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ne jeong Sep 16. 2022

입꼬리 올리는 시간

희안한 모임

친구가 백화점에서 중학교 때 나랑 가장 친했던 친구 H를 만났다며 전화가 왔다. 몇십 년 만임에도 불구하고 목소리는 여전했고 얼마나 친했던지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왔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그 친구를 다 알고 있었다. 친구는 H카톡을 나와 연결해 주었다.

그 후로 자주 연락했다.

H는 다른 친구들에게 내 이야기를 했더니 다들 보고 싶다며 그중 가장 오지랖 넓은 친구가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연결된 몇몇 친구들과 소소한 이야기로 마치 중학교를 다시 다니는 듯 그곳에 머물기도 하며 참 행복한 시간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몇 달이 지나고 단톡방에 내가 초대되었다. 들어가 보니 20명 가까이 친구들이 서로 반갑게 인사했다. 그리고 오지랖 넓은 친구가 내놓은 의견이 ZOOM모임이었다.

시간과 날짜를 정했고 준비물이 있었다.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술과 안주를 가지고 화면 앞에 모이라고 했다.

그 아이디어에 얼마나 웃었던지!!


모임날이 되었다

혹시 몰라서 좋아하는 진과 스파클링 워터, 레몬, 오이, 민트 잎까지 준비해 놓은 나는 교실에서 도시락 까먹을 학생처럼 신났다.

미팅이 시작되자 다들 반갑다며 시끌 시끌했다. 중학교 교실에 모인 듯 말도 많고 듣고 웃기만 해도 바쁜 시간이었다. 선생님을 짝사랑했던 이야기부터 가장 유명했던 사건까지 등장했다.


그때 당시 체육주임 선생님이 엄청 무서웠는데 월요일마다 조회 전에 전체 정열을 그 선생님이 맡았다.

다른 선생님은 우리들을 통제하기에 역부족이었다.(순하셔서)

그 체육선생님도 처음 구령대에서 '차렷!' '열중쉬어!'라고 했을 때 많은 학생들이 여전히 떠들기도 하고 선생님을 등지고 서 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 순간 선생님은 큰 소리로 오늘 조회는 하지 않겠다. 너희는 정신교육이 먼저 필요한 학생들이라고 했다. '전체 앉아'라고 큰소리로 말하자 모두 얼떨결에 앉았다.

그 상태에서 오리걸음으로 학교 운동장을 계속 돌렸다. 한 10분에서 20분 사이였을까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바닥에 주저앉아서 우는 아이들도 있었고 쓰러지듯 넘어지는 아이들도 있었다.

다음날 다리에 근육통이 심해서 제대로 걸을 수 없었고  통증도 일주일 정도 갔다.

그 후부터  체육선생님이 구령대에 올라오기만 해도 알아서 줄을 맞추고 눈동자에 힘이 들어가며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그 사건 이후 그 선생님을 짝사랑하게 된 나를 친구들이 놀리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약간 까칠한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는 고생을 사서 할 팔자)

평균 각자 한 사건씩 이야기했지만 시간은 계곡 물처럼 흘러갔다. 입꼬리가 내려올 줄 몰랐다. 얼굴에 주름은 조금씩 보여도 딱 중학생 때 말투와 몸짓 그 자체였다.

건배 제의가 들어왔다. 우리의 만남을~~~ 위하여!!


건배를 하며 홀짝홀짝 마셨는데 얼마큼 마셨는지 모르겠다.

3시간 넘게 만남이 이어졌고 과음 탓에 어떻게 잠들었는지 모르게 아침이 되었다.

속이 별로 좋지 않았다. 애주가인 남편이 뭐든 먹어야 한다며 국과 밥을 차려주었다.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먹어야 그 증상이 빨리 사라진다며 이것저것 챙겨주었다.

 그는 찜질방에서 땀을 흘리면 숙취가 빨리 사라진다며 여기는 그런 것들이 없어서 아쉽다고 말하더니

아!! 좋은 방법이 있다며 반신욕을 하라고 했다.

일단 불편한 속을 좋게 한다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반신욕을 했다.

그런데 없던 두통에 어지럽고 입이 마르며 쓴맛이 났다. 머리도 무겁고 바로 침대에 누웠다.


마침 아들에게 전화가 와서 상황을 설명했더니 과음한 상태에서 반신욕은 자살행위라며 몇 가지 약을 먹으라고 이름을 알려 주었다.

 음주 후 몸에 알코올을 분해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수분이 필요한데 물도 별로 마시지 않고 반신욕을 하며 땀을 흘렸으니  체내 수분이 평소보다 더 많이 배출되어 수분 부족 현상이 나타났다.  심하면 탈수 증상으로 어지러움, 현기증, 저혈압, 빠른 심장박동, 고열을 일으킬 수 도 있다고 했는데 내가 딱 그 상태였다. 나의 간이 나를 버리고 집을 나간 듯 피로감이 내 몸을 누르고 누르며 일어날 수 없게 만들었다.

간의 첫 번째 대화는' 피로감'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그 대화를 무시했고 친구들 모임 전날 남편과 저녁 먹으며 가볍게 몇 잔 했고 친구들 모임으로 이어졌으니 간이 화가 날 만도 했다.

'간아 미안해 다시는 널 연속적으로 괴롭히는 일은 없을 거야.' 라며 살살 달랬다.


친구들과 어릴 적 이야기 속에 풍덩 빠져 있어서 그런지 나의 몸도 젊은 시절로 돌아갔다고 생각했다. 젊을 때야 과음을 해도 다음날 새로 태어나듯 가볍고 퇴근 후  식사하며 술은 기본으로 마셨던 일명 '스트레스는 이렇게 날려버리는거야' 라며 건배를 외쳤던 20대라고 몸이 착각했던 날이었다.

돌파리나 다름없는 남편의 말을 듣다가 죽을 뻔 한 나는 설마 일부러 그런 건 아니겠지 의심이 들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도 어제 일을 떠올리면 입꼬리가 올라갔다.


코로나 이전에 ZOOM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기억이 업는 나는 ZOOM 처음 사용이 술 모임이었다.

2000년대 초반 호주에 유학 중인  아들과의 연락수단은 이메일이었다.

가끔 아들 목소리라도 듣고 싶은 날은 홈스테이 집 전화를 이용했다.

불과 20여 년 만에 해외 어디든 통화는 물론 영상통화, 모임, 회의 등 불가능한 일이 없는 듯하다.

ZOOM의 취지에 벗어난 우리의 모임이 미안한 마음도 들지만 인심 좋고 먹거리 풍성한 한국의 문화는 늘 따뜻하다.

20년 후엔 순간 이동이 가능할지도..

                     

작가의 이전글 사는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