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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jeong Sep 05. 2022

입꼬리 올리는 시간

별들이 제 눈 속에 살아요(1)

정제인_ 1-1_별들이 제 눈 속에 살아요


행복과 불행이 늘 내 곁에 있다. 누가 생각해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좋은 행복은 밀어 두고 불행했던 그리고 힘들었던 그리고 외로웠던 시간을 자주 만지작 거리며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던 시간들.

이제는 그렇게 살지 않기로 했다.

일상에서 밝고 따뜻한 순간을 일주일에 두 가지씩 라라 크루 방에 장식을 해야 한다는 순간부터 행복, 밝음, 따스함, 위로라는 이야기들을 찾고 생각하고 엮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생각해 보니 내 인생에서 하루하루가 엄청 짧게 느껴진 시간들이 있었다.




직장선배와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 약속 장소에 갔는데 다른 동료가 한 명 더 있었다. 그의 이름은 JB 였다. 평소 말수가 적었던 그는 나에게 직접 말하기 쑥스러웠다며 선배에게 자리를 부탁했다고 했다. 우리 둘을 소개해주고 선배는 자리를 떠났다. 사내에서도 서로 잘 아는 사이였고 나한테 없는 장점을 가지고 있어서 부럽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저녁 식사하며 칵테일도 한 잔 하고 편한 분위기에 직장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거의 마무리시간이 다가오자 JB는 오래전부터 나를 맘에 두고 있었다며 교제를 하자고 했다. 평소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머리로는 좀 튕기다가 대답을 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입에 모터를 달았는지 ‘그래요’라는 대답은 내 입에서 달려 나가 어느새 귓가에 있었다.




본격적인 연애를 시작했다. 사내연애를 하면 한 명은 타 지점으로 전근을 가야 했기 때문에 비밀연애를 했다. 아지트를 정해놓고 누구든 먼저 퇴근하면 그곳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우리는 종일 함께 근무하고 퇴근 후에는 데이트에서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했고, 그는 거의 매일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헤어지는 아쉬움이  더 컸던 날은 동네 카페에서 차도 마시며 수많은 말들이 오고 갔다.  그는 자주 니체나 라투스트라 같은 철학자들 이야기를 했는데 책마다 처음 몇 장씩 읽었던 지식이 바닥인 나는 맞장구를 치느라 발바닥에 땀이 났다.

집 앞에서도 한참을 이야기하다 헤어지고 대략 30분 후쯤이면 집에 도착하는 JB는 매일 전화를 했다. 통화도 저녁마다 2~3시간은 기본이었다.


주말이면 산으로 들로 각자 잠자는 시간도 줄여가며 하루도 빠짐없이 만나고 만났다.

다른 일행들과 다녔던 산과 JB와 함께 가는 산은 느낌도 달랐다. 그는 조금만 경사가 있어도 손 잡아주고 배낭도 메주고 세상 부러울 것이 없을 정도로 보살펴 주었다. 느껴보지 못했던 관심과 사랑으로 하루하루가 꿈만 같았다. 시선이 머무는 모든 곳이 반짝반짝. 별들이 나의 눈 속에 는 것처럼.





회사에 전화 교환원이 있던 시절이었으므로 사내연애를 제일 먼저 알아내는 곳은 거의 교환실이었다. 전화를 들고 ‘XXX 바꿔주세요’ 하면 연결을 해주는 방법이었으므로 자주 통화를 하면 의심을 받고 교환원들이 엿듣기도  했다. (그때 교환원들과 친분이 있어 경험을 표현함. 오해 없으시길요)

책상에는 두 명의 직원 사이에 전화기가 한 대씩 있었으므로 JB는 늘 내 옆 직원 이름으로 통화 요청을 했고 전화벨이 울리면 나한테 먼저 받으라고 했다. 대부분의 사내연애는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들통나곤 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볼링동호회 회원이었던 나는 남자 총무나 다른 회원들이 전화를 가끔 했기 때문에 사내연애는 거의 의심받지 않았다. 평소 오지랖이 넓은 편인 나와 정 반대인 JB와의 연애를 동료직원들이 상상하기에는 참 어려운 상태였다.

