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 어른이 된다는 건

작은 정성의 반복이 큰 환대가 될 때

by 정원

수능을 막 끝내고 피부에 바람이 닿는 것조차 따가웠던 11년 전 그해 겨울.


처음으로 이력서를 들고 카페에 지원했다. 사실 이력서 라기엔 부족한 종이 한 장이었다. 고등학교, 사는 지역, 나이, 이름 정도만 적힌 종이를 봉투에 넣으면 구겨질까 조심스러워 둥글게 말아 손에 꼭 쥐고 갔던 기억이 있다.


지원 조건에는 나이 제한이 있었고, 나는 그보다 두 살이나 어렸다.


독서실을 오가며 자주 들렀던 카페였다.

커피는 잘 몰랐지만 달콤한 음료가 좋았고 분주한 틈에도 서로를 배려하며 웃음을 잃지 않던 팀원들의 모습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여전히 이유를 딱 집을 수는 없지만 이상하게도 꼭 여기서 내 첫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싶었다. 당연히 거절당했다. 이제 막 수능을 마친 열아홉 살 , 아무것도 해본 적 없는 아이에게 맡길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었을까. 그래도 마음은 쉽게 접히지 않았고 왠지 모르게 그 공간이 나를 조금 더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어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주 주말에 다시 연락이 왔다.

같이 일해보자는 제안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첫 아르바이트는 식음료를 깊이 있게 사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제서야 아메리카노를 마실 수 있는 어른이 되었고 커피를 배우고 음료를 만들며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맛을 즐겁게 전하는 법을 배웠다.


지금은 사라진 공간이지만 여전히 그 자리를 좋아하고 그때의 인연들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


당시의 나는 사회에서 한 단계씩 나아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고

그렇게 ‘직업’을 갖는 단계를 막 시작하려던 중이었다.


물론 어떤 직업을 갖더라도 괜찮았겠지만, 어릴 적부터 나는 늘 여행과 삶이 공존하는 삶을 꿈꿨다.

객실승무원을 꿈꿔왔고 낯선 도시의 하늘을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하는 상상을 자주 했다.

여행과 일상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삶이 그땐 무척이나 이상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멋져보였다.


20대에는 직업을 갖고 살아가며 다양한 역할을 경험할거라 믿었고

그 시절 내가 꿈꿨던 서른의 나는 누군가에게 따뜻한 마음을 내어줄 수 있는 환대의 형태를 가진 공간을 만들고 싶어했다. 내가 받았던 것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더욱이 커졌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나는 즐거움을 나눌 때 가장 큰 효능감을 느낀다.


아주 어릴 적부터 그랬다. 유치원 때부터 앞치마를 입는 걸 좋아했다.

지금의 꿈도, 앞치마를 입고 하하호호 같이 웃으며 음식과 차를 내어주는 할머니가 되는 것이다.


아마도 그 꿈의 뿌리는 엄마에게서 비롯된 것 같다.


맞벌이를 하시면서도 요리도, 일도, 우리들의 교육까지 척척 해내던 엄마의 모습은 지금도 선명하다.

그중에서도 앞치마를 두르고 가족을 위해 정성스럽게 음식을 차려내고, 온 가족이 함께 둘러앉아 웃음꽃을 피우던 장면은 내게 가장 멋지고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생각해보면 가족이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간이 바로 식탁이었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마주앉는 그 시간을 나는 무척이나 기다렸고, 그 소박한 순간들이 내게는 참 소중하고 따뜻했다.


나 역시 따뜻한 온기를 전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우리의 건조한 하루에 작지만 확실한 위로와 기쁨을 전하는 일이 내 마음을 채웠다.


10년 전 막연하게 그렸던 서른의 모습과 지금의 나는
과정은 다소 달랐을지라도 ,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방향으로 한 걸음씩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낀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떤 거창한 목표를 이루는 일이라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하며 나만의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무척이나 소중하고 그 자체로도 충분히 행복하다는 걸 깨닫는다. 이제야 비로소 내 삶이 진짜 시작되었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나를 온전히 채워가며 그 따뜻함으로 주변까지 물들일 수 있기를 바란다.


몇 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키도 자라고 나이도 들었지만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사람에게 마음을 건네는 일을 좋아하고 내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누군가를 따뜻하게 하는 순간에서 가장 큰 기쁨과 효능감을 느낀다. 이제는 그 기쁨이 어디서 오는지를 더 잘 알게되었다. 내가 내 삶을 더 다정하게 들여다보고 감정과 생각을 섬세하게 감각할수록 그 마음을 다른 이에게도 온전히 전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배워왔다.


그래서 지금은 단지 바쁘게 흘러가는 삶이 아니라 내 마음을 제대로 느끼고 이해하며 살아가고 싶다.

그럴 때 비로소 나라는 사람도, 내가 주는 마음도 더 단단하고 진심 있게 닿을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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