. 볼에 우유, 설탕 한 숟가락, 이스트 한 숟가락 넣고 섞는다. 거품이 날 때까지 기다린다. 대략 5분.
3. 방금 만든 것과 설탕 반 컵, 버터, 달걀, 바닐라 엑스트렉을 섞는다.
4. 밀가루 4컵, 설탕, 시나몬을 가루 날리지 않게 천천히 섞어 반죽을 만든다.
손으로 해도 되고, 기계로 해도 된다. 필자는 기계 살 돈이 아까워 손으로 반죽을 패댔다.
5. 동그랗게 아기 엉덩이처럼 만든다. (만약 너무 끈적이면, 알아서 밀가루 더 넣자. 쫄지말자.)
6. 큰 보울에 귀여워진 반죽을 옮겨 담고, 그 위에 따뜻한 물수건을 덮는다. 반죽이 포동포동 부풀 때까지 기다린다. 대략 1시간 정도. (이런 말 하기 뭐하지만, 설마 물수건을 반죽에 닿게 하는 양반이 없는, 이 시대의 지식인들이 이 잡지를 읽고 있을 거라 믿는다.)
7. 한 시간 있다고, 쉬지 말자. 롤빵 안을 채울 필링을 만들어야 한다. 작은 보울에 버터, 갈색 설탕, 계핏가루를 섞는다. 그리고 남은 시간 동안 고민해본다. 이 필링을 어떻게 하면, 얼굴에 10만 원짜리 팩 바르듯 고르게 바를 수 있는지. 스파츌라? 숟가락? 붓? 손바닥? 뭐든 신중한 선택이길 바란다.
8. 그래도 시간이 남는다면, 아이싱을 미리 만들자. 크림치즈, 버터, 바닐라 엑스트렉, 파우더 설탕을 넣고 뭉갠다. 이때 크림치즈와 버터는 손으로 누르면 쑥 들어갈 정도로 물렁물렁해야 섞기 좋다. (상식인데, 가끔 너무 철저한 나머지 냉장고에서 막 꺼낸 크림치즈가 잘 안 녹아, 끊임없이 칼로 쑤시며 녹아! 왜 안 녹아! 외치는 사람이 간혹 있다. 그러지 말자.)
9. 허세를 부릴 시간. 밀가루를 한 움큼 쥐고, 바닥을 향해서 뿌린다. 흩뿌려진 밀가루 위에 반죽을 올려놓고, 밀대로 밀어 공기를 빼낸다. 대략 직사각형 모양에, 두께는 0.5 센티 정도.
10. 필링을 드디어 반죽 위에 골고루 바른다. 이때 겉 테두리 부분은 바르지 말자. 김밥 만들기와 같은 맥락이다. 김밥 테두리까지 밥으로 채우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11. 김밥처럼 돌돌 말고, 이제는 선택할 시간이다. 말려진 롤빵 반죽을 하루 정도 냉장고에 숙성하면 맛이 깊어진다. 이것은 현자이자, 빵의 신, 그리고 이성의 목소리다. 하지만, 필자는 먹을 때만은 인간이기보다 짐승에 가깝다. 그냥 잘라라. 대략 4-5센치 정도로 균일하게 자르면 된다. 필자도 그냥 잘랐다. 더 맛이 깊던 뭐든, 안 사다 먹고 이 정도 기다려준 것만으로 칭찬받아 마땅하다.
12. 종이 포일을 오븐에 들어갈 그릇에 깐다. 그리고 롤을 나란히 각 맞춰 넣는다. (롤은 오븐에서 서로 붙을 건데, 이게 바로 계피 롤빵의 매력이다. 다른 빵과 달리 붙어서 구워지기 때문에, 한 덩어리씩 잘라내면, 모든 롤빵의 겉면이 촉촉하고 부드럽다.)
13. 랩으로 한번 덮은 뒤, 그 위에 따뜻한 물수건을 다시 덮는다. 롤이 부풀어 오를 때까지 기다린다. 이때 오븐을 미리 데워놓자.
14. 어느 정도 부풀어졌다 싶으면, (대략 1.5-2배 정도. 40분 정도), 180도 오븐에 20분 정도 굽는다. (중요한 건, 오븐마다 약간의 성질이 다르니, 이때 믿어야 할 건 필자의 말보단 독자의 눈과 감각이다. 결국은 독자 입에 들어갈 것이다. 독자가 보기에 적당하게 구워졌을 때 빼는 거다. 그저 20분 타이머 해놓고 텔레비전을 본다거나, 휴대전화를 하거나, 뒷정리를 이 순간 하게 되면, 지금껏 한 이 모든 노력과 산물이 안타까운 쓰레기 행이 돼버린다. 모든 신경을 예민하게 세워, 눈이 빠지도록 오븐을 본다. 롤빵들이 조금씩 조금씩 위로 올라오면서, 옆으로 퍼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고소한 향기를 뿜어내며, 노릇하게 변하는 그 과정은 제빵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15. 오븐에서 꺼낸다. 가장 좋아하는 접시에 한 조각, 뜨거우니 손 조심하면서, 담아낸다. 아까 만든 아이싱 크림을 위에 기호대로 올린다. 드디어 끝이 났다. 계피 롤빵이다.
위의 글은 매거진 Chaeg 에 수록된 '모든 것을 멈추고, 계피롤빵을 만들자'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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