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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jeong Sep 08. 2022

입꼬리 올리는 시간

별들이 제 눈 속에 살아요 (2)

JB가 처음 집에 인사하러 온 날이었다. 평소 음식 솜씨가 좋았던 엄마는 정말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차려놓았다.  명절 상보다 더 많은 음식을 보고 놀란 JB는 엄마의 질문에 대답을 잘했지만 많이 긴장한 듯 보였다.

식사 후 과일을 챙겨서 내 방으로 갔다. 음악을 틀어놓고 앨범도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첫 키스를 했다. 심장이 얼마나 요란하게 요동을 치던지 JB의 귀에도 들릴 것만 같아 난감해하던 순간 엄마가 부르며 간식을 가져가라고 했다. 정신없다는 표현이 맞을까? 아니다 약간은 현기증도 났었고 표현하기 묘한 순간이 엄마의 호출로 급 마무리되었지만 가슴의 천둥소리는 쉽게 멈추지 않았다.




5월의 신부가 되기로 날은 정했지만 회사에 전세자금신청을 위해 3월에 혼인신고를 했다.

마침 JB의 업무가 대출 관련이었으므로 이번에도 아무도 모르게 일이 비밀리에 잘 진행되었다.

사내에는 나의 결혼 소식만 공식적으로 알렸고 원래 말이 별로 없는 편인 JB는 친한 몇몇 사람에게만 결혼 소식을 알린 상태였다. 물론 상대가 나라는 사실은 밝히지 않았다.

점심시간에 구내식당에 가면 직원들이 결혼할 상대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어떻게 만났어? 직업은? 성격은? 프러포즈는 어떻게 받았어? 몇 살 차이야? 첫 키스는?

JB의 상태를 사실대로 말하고 직장은 다른 회사 다닌다고 거짓말했다.




이제 부부나 다름없었으므로 주말이면 내심 다음 진도를 기대했지만 JB에게선 좀처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친 어느 날 저녁 식사하며 술도 한잔하고 귀갓길에 나는 집에 가기 싫다고 말했다. JB는 5월까지 지켜주고 싶다며 대문 안으로 내 등을 밀었다. 이미 법적으로 부부인데 5월까지 기다린다는 말에 ‘나를 사랑한다는 말이 진심일까?, 남자가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생각하며 슬슬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몇 주가 지나고 나는 주말에 춘천으로 여행 가자고 했다. JB는 아침 일찍 출발해서 하루 일정을 원했지만 엄마한테 허락을 받았으니 닭갈비도 먹고 호숫가도 거닐며 산책 등 각종 감미로운 이벤트를 나열하며 설득한 끝에 1박 2일로 춘천에 갔다.  

단 둘이 여행 가는 건 처음이었다. 닭갈비도 맛있고 볼 것도 많았지만 해가 산을 넘어가자 또 스멀스멀 다음 진도 생각이 났다. 날씨도 춥고 피곤하니 숙소로 들어가자고 했다. 호텔방에 들어서자 헉! JB는 침대가 두 개인 방을 예약했다. 같은 방에서 밤을 함께 보낼 수 있으니 별은 봤고 설마 따겠지 생각했다.




초저녁 잠이 심하게 많던 나는 JB가 샤워하는 동안 음악도 틀고 콧노래를 부르며 기다렸다. 끊임없이 들리는 물소리, 남자가 샤워를 저렇게 오래 하나!라고 생각한 것까지 기억나는데 잠들어 버린 나.  눈 떠보니 건너편 침대에 밤새 잠을 설쳤는지 깊은 잠에 빠져있는 JB가 보였다. 순간 ‘나는 지켜졌구나!’하는 생각에 초저녁에 잠들어 버린 내 발등을 찍고 싶었다. 참 원칙적인 사람이라 앞으로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그때는 눈곱만큼도 할 수 없었다. 콩깍지가 덮여있으니 무엇을 볼 수 있었단 말인가!




결혼을 일주일 남겨놓고 JB는 나와의 결혼을 상사에게 말했다. 상사는 인사이동 문제로 우리 둘을 불렀다. JB는 본인이 다른 지점으로 가겠다고 결정했다.  그리고 얼마 후 교환실 직원이 지점장실에서 나의 호출이 있음을 알려왔다. 지점장님은 나를 보자마자 결혼상대가 JB가 정말 맞는지 물었다.

웃으면서' 네'라고 대답하자 왜 하필이면 JB냐며 이유를 말해보라고 했다. 평소 나의 근무 성적이나 실적 등은 만여 명이 넘는 전체 직원 중 상위 1%였다. 늘 상대편의 입장에서 근무를 하다 보니 결과가 좋게 나왔다.

반면 JB는 아무리 상사가 시키는 일이라도 규정에 위반되면 하지 않았다. 고객이라도 부당한 말과 행동을 보면 옳고 그름을 설명했다. 그는 웃으면서 '저런 놈하고 결혼하면 고생해 지금이라도 안 늦었어 다시 한번 생각해'라고 했다.

내가 JB를 선택한 이유는 모두' 네'라고 할 때 '아니요'라고 대답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임을 그 누가 알겠는가!




그래서 그런지 '오늘 점심에 물국수 먹자'라고 했더니 모두' okay'라고 했다.

JB만 '비빔국수'라고 외치며 손을 번쩍 들었다.

나를 가장 귀찮게 하는 사람.

그때 알아봤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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