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ne jeong Sep 12. 2022

사는 이야기

머리 염색

흰 눈/공광규


겨울에 다 내리지 못한 눈은

매화나무 가지 위에 앉고

그래도 남은 눈은

벚나무 가지에 앉는다


거기에 또 다 못 앉으면

조팝나무 가지 위에 앉고

그래도 남은 눈은 이팝나무

가지에 앉는다


거기에 또 다 못 앉으면

쥐똥나무 울타리나

산딸나무 가지에 앉고

거기에 다 못 앉으면

아까시나무 가지에 앉다가

그래도 남은 눈은

찔레나무 가지에 앉는다


앉다가

앉다가

더 앉을 곳이 없는 눈은

할머니가 꽃나무 가지인 줄만 알고

성긴 머리 위에 가만가만 앉는다


출처:www.yes24.com




흰머리가 하나둘씩 올라왔다. 내 모습은 거울에서나 볼 수 있기 때문에 평소 거울을 거의 보지 않는 나로서는 흰머리가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하얀 머리 숫자도 늘었겠지, 당연한 일 아닌가!

그러나 남편은 그 흰머리를 자신이 심어준 것인 양 보기 힘들어했고 염색을 하면 좋겠다며 계속 칭얼댔다.


우연히 공광규 시인의' 흰 눈'이라는 시를 만나게 되었다. 아직 할머니(법적으로)가 아닌 나는  꽃나무 가지인 줄 알고 내게 내려준 흰꽃이 벚꽃처럼은 아니어도 나름 나이에 맞게 예쁘게 가고 있구나 생각했다.




결혼 전 우리 집은 이사 한 기억이 한두 번 정도밖에 없어서 그런지 이웃에서 이사 가는 모습만 봐도 부러웠다. 시집은 이사 많이 가는 사람하고 한다고 입버릇처럼 해버린 말이 씨가 되었다.

결혼 후 새로 만들어진 나의 초본은 15년 만에 두 장이 되었다.


사원아파트를 분양받았는데 동호수를 추첨하는 날이었다. 내손이 복 손이라며 남편이 내 등을 단상 위로 밀었다. 통 속에 손을 넣어 공을 잡으면  동호수가 적혀 있었다. 25층 아파트에 20층 전망이 탁 트인 막힘이 전혀 없는 중간 동이었다. 다들 '와' 소리 지르며 부러워했지만 우리 가족은 그렇게 높은 층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 입주 후 새집 증후군인지 잘은 모르겠으나 아들은 겨울만 되면 감기를 달고 살았다. 남편은 주말이면 땅의 기운을 받아야 한다며 가족들을 캠프로 민박으로 호텔로 고수부지로 다니며 흙과 가깝게 지내게 했다.



양도소득세 비과세 3년을 기다리며 남편은 전원주택부지를 보러 다녔다.  경기도 남양주시에 500평을 사서 목조 전원주택을 지었다. 텃밭도 하고 과실수도 심고 눈으로 덮인 시야가 나의 눈 속까지 하얗게 물들였다.


꿈같은 가을, 겨울, 봄이 지나고 일이 터졌다.

아랫집에 혼자 사는 할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자였다. 술에 취하면 매일 우리 대문 앞에서 몇 시간씩 중얼거리고  욕하고 고함도 쳤다. 집과 대문까지 거리가 있어서 현관문 닫으면 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문제는 그 할아버지가 사나운 개들을 2,3마리 데리고 다녔는데 우리 집에도 진도에서 데려 온 순종 진돗개 2마리가 있었다. 개들이 짖는 소리에 신경이 점점 날카로워졌다. 경찰에 신고하면 몇 번 출동했으나 나중에는 '아 그 할아버지 그냥 참고 사세요.'라며 방법이 없다고 했다. 계속 경찰들을 불편하게 할 수도 없었다.




전망 좋고 목조주택이며 1,2층 거실 천장을 터서 제법 잘 지어진 집이지만 전원주택이 흔하지 않던 시절이라 매매가 쉽지 않았다. 남편은 우리가 힘든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얼마나 괴로웠는지 퇴근길에 신호를 기다리며 하늘을 바라보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부르며 너무 힘들다고 말하는데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고 했다.

막내아들 우는 모습을 보셨는지 그다음 날 한 국회의원 비서라는 사람이라며 집을 보러 왔다. 어디론가 통화 후 그는 계약하겠다고 했다. 집을 팔면서도 이웃집 할아버지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다. 일 년 뒤 그 집에 갔었는데 이웃 할아버지 집까지 우리 집을 구입한 그 국회의원이 전부 매입했음을 알게 되어 참 좋았다.


매수자의 조건을 다 맞춰주다 보니 우리 집 구하는 일이 급해졌다.

마침 마석에 비어있는 아파트가 있어서  이사했다.

전원주택에서는 아이들이 운동장처럼  뛰어놀던 습관이 있어서 설명하고 주의를 줬지만 아랫집이 신경 쓰였다.

며칠 후 아랫집에서 아이들 발소리가 시끄럽다며 뛰지 않게 해달라고 올라왔다.

마침 그 아저씨 머리 스타일이 짧고 스포츠형이었다. 등치도 좋아서 흔한 말로 깍두기 같았다.

아이들한테 발끝을 세우고 다녀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지만 아이들이 발끝을 내리고 뛰었는지 또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열자 아이들이 ' 어 아저씨 또 오셨다' 하면서 두 손 모아 함박 미소와 함께 인사했다. 우린 죄송하다고 정말 조심하겠다고 사과했다.

그리고 한 달 만에 다른 집으로 이사했고 아이들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날 저녁 우리는 단지 앞 치킨집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술을 마셨다. 남편은 자신을 만나 고생한다며 다음 생에는 더 멋진 남자를 만나라고 했다. '당연하지'라고(그때는 빈말이었음) 속삭였다.




이처럼 나는 한 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동분서주 이동이 많아서 그랬는지 흰 눈이 나를 찾지 못했다.

매화나무, 벚나무, 조팝나무, 이팝나무, 산딸나무, 아까시나무, 찔레나무는 이사도 가지 않고 한 자리에서 오래 살아서 그런지 흰 눈이 잘 찾아 내렸다.

아이들이 다 커서 그런지 움직임이 줄어든 틈을 귀신같이 알아차린 흰 눈이 나를 꽃나무로 봐주기 시작했다.




그래도 여전히 남편은 염색하라는 설득에 지구력을 보였다.

'그래 하자. 매일매일 자주자주 흰꽃을 보면서 꽃이 아니라 스트레스받는다면 바꿔야지.'

검은 꽃보다 짙은 갈색 꽃을 피운 나의 머리를 보자 남편의 얼굴에 미소가 흰 눈처럼 피었다.

당신이 심어준 것이 아니라고 해도 그냥 그건 말뿐, 남편의 귓가 근처도 못 가는 나의 말은 메아리가 되어 나에게 다시 돌아왔다. 한두 달 후 면 또 피어날 흰꽃을 나는 기다려본다.



#라라 크루

작가의 이전글 입꼬리 올리는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