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 강의.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오늘의 미식 강의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앞서, '맛있다'를 결정짓는 17가지 요소를 세부적으로 나눈 표를 가져왔습니다. 물론 학계에 나와 있는 정설은 아니지만, 아직 학문으로 체계화되어 있지 않을 뿐이지 인간이 본능적으로 맛있음을 느끼는 이유는 생각보다 통일성 있고 단순합니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것들이 맛을 판가름한다고?
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기본적인 맛의 요소인 단맛, 짠맛, 신맛, 쓴맛, 그리고 감칠맛을 제외하고는 우리가 맛을 느낄 때 항상 기억하는 것들은 아닙니다. 하지만 알고 나면, '아! 우리가 한 접시 안에서 이렇게 다양한 경험을 했었구나' 하고 놀라실 뿐만 아니라, 이미 본능적으로 우리의 입맛 취향은 확실히 정해져 있기 때문에, '나'만을 위한 맛 공식을 찾아가는 재미가 상당합니다. 저도 이 부분 때문에 미식에 빠진 거니까요-
앞으로 17강 동안 저는 저 위 테이블에 있는 각 요소를 하나씩 심층적으로 다룰 예정입니다. 제가 아는 모든 지식을 여기에 꽉꽉 담을 예정이에요. 하지만 그 전에 앞서 여러분에게 먼저 '맛을 좌지우지하는 가장 큰 요소는 무엇인가?'에 대한 저의 믿음을 먼저 말씀드리려 합니다.
때는 바야흐로 8년 전, 제가 코펜하겐의 AMASS라는 레스토랑에서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천재 셰프 Matt Orlando와의 새벽 동이 틀 때까지 멈추지 않았던 대화에서 시작합니다.
짧게 나마, Matt Orlando 가 누군지를 설명해 드리자면
Eric Ripert 의 미슐랭3스타 Le Bernardin, Charlie Palmer 의 Aureole, London 의 대표 파인다이닝, Heston Blumenthal 의 The Fat Duck, 한 때 미국 원탑을 오랜 기간 차지했던 Thomas Keller - Per se 에서 수셰프로 2년, 그리고 세계 1위였던 NOMA의 수셰프, 그리고 헤드셰프의 경험 (*여기서 헤드셰프라 함은 물론 Rene Redzepi가 노마의 주인 셰프임은 모두가 알지만, 이 모든 것을 전두지휘하고 자신의 쿠킹 테크닉으로 노마의 철학에 맞는 요리를 창작할 수 있는 대표 셰프의 자리입니다.)을 마지막으로 Rene의 후원 아래 코펜하겐 구석탱이 땅에 AMASS 라는 레스토랑을 차리고 자신의 요리를 펼치는 훌륭한 셰프입니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미국, 영국, 코펜하겐 원탑 레스토랑에서 능력 인정받아 헤드 셰프하고, 세계 원탑 셰프의 후원받아 자신만의 레스토랑을 차린 업계 탑 티어 엘리트 세프 = Matt Orlando
이창동 영화감독이 영화감독을 위한 영화감독이라고 하죠. 그만큼 Matt Orlando는 셰프들의 셰프였습니다. 누구도 그의 쿠킹 테크닉과 에너지, 경험 노하우, 요리 철학, 그리고 열정까지 - 제 개인적으로 여러 셰프를 만나봤어도 이 분 같은 분은 만난 적이 없던 걸로는 (*2022년에 세계 1위를 했던 Geranium의 Rasmus Kofoed를 만났을 때도 비슷한 전율이 있었는데, Matt과는 확연히 다른 개성을 가진 분입니다. Rasmus는 요리를 미술로 생각하고, 세상을 미장센으로 보시는 분이라 시각적 아름다움과 맛을 추구하는 우아한 분인데 반면, Matt Orlando는 인류에게 처음 불을 가져다 준 타이탄인 프로메테우스의 열기로 가득한 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지금 Matt Orlando가 얼마나 뛰어난 지에 대한 이야기로 서론을 길게 끄냐-
