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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슐랭을 읽는 여자 Jan 12. 2024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미식을 체험하는데 내 청춘을 바쳤어

미식을 가르쳐드립니다 

한 때는 세계 1위의 자리를 굳게 자리잡고 있던 NOMA Copenhagen 의 셰프들과 - 


내게는 어제의 이야기처럼 생생했던, 나만이 간직했던 모험기를 꺼내보려 한다. 


나는 대학 시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세계 50위 레스토랑(World Best 50 Restaurants)과 미슐랭 가이드를 찾아 셰프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내 블로그에 직접 기록했다. 햇수로 세자면, 7년의 집중된 시간. 금액으로 환산하면 대략 파인다이닝 한 끼에 평균 30만 원 + a 이므로, 최소 5000만 원 이상을 음식에만 투자한 '미식'에 미쳐있는 사람이다. (20살 때는 이렇게 계산해 본 적 없는데, 정말 어마어마하다. 여기에 여행 비용까지 겹치면, 서울 외곽에 집 한 채는 샀겠지.) 


수많은 취미생활 중 '미식'을 내 키워드로 잡은 데에는 거창한 이유가 없다. 첫 번째, 나는 미국 시골 깡촌 중에서도 상(?)깡촌에 자리 잡고 있는 여자 기숙학교를 다니던 촌뜨기 학생이었고 (남자가 너무 익숙지 못해 학교 인근 슈퍼마켓에서 남자 캐셔가 있으면 어버버거리며 말도 못 했던 흑역사의 나...), 하필이면 붙은 대학교가 미국에서 가장 화려한, 세계의 중심지, 뉴욕 맨하튼에 위치한 NYU였다. 그렇다... 가쉽걸에 나오는 그 학교다.



뉴욕대학교는 타 대학과 달리 벽으로 둘러싼 캠퍼스가 없기에 집 밖 = 유혹과 욕망의 레이어 밀풰유 케익이다. 나를 사회와, 그것도 전 세계에서 가장 유행을 선도하는 뉴욕이라는 도시로부터 보호해 줄 울타리 따윈 없었고 그 말은 즉 잘만 이용한다면 #뉴욕이라는 곳에서 나라는 사람을 키우고 성장시키기에 무궁무진한 장소였다. 


두 번째, 나는 대학교를 들어가면서 이제는 얼굴도 기억이 가물가물한(거짓말임) 첫 남자 친구를 사귀었다. 뉴욕이라는 장소는 사실 파인다이닝 뿐만 아니라, 연극, 영화, 뮤지컬, 패션, 건축, 미술 등 유명한 것들을 말하려면 입 아플 정도로 많은데 그중에서도 '미식' '파인다이닝'이 내 키워드가 된 건 순전히 이 남자 친구 덕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여러분은 추억의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 혹은 '파리의 연인'을 떠올리며, 마치 첫 남자 친구가 나를 데리고 뉴욕의 비싼 파인다이닝을 데려가며 나에게 미식의 길을 인도하여 내가 탄생한 것 같지만, 천만에. 앞서 말하지만 파인다이닝은 온전히 내 돈 100%, 단 한 번의 협찬 혹은 남한테 얻어먹은 적 1도 없다. 그리고 대게 95% 이상은 나 혼자 가서 먹은 경험으로 이루어졌다. 


" 재인아, 너 Eleven Madison Park 알지?" (EMP: 뉴욕타임즈의 4스타, 미슐랭 3스타, 한때 World Best 50에서 North America 일짱을 먹었던 plant-based, 컨템포러리 파인다이닝. 헤드셰프는 동양인 여성을 사랑하는 대니얼 흄이다.) 


"그게 뭔데..." 


"아니, 어떻게 맨햍은에  살면서 EMP를 몰라. 대니얼 흄이 헤드 셰프로 있는..."(로 시작되는 EMP에 대한 대략적인 연혁 주저리주저리) 


저렇게 말만 주절주절 나열하고, 단 한 번도 데려가 준 적 없다. 얻어먹겠다는 것도 아니었고, 물론 인당 30만 원의 비싼 금액을 내가 다 내줄 수도 없기에 반반씩 내자고 직접 제안도 했는데, 그 친구는 매번 "안돼."뿐이었다. 이유는 대충 알 것 같지만,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다. 아무튼 그 친구가 처음 내게 뉴욕의 파인다이닝을 알려줬고, 내 머릿속에 언젠가 


그래, 니랑 헤어지면 제일 먼저 EMP 가서 밥 먹을 거다. 


 

이게 거의 인생 모토로 자리를 잡아버렸다. 그리고 저 다짐이 실현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 나이 21살, 첫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난 (정말) 혼자 파인다이닝에 쭈뼛쭈뼛하며 들어갔다. 


 

"Welcome. You must be Jane." 


