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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jeong Sep 29. 2022

입꼬리 올리는 시간

봄이다~

최고기온 28도 최저기온 8도. 기온 차가 심한 요즘.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고양이들이 밖에 나가도록 문을 열어야 하는 일이 기다리고 있다.

문을 열면 바로 뛰어나가는데 겨울에는 갑자기 들어오는 찬바람에 발길을 돌릴 때도 있고 최저기온이 10도 이상이면 망설임 없이 점프하듯 나갔다.

봄이라서  더 이상 미루면 안 되는 일을 하기로 했다.

텃밭을 정리하고 새로운 흙도 채우고 씨앗도 뿌려야 한다. 고추 모종을 팔긴 하지만 한국 가격에 비해 6배 이상 비싸다. 몇 년 전부터 이른 봄에 고추씨를 모종용 흙에 심어 적당히 자란 모종을 밭에 옮겨 키우고 지인들께 선물로 주기도 한다.



모종판에 심어서 밭으로 옮겨야 할 채소는 오이, 호박, 고추.

상추, 쑥갓, 청경채, 부추, 얼갈이배추는 밭에 씨를  뿌렸다. 날씨에 따라 작은 변화는 있지만 2주 정도면 첫 싹들이 올라오겠지!!

이틀 동안 내린 비가 궁금했을까?  청경채 씨앗들만 개구쟁이라서 그런지 가만히 있지 못하고 3일 만에 씨앗 문을 열고 숨겨 두었던 여린 떡잎을 꺼냈다.

거친 흙 속에 중간중간 장애물도 있을 텐데 고사리보다 더 여리고 여린 녀석이 길을 찾아 올라올 때는 얼마나 대견스러운지 입꼬리를 올리며 환영했다 '고생했어 이제 시작이지? 잘 견뎌보자.'




봄이면 아니 씨앗을 심고 텃밭에 있으면 꼭 생각나는 시간이 있다.

남편이 주말농장을 하자며 알아보았다. 집에서 30분 이내의 거리에도 있었지만, 그가 선택한 텃밭은 곤지암 농협에서 관리하는 곳이었다.

약 100여 개의 텃밭이 있었고 하나 당 7평씩 배당해 주었는데 우리는 2개를 선택해서 14평이었다. 도착해보니 삼면이 산으로 둘려 있어 아늑했고 돌이 많은 계곡에 물이 흐르고 있었다.

농협에서 준비해놓은 삽과 호미 등 농기구를 이용하여 흙을 고르고 반듯하게 만들어 놓은 다른 농장주의 텃밭을 돌아보며 비슷하게 만들었다.

첫날 준비한 씨앗들을 심었다. 상추, 쑥갓, 열무, 배추, 모종으로는 토마토, 고추, 가지 등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는 여러 가지 쌈 채소들.

농사를 전문적으로 하는 농부들은 우리 같은 텃밭을 보고 꽃 농사라고 했다.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9시 취침을 습관처럼 잘 지켰다.  새벽이면 가장 먼저 일어나는 아이들이 농장 가는 날이라며 우리를 깨웠다.

2주를 보내고 곤지암으로 출발했다. 가는 길은 늘 소풍 길이었다. 스무고개, 끝말 이어가기를 하다 보면  어느덧 도착했다는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새싹들이 올라왔다. 아이들이 얼마나 신나 하는지 자신들이 덮어준 흙을 뚫고 올라온 새싹들을 보고 베란다에서 키우면 안 되냐고 물었다. 우리 집이 아파트라면 새싹들의 집은 여긴데 새싹들이 좋아할까? 했더니 바로 꼬리를 내리며 알았다고 했다.




시간이 흘러 우리 텃밭도 먹을 만큼 채소들이 자랐다. 주말마다 삼겹살을 포함해 식사에 필요한 반찬들을 가져갔다. 엄마랑 남편은 밭에 풀도 뽑고 점심으로 먹을 야채를 준비하는 동안 아이들은 계곡에서 놀고 식사 준비를 마친 나는 가족들을 불렀다. 삼겹살 꽃향기가 계곡으로 산으로 하늘까지 퍼졌다.

우리의 작품으로 고기를 싸서 입에 넣었다. 쑥갓의 향이 얼마나 진하던지 그런 맛은 처음 경험하는, 쌈이 아니라 행복에 고기를 싸서 먹는다는 표현이 정답에 가까웠다.  몇십 년이 지난 요즘도 쑥갓을 먹을 때면 곤지암의 농장으로 순간 이동하며 입꼬리가 올라간다.


시간이 지날수록 농장을 찾는 사람들이 줄었다. 농작물이 자라다 못해 옆으로 넘어지고 고추나 토마토들도 땅으로 떨어지는 양이 더 많았다. 꾸준하게 관리하는 텃밭은 9~10집 정도 밖에 없었다.

어느 날 텃밭을 꾸준히 관리하는 사람들이 다른 텃밭의 열매들이 썩고 있으니 함께 나누어 가지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듣고 있던 엄마는 '그러면 좋죠. 너무 아까워서 저도 그렇게 하고 싶었어요.'라며 한마디 거들었다.

남편은 절대로 허락할 사람이 아님을 알고 있던 나는 회색 보자기를 뒤집어쓰고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남편은 농협에 문의해보고 허락하면 하자고 했다. 농협 직원은 농장주가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는 없고 시간이 되면 그들과 연락해서 물어보겠다고 했다.

몇 주 후 가져가도 된다는 농협 직원의 연락을 받고 호박, 고추 등 많은 양을 수확하는 보너스 추수로 풍성한 가을이 익어가고 있었다.


어느 텃밭에 생전 처음 보는 야채가 있었다.  줄기를 먹는 건지 열무처럼 다 뽑는 건지 몰랐다.

늦가을에 접어든 시기라서 모든 작물은 수확해야만 했기에 일단 뽑아보았다.

와!! 세상에 이런 일이 땅콩이 주렁주렁 뿌리에 달려 있었다. 땅콩이 나무에서 열리는 줄 알고 있다가 뿌리에 달린 것을 보며 얼마나 신기하고 놀랐는지 아이들도  마트에서만 보던 땅콩을 직접 보고 따기도 하며 그 어떤 놀이를 할 때보다 눈동자가 초롱초롱했다.

봄, 여름, 가을을 텃밭과 계곡에서 보내며 아이들은 무엇을 배웠을까? 배우지 않았다고 해도 그 안에서 행복했다면 무엇이 더 필요할까!!.




요즘도 가끔 아이들과 곤지암 텃밭 이야기를 하면 입꼬리들이 올라간다.

사람은 추억으로 산다고 했던가!

아이들과 함께했던 수많은 시간이 그들의 기억 속에 쌓여서 보고 싶은 책을 꺼내 읽는 기쁨처럼

언제든 떠올려 보기를 그래서 입꼬리를 올리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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