바로 그를 만났을 때 저에게 해준 말 한마디가 지금의 저를 이 곳에 있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제 코스요리가 끝나자, 저를 데리고 자신이 연구하는 발효 음식을 하나씩 보여줬습니다. 최근에는 마늘을 흑마늘로 바꿨다면서 한국인인 제게도 익숙한 재료를 서슴없이 보여줬는데요. 저 창고에 들어가서 한 시간 내내 발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저 한 시간의 대화를 위해 한국에서 발효한 사삼, 당귀, 동백겨우살이를 갖고 Matt한테 적절한 쓴맛이 주는 한국의 감칠맛을 알려주며 서로 오독오독 동백 겨우살이를 씹어먹은 기억이 있습니다. 사실 차로 우려 마셔야 하는데 내 마음이 급해서 그냥 raw로 씹어도 된다고 말했는데... 죄송한 기억... 그러나 같이 씹어보며 살짝 태워도 맛있을 거 같다며 의견을 나눈 따뜻한(?!) 기억)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 코펜하겐은 발효 재료에 미쳐있던 시기였으니, Matt 이 간접적으로 자신도 NOMA Alumni (*Noma 출신인 세프들이 그 당시 코펜하겐을 중심으로 10개 정도의 레스토랑을 오픈하며, New Nordic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보여주던 시절)인 만큼 발효 재료 트랜드를 놓치지 않는다는 부분을 보여줬던 거 같습니다. 또한, 제가 제 소개를 발효의 나라, 대한민국 미식가라고 대차게 소개한 부분도 한몫 거둔 거 같은데.... 암튼 거짓말은 아니니까요. ㅋ
시간은 새벽 2시를 지나고 있었지만, 그의 열정은.... (잠 언제 자냐고 물어봤더니 상관없다며.... 그래서 보통 몇 시에 일어나냐고 했더니 새벽 5시에 일어난다고... 이제 3시간 남았는데... 난 언제자...) 저를 옥상에 있는 비닐하우스로 데려갔습니다. 안이 너무 어두워서 찍을 수 없었습니다만, 뭐 그냥 일반적인 채소를 키우는 하우스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 가지만 빼고 말이죠.
바로 '지렁이 호텔'이었습니다. Matt은 지렁이 수백 개를 담은 박스를 10층으로 쌓아서, 그들의 영양분을 호스로 연결해 각 열의 채소에 일괄적으로 주입하고 있었습니다. Matt이 말하길, 물론 아직은 연구 중이지만 (Matt은 항상 자신이 연구하고 실패하는 부분에 창피함이 없는 게 참 멋졌습니다. 오히려 의견을 묻느라 눈빛이 새벽 2시에도 레드불3캔은 때려 마신 사람처럼 초롱초롱했죠) 시멘트 옥상에서 영양분이 가득한 채소를 기를 수 없다는 한계에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저기서 한 30분 대화했나. 끝난 줄 알았지만, 저희의 본격적인 대화는 레스토랑 안에서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맛있다를 손님이 느끼려면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제가 물었고, 그가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습니다.
재인, 너도 알다시피 '미각적으로 맛있다'는 건 너무 뚜렷한 정답이 있고, 생각보다 쿠킹 테크닉으로 끝나는 문제라 쉬운 일이야. 하지만 손님들은 단순히 미각적으로 맛있더라도, 그 외에 수만 가지 이유로 맛있다는 생각을 뒤집을 수 있어.
예를 들자면 이런 겁니다. 내가 오늘 애인과 싸워서, 3달을 걸려 예약한 레스토랑에 혼자 오게 되었습니다. 입안에 캐비어 한통을 들이부어도 과연 제가 맛있다고 느낄 수 있을까요? 또다른 예를 들어볼게요. 서버가 음식을 내어줘서 제가 신나게 재료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하지만 서버는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그건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하고 모르쇠로 손님에게 설명한다면? 혹은 실제로 겪은 경험담입니다만, 한달 전에 예약한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의 헤드셰프가 내게 연락이 와, '미안한데 예약 좀 취소할게요. 그 날 중요한 투자자가 오늘 날이라 룸을 비워야 할 것 같아서요.' 라고 내게 말도 안되는 요청을 한다면 제가 다음에 갔을 때 과연 만족한 식사를 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쉽게 하는 말이 있죠. '입맛 떨어진다.'
네 인간은 너무나도 쉽게 입맛이 떨어집니다. 백날 맛있는 거 줘봤자에요. 단 한순간의 기억, 터치, 소음 하나로 겨우 쌓아올린 맛의 팔레트가 우다다닥 무너질 수 있는 게 인간의 '맛있다'라는 탑입니다.
제가 공부한 심리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심리학에서 배우는 사람의 성격 또한 '아주 똑같은' 이유로 뚜렷하게 정답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죠.
