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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jeong Feb 24. 2023

호주 입국심사

사는 이야기

호주 도착 후 입국심사 받으러 가는 길. 한숨이 길게 나왔다.

어떤 직원을 만나느냐에 따라 통관이 쉬울 수도 엄청 까다로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귀한 음식들이 입국심사에 부적합하다며 여러 번 빼앗겼던 아픈 기억이 떠올랐다.


코로나 시대가 과거로 옮겨간 탓인지 기내에도 빈자리 없이 꽉 찼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호주 입국심사. 음식물 반입 시 혹시라도 균이나 미생물들이 들어와 호주의 환경에 해가 될까 봐 철저한 검사를 한다고 하지만 정말 까다롭다.

한국 사람이라면 대부분 가지고 오는 고춧가루, 김치, 김, 멸치 등은 별 확인 없이 늘 통과되었지만, 친구에게 선물로 받은 묵 가루는 지퍼백에 포장되어 통관이 어려울 수 있으므로 옷 가방에 넣었다.

친구들이 챙겨준 음식을 모아 가방을 따로 하나 만들었다.


 1차 통관직원이 음식물이 있다고 체크된 용지를 보며 내용을 물었다. '고춧가루, 김, 말린 야채'라고 하자 잠시 망설이더니 살펴봐야겠다며 3번 줄로 가라고 했다. 말린 야채라는 말을 괜히 했나 싶었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1번: 음식물이 없어서 바로 출구로 이어지는 길.

2번: 음식물이 있지만 흔한 음식물일 경우 훈련견이 검사하는 비교적 간단한 방법.

3번: 통관직원이 가방에 들어있는 모든 음식물을 하나하나 살피고 통관에 적합한 식품만 골라낸다.

4번: 모든 가방을 엑스레이 촬영 후 직원이 다시 검사한다.


통관 직원이 가방에 있는 모든 음식을 테이블 위에 꺼내라고 했다. 고춧가루는 고추장용, 일반용, 청양고추(매운맛) 등으로 3봉지, 또 친구가 맛있다며 건네준 지퍼백 2봉지, 선배가 준 농협에서 구입한 듯한 포장의 고춧가루 총 6팩이었다.

묵은 나물도 무말랭이, 취나물, 고사리, 곤드레, 고구마 줄기, 애호박, 김, 북어 등을 꺼냈더니 테이블 위에 가득했다. 지퍼백 고춧가루 2팩. 청양고추 10근 1팩을 따로 분류하더니 나머지는 가방에 담고 3팩의 고춧가루는 폐기처분 한다고 했다.

통과된 고춧가루 3팩은 봉투에 고추그림에 글씨가 있으니 구입한 것이 확실하지만 나머지 3팩은 글씨 하나 없는 봉투이며 무엇이 섞여 있을지 알 수 없으므로 통관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매운 용을 구분하기 위해 일반 비닐봉지에 포장한 거라고 했지만 대답은 같았다.

고춧가루는 방앗간에서 비닐봉지에 포장만 했어도 여러 번 입국심사에 통과되었기에 별 걱정하지 않았다가 이런 일을 당하고 말았다.


다른 가방에는 음식물이 없냐는 직원의 질문에 묵 가루까지 뺏앗길까 봐 비타민이 조금 있다고 거짓말했다.

가슴이 콩닥거렸지만, 그 순간에는 만감이 교차하면서 머리보다 입이 빨랐다. 거짓말을 했다는 양심의 작은 소리만 입속에서 맴돌았다. 어쩌지?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다. 그리고 빼앗긴 고춧가루는 친구가 나를 위해 준 것이고 또 한 봉지는 엄청 비싸며 나에게 정말 필요하다고 사정을 했지만, 직원은 미안하다는 말만 했다. 내 표정이 슬퍼 보여서 그랬을까? 직원은 다른 가방 검사를 하지 않고 그냥 가라고 했다. 혹시라도 나머지 가방을 검사했다면 묵 가루도 뺏기고 거짓말한 벌금, 향후 몇 년간은 입국 시 철저한 가방 검사를 필요로 한다는 블랙리스트에 나의 이름이 올라갈 뻔했다.


딸을 만나서 반갑게 인사하고 돌아오는 길에도 빼앗긴 고춧가루 때문인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다른 고춧가루와 묵 가루를 뺏기지 않은 것도 행운이라고 위로를 해도 한 30분 지나면 다시 우울해졌다.

이럴 때는 나의 우울 꼬리를 잡고 묻고 달래며 대화해야 한다.


 평소 일어나는 감정을 바로바로 해소하는 편인 내가 가슴이 점점 답답해졌다.

가만히 앉아서 나에게 물었다.

너무 속상하지?

응 너무 속상해.

아무리 속상해해도 고춧가루가 돌아오지 않을 텐데 그 마음을 왜 보내지 못할까?

모르겠어. 무조건 속상해.

이유가 있을 텐데....


친구가 나눠준 따뜻한 마음을 통관직원에게 빼앗긴 아픔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친구랑 통화하며 나쁜 놈들이라고 흉도 보고 친구와 위로를 주고받고서야 우울하고 속상했던 마음이 풀렸다.


호주 입국심사 시 팁이라면 음식물일 경우 구입한 그대로의 포장 상태이면 대부분 통과된다.

생이나 날것의 야채나 해산물 등은 무조건 반입금지이며 포장 상태가 가장 중요한 사항이다.

입국하는 모든 분이 정성껏 가져온 음식물이 모두 반입될 수 있기를 바란다.


묵을 만들었다. 오늘 저녁은 묵밥으로 친구의 사랑을 먹는 날!



한 줄 요약: 호주 입국 심사는 사전에 조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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