악수를 건내며 처음 보는 나를 보고 내 이름을 불러준 EMP의 매니저를 나는 잊지 못한다. 

EMP의 Hospitality는 미래의 나에게 현질 5000만 원 이상의 미식 경험을 가져다줄 만큼 섬세했고 아름다웠으며, 파인다이닝에 대한 내 편견을 완전히 녹다운시켰다. (*Hospitality를 한국어로 바꾸어 말하지 못해서 죄송하다. 한국에는 이 단어를 대체할 딱 맞는 단어가 도저히 찾을 수 없다. 왜냐하면 Hospitality 와 Service는 확실히 다르기 때문. 간단한 해석을 위해서 한 때 나의 아이돌이었던 F&B 업계의 BTS인 Daniel Meyer - Setting the table에 나왔던 인용문으로 대체하겠다.) 



“Service is the technical delivery of a product,” he says, “Hospitality is how the delivery of that product makes its recipient feel. Service is a monologue. Hospitality is a dialogue.”


서비스는 요리를 기술적으로 전달하는 행위입니다. 하지만 Hospitality는 요리를 전달함으로써 받는 사람이 어떻게 느끼는지가 중요한 행위입니다. Service는 독백, Hospitality는 대화입니다.  - 대니 마이어


그렇다. 레스토랑의 일방적인 서비스만 받아본 나로서, 본 적도 없는 내 이름을 외워주고 내가 들어왔을 때 내 이름을 불러주며 환대해 준 곳은 지금 돌아봐도 이곳 EMP 뿐이었다. 별것이 아니여보여도 직접 경험하면 다르다. 저 무거운 회전문을 지나서, 믿을 사람 한 명도 없이 혼자 뉴욕의 미슐랭 3스타에서 밥 한 끼를 먹는다는 건 꽤나 큰 배짱과 무모함이 필요한 일이었다. 내 첫 파인다이닝이 EMP는 아니지만 (예약이 어려워 3달을 기다렸었다.) 그래도 대학교 2학년 봄에 EMP를 처음 가봤으니 내게는 이곳의 방문 이후 '앞으로도 파인다이닝은 혼자 다녀도 괜찮겠다'라는 생각을 갖게 해준 고마운 장소다.


결국 첫 남자 친구와의 헤어짐 이후 시작한 나의 무모한 취미였지만, 나름대로 전략은 갖고 취미를 시작했다. 바로 블로그에 꼬박꼬박 내 경험을 작성할 것, 그리고 단순히 맛집 블로그처럼 음식과 방문 기록만을 작성하는 것이 아닌, 그 레스토랑만이 전달하는 분위기, 매니저가 보여주는 Hospitality, 그리고 셰프의 접시 안에 있는 작은 재료 하나까지 다 물어보고 기록하겠다는 나만의 다짐이 있었다. 실제로, 내 블로그는 첫 게시물부터 가장 마지막 게시물까지 일관된 글 패턴으로 레스토랑을 소개하고, 셰프와의 대화를 꼭 추가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차별성이 향후 내가 미식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 감사하다. 


지금은 인생에 책임질 것이 있는 30대 중반이 되었다. 예전 나의 블로그는 어찌 보면 그날그날의 음식과 셰프만을 기록했다. 시간은 흘러 트렌드도 바뀌고 World Best 50 레스토랑도 이미 많이 변했지만 내가 믿고 있는 미식의 가치는 변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미식의 가치는 아래와 같다. 


미식은 내가 좋아하는 식감을 찾아가고 믿어가는 과정이다.  


절대 남의 말을 믿고 따라가는 건 미식이 될 수 없다. 물론 나도 처음에는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부터 시작해서, 나중에는 간판도 없는 음식점까지 찾아다녔지만, 미식 경험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도 내 입맛, 둘째도 내 입맛이다. 


하지만 요즘은 모두가 다 맛집을 검색하고, 누군가가 붙여준 '맛집'이라는 단어를 쉽게 믿고 내 입맛을 누군가에게 기대는 사회가 되었다. 이제는 맛집이라고 수식어가 붙지 않은 음식점이 없는 수준이다. 그래서 나도 어디서 꿇리지 않는 나이(?)를 갖게 된 만큼, 보다 전문적으로 여러분에게 '고유의 입맛'을 찾아갈 수 있도록, 미식의 재미를 알아갔던 나의 경험담과 함께 미식에 관련된 재미있는 글과 영상을 보여드릴 예정이다. 


미식의 일타 강사가 되는 그 날까지. 

모두가 미식을 즐기고, 맛집이라는 해시태그가 더는 쓸모없는 사회가 될 때까지. 

누군가의 잣대에 의해 한 업장이 무너지지 않는 그 날까지.  


누구보다 가장 자신있게 미식이 무엇인지 알려줄 수 있고, 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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