고객의 서비스가 최우선인 직장에서의 교육방침은 고객의 요구가 과하거나 억지를 부려도 미소로 응대하라고 했다. 그것을 본성인 듯 따랐던 나와는 정 반대인 JB 였다. 고객의 잘못된 부분을 말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그를 보며 부럽기도 했고 멋있어 보였다.   




첫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어느 날 JB는 나에게 반지를 끼워주며 청혼했다. 연애 전에 근무하며 서로 지켜보았던 시간도 있었고 은근히 기대했었는지 이번에도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Yes’라고 대답했다.

완전히 나만을 위한 사람, 나만을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영원히 있고 싶다고 했다.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해준다는 사람, 비록 그 길이 가시밭길이라 해도 나와 함께라면 행복하다고 했던 사람.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퇴근 후 우리의 아지트에서 JB를 기다렸다. 한 시간이 지나도 그가 오지 않았다.

사무실로 전화를 했더니 친구가 찾아와서 함께 술 한잔 해야 하니 우리는 내일 만나자고 했다.

친구가 언제 왔느냐고 물었더니 한 시간 정도 기다렸다며 얼른 나가봐야 하니 그만 전화를 끊자고 했다.

통화는 종료되었고 미리 전화해주지 않은 JB의 행동에 화가 났다.

친구를 불러낸 나는 술도 마시고 저녁도 먹고 평소보다 좀 과한 술 탓에 좌석버스를 타고 잠이 들었다.

종점에서 기사분이 깨워 일어나 보니 광장동에 내려야 하는데 종점은 강동구 명일동이었다.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했는데 귀가가 늦어지는 딸을 걱정하던 엄마는 이미 한 시간 전쯤 JB집에 전화를 한 상태였다. JB는 오늘 이만저만한 사정으로 나와 만나지 못했다며 아직까지 귀가하지 않은 나를 걱정하고 있으니 도착하면 전화를 부탁했다고 했다.

통화하며 잘못은 JB가 했는데 불똥이 나에게 떨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다음날 출근한 그는 점심을 나가서 먹자고 했다. 사무실과 좀 떨어진 허름한 식당에서 주문한 식사가 나왔음에도 그는 밥을 먹지 못하며 입을 열었다.

JB 아버님께서 밤에 늦게 다니는 일로 화가 많이 났고 결혼을 반대한다고 했다. 그래서

JB는 집을 나오겠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하루아침에 이런 결정을 한 그의 아버님도 JB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해결을 위해 우리 만남은 미루고 매일 일찍 들어가서 술도 함께 하면서 그의 아버님을 설득하기로 했다.

JB는 그의 아버님이 고집도 있고 한번 뱉은 말은 쉽게 바꾸는 분이 아니라서 가출만이 답이라고 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일단 나를 만나볼 수 있게만 하라고 했다. 평생 술로 살던 막내아들이 나를 만나면서 술도 거의 마시지 않았고 생활이 달라졌으므로 어떤 여자인지 궁금해하셨다고 들었다. 며칠 집에 일찍 들어가 얘교를 부린 막내아들의 활약으로 나의 초대 날짜가 잡혔다.




그날은 몹시 추웠다. 아버님께 인사를 드리고 너무 춥다며 앉아 계시는 이불속에 손을 넣으며 아버님 이불을 함께 덮었다.  그런 나를 쳐다보시더니 아랫목으로 더 들어오라며 이불을 단단히 덮어 주셨다.

식사 후 아버님의 첫 번째 질문이 둘이 결혼하게 되면 당신은 우리랑 살고 싶다고 했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좋아요'라고 대답했다. 아버지도 일찍 돌아가셔서 아버님과 함께 산다면 아버지처럼 좋을 것 같았다. 일곱 번째 며느리인 나랑 함께 지낼 확률은 1%도 없었다. 다른 며느리들이 서로 모시고 간다고 해도 큰 아드님 집에서 좀처럼 움직이질 않는다는 상황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대가족에 살았던 나는 어른들이 편했다. 그 때문인지 아버님은 첫날부터 나를 맘에 들어하셨다.

우리 집은 딸 만 셋이고 JB는 남자 형제가 7명이니 이제부터 너는 사돈 될 집의 아들이다 생각하라고 JB에게 말씀하실 때 감동이었고 아버지같은 따뜻한 사랑이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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