(잠시 산으로 가겠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대학교 1학년,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던 저는 그렇게나 갈구하던 filmmaking 전공을 포기하고, 인문계열 심리학을 선택했습니다. 인간의 마음, 인간의 성격을 잘 알면 캐릭터를 잘 쓸 테고, 영화를 만들 때 각본을 쓸 때 필요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죠. 심리학, 제게는 축복과도 같은 전공 선택이었고 재미있게 대학 3학년까지 전 세계 여러 심리학자들의 가설과 연구를 비교해 가며 공부했습니다. 교양과목까지 심리학으로 다 채울 만큼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대학 4학년 때 알게 되어버렸죠. 심리학에서 말하는 인간의 심리, 사람의 성격은 현대심리학에 와서는, 결. 단. 코. 정의 내릴 수 없다는 사실을요. 이걸 대학교 1학년 때 알았으면 참 좋았을 터인데, 안타까우면서도 오히려 이렇게 4년을 제대로 배우니, '인간에 대한 편견이라고 찾아볼 수 없는, 흔치 않은, 생존에 단 하나도 쓸데없는 사람'인 제가 되어버렸습니다. 지금은 '생존형 편견'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제가 누구나 갖고 있을 기본적인 편견이 없을뿐.... 아무튼, 이 두 가지 분야에서 제가 공통으로 느낀 결론은
사람의 성격이나 맛있음을 느끼는 기준이나 수천수만 가지의 경우의 수로 인해 결정되니, 단정할 수 없다.
그래서 더더욱 중요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Matt이 제게 말해준 한 문장.
내가 바라는 대로 맛있음을 느끼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이야. 나는 내 미래의 손님들을 위해 학생들에게 미식을 이곳, 코펜하겐에서 가르칠 거야.
그래서 그는 타국인 코펜하겐에서 교육부에 직접 연락해, 코펜하겐의 공립 초등학생들에게 재료를 키워보는 교육, 맛보는 교육, 직접 요리하고 먹어보는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때 쿵 하고 제 마음속에 생전 처음 들어보는 징이 울렸습니다. 그리고 내 안에 내가 분명하게 물었습니다.
그래서 너는 Matt Orlando을 주연으로 한 이 세상의 엑스트라로 최선인 삶을 살 것인가?
사실 어릴 적 마음으로는, 모든 걸 다 포기하고 (뭐 그렇게 쥐고 있던 게 많은 것도 아니었지만) Matt Orlando 옆에서 설거지라도 하고 살고 싶었습니다. 엑스트라는 무슨, 뒤에 영원히 보이지 않는 스텝이어도 좋으니 이런 대단한 사람의 옆에서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뜨겁다 못해, 광열. 미친 듯한 열정, 다신 어디선가 볼 수 없을 바로 그 프로메테우스의 '불'같았습니다.
그와 새벽 5시 반까지 대화하고, 직원들이 하나둘 들어오면서 대화는 끝이 났습니다.
지금에서야 그가 했던 말들을 조금이나마 소화할 수 있는 나이가 된 거 같습니다.
코펜하겐에서 그와의 만남을 마지막으로 저는 당연하게도 늦잠을 자 비행기를 놓치고, 이틀을 공항에서 날밤을 새웠지만 알딸딸하면서도 심장이 두근거리는 이 몽롱한 기분이 나쁘진 않았습니다.
단지 이 경험을 뒤로 제가 '무엇'을 해야 할 지는 가닥이 잡히지 않은 채...
그렇게 해가 여러번 지났을 뿐..
이제는 보여드리고, 알려드리려 합니다.
'맛있다'는 것은 교육할 수 있고, 교육을 통해 더 맛있음을 다채롭게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 같이 '맛있음'을 제대로, 내 안에 가진 자연스러운 편견까지 흡수하며, 받아들여 보아요.
지금부터 본격적인 미식 강의 시작합니다.
맛있음에 있어 정의를 내릴 수 없다는 말은 곧 '나라는 사람이 맛있다라고 느끼는 순간의 요소가 매번 달라진다는 것 뿐 '맛' 본연만 봤을 때는 꽤나 과학적인 이유와 원리로 우리에게 일관적인 정답을 보여주고 있답니다. 제가 친절하고 자세하게 총 17가지 정도의 요소로 나누어, 맛있음을 느끼는 요소를 이곳에서 다루려 합니다.
미식 일타강사의 자세로 바로 들어가볼게요. 제 1강은 [ 단맛에 관하여 ]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