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ne jeong Sep 25. 2022

백점 아빠 빵점 남편

입꼬리를 올릴까 말까?

아들: 아빠 공부가 안돼

아빠: 왜?

아들: 게임하고 싶은데 학교에서 늦게 끝나고 학원도 가야 하고 시간이 너무 없어.

아빠: 음~~( 생각 중) 아빠가 게임을 해서 레벨을 올려 줄 테니까 아들은 공부해.

        아들이 원하는 레벨보다 더 높일 수 있어. 대신에 공부  열심히 할 수 있지?

아들: 아빠 게임을 할 수 있어?

아빠: 방법만 알려주면 하지.

아들: 그럼 나는 주말이나 시간 있을 때 조금씩 할게.


아들은 게임하는 방법을 남편에게 설명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들보다 남편이 게임을 더 많이 하고 좋아하는 듯했다.

게임 아이디는 하나인데 둘이 하다 보니 레벨이 그야말로 승승장구. (이 단어가 여기에 어울릴진 모르겠지만)

전국 레벨이 5위안에 들었다. 팀별로 게임을 하는 방법인데 지구력을 가지고 아이템을 많이 먹는 팀이 유리한 종류의 게임이었다. 게임 중에 서로 댓글이 오고 가는데 답변이 늦으면 "아 아버님이세요?'라며 팀원들이 모두 알아차릴 정도였다.



그래도 아들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아들에게 약속하고 지키지 않으니 이 게임을 그만하고 아이디를 삭제하겠다며 한 달의 시간을 줄 테니 잘 결정하라고 했다.


다음 날 사무실에 출근한 남편은 게임에 로그인했는데 비밀번호가 틀렸다는 메시지가 나왔다. 대문자 소문자를 번갈아 가며 입력하고 몇 번을 시도했지만 마찬가지였다.

수업을 마친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옆에 있어서 내용을 알고 있던 나는 아들에게 물어보았다. 게임 비밀번호에 문제가 생겨서 아빠가 게임을 못하고 있다며 방법을 알려 달라고 했다. 아들은 '엄마 비밀번호 내가 바꿨어. 아빠가 게임 탈퇴할 것 같아서'라고 했다. 아들과 남편의 싸움이 시작돼서 볼만하겠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아들의 말을 남편에게 전했더니 배신감에 화가 많이 났는지 30분 안에 비밀번호를 원래대로 바꿔놓지 않으면 다시는 게임을 하지 않겠다고 전해달라고 했다.(진심 화가 엄청 남) 남편은' 현재의 레벨까지 올리느라 내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나를 배신해!' 라며 혼잣말을 계속했다. 터질 것 같은 웃음을 참으며 아들에게 전화했다. 아들은 공부 열심히 할 테니 게임 탈퇴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라고 전해달라고 했다.

남편은 아들의 거래에 yes 했고 비밀번호는 원래대로 변경되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었는지 둘은 사이가 더 돈독해지더니 급기야는 팀원들을 집에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갈수록 태산이긴 했지만 부자가 저렇게 좋다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물었더니  식사는 숯불구이를 생각하고 있고 준비는 둘이 알아서 할 테니  딸과 함께 동생집에 1박 2일 다녀오라고 했다. 팀원 중에 지방에서 올라오는 사람도 있어서 모임은 1박 2일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아빠인지 친구인지 생긴 것도 완전 짱구인 둘은 게임 이야기할 때면 나이를 구분하기 쉽지 않았다. 이런 순간을 두고 남편이 아니라 아들 하나 더 키운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 아들이 성인이 된 요즘은 어떻게 지낼까?

차로 1시간 거리에 살고 있음에도 남편과 인터넷에서 매일 만나 함께 게임하고 전화도 하루에 최소 5번 이상 통화한다. (모르는 사람은 효자인 줄) 잘 모르는 단어가 오고 가며 팔았냐 샀냐 누가 들으면 중요한 비즈니스 관련 통화내용이라고 생각할 것 같다.

가끔 빠른 게임 진행을 위해 캐릭터를 사기도 하는데 결재는 나를 통해야만 가능하다.

총지출 금액이 백만 원 미만이지만 처음 송금해달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는 '이렇게 비용 지출을 하면서까지 게임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들의 취미생활이다. 취미생활도 비용 지출이 필요하고 또 당연한데 게임이라고 지출을 반대한다면 앞뒤가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들은 일하며 받는 스트레스가 얼마나 크겠는가! 게임으로 스트레스를 버릴 수 있다면 나쁜 방법은 아닌 듯하다.(나라면 더 받을 텐데 사람마다 다름)

다만 건강에 무리 가지 않을 정도만 하면 좋겠다고 바라보지만 요즘 남편은 허리와 엘보에 통증이 있어 검사했더니 운동 부족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할 수 없이 잔소리했다. 게임 계속하고 싶으면 운동 열심히 해서 건강을 유지하라고 그렇지 않으면 비밀번호를 바꾸겠다고.


남편을 보고 내 친구들은 '너 스트레스받아서 어떻게 사니? 게임하는 것을 말려도 시원치 않은데 같이 하면서 돈까지 쓰면 나는 못 산다. 넌 속도 좋다'라고 한다. 아빠는 백 점도 아깝다고 말하는 아들, 그런 남편에게 나는 몇 점을 주어야 할까? 부족한 부분도 있지만 넘치는 부분도 많아서 평균 백 점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입꼬리 올리는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