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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jeong Oct 02. 2022

오늘은 아내의 휴일

사는 이야기

주 3일, 하루 5시간 출근하기로 시작한 근무가 4일로 늘어났고 이번 주는 5일을 출근했다.

금요일은 휴무였지만 남편의 위, 장내시경을 하는 날이라 오전에 병원에 갔다.

수속을 마치고 남편은 검사실로 들어갔고 넉넉잡아 3시간이면 되겠지 생각하고 대기실에서 브런치 글도 읽고 댓글도 썼다.

한국 마켓에서 할인하는 품목들이 문자메시지로 들어왔다. 마침 병원 건너편에 마켓이 있어서 필요한 것도 살 겸 갔다. 대파가 5뿌리 정도 묶여있는 한 단이 $2인데 두 단을 사면 $3불이라는 가격표가 눈에 들어왔다.

쪽파가 없는 이곳은 파김치를 먹고 싶으면 대파로 파김치를 하는데 생각보다 맛있었다.

시간 있을 때마다 한국의 맛집을 올려놓은 유*브를 자주 보던 남편이 파김치가 먹고 싶다는 말을 기억하고 있었던 나는 파를 10단 샀다. 거기에 청경채를 함께 넣어서 만들면 더 감칠맛이 있어서 청경채도 5단 샀다.




병원으로 돌아오니 어느덧 3시간이 지났지만, 검사가 끝나기 1시간 전에 보호자에게 연락해주는 병원의 전화는 아직도 오지 않았다. 그 후로 1시간이 더 지나서 전화가 왔다. 1시간 후에 남편을 데리러 오라는 전화였다.

1시간을 더 기다렸다. 책도 보고 브런치 글도 읽고 나름 좋은 시간이었다.

오전 11시 반에 들어간 남편은 오후 5시에 검사가 종료되었고 검사 전보다 혈압이 낮아져서 푸딩과 티를 마시고 혈압이 정상으로 올라올 때까지 기다리느라 시간이 더 걸렸다고 했다.

별 이상은 없고 작은 폴립 두 개를 떼어 냈고 5년 후에 검사하면 될 것 같다고 했다.


둘 다 배가 너무 고팠다. 내가 준비해 간 숭늉을 마시고 건너편에 유명한 베트남 식당이 있어서 따끈한 국물이 있는 쌀국수를 먹었다. 집에 도착하니 오후 6시가 좀 넘었다. 출근했던 날보다 더 피로감이 몰려왔고

다음날 출근도 해야 해서 장 본 것만 정리하고 사워후 일찍 잤다.





아들 휴무일.

토요일은 1시 반에 약국 문을 닫기 때문에 5시간만 근무하면 된다. 집에서 오전 7시 30분에 딸과 함께 출근했다. 약국에 도착하니 어제 들어온 물건들이 박스마다 쌓여있었다.

정리하는데 2시간 정도 지났고 일요일 약국 문을 열지 않아서 그런지 배달 전화가 계속 왔다.

총배달 건수는 10개. 배달 위치도 동서남북 다 있고 거리도 먼 곳이 4군데나 있었다. 약국에서 약 20분 정도 떨어진 거리가 가장 먼 집이다.

은행에 입금할 현금을 일자별로 정리해서 체크를 쓰고 일별 입금 봉투에 담았다. 잔돈도 여유 있게 준비해 놓고 배달을 시작했다.


배달을 마치고 약국에 도착하니 어제 유*브 맛집에서 본 순댓국이 먹고 싶다며 남편이 와 있었다.

함께 한국식당으로 가서 점심 먹고 집에 도착, 그때부터 파김치를 담기 시작했다. 다듬고 씻고 찹쌀풀 끓이고 월요일부터 싸야 할 도시락으로 카레를 만들었다. 한국에선 엄마랑 함께 살았기 때문에 살림을 거의 하지 않았고 호주 와서 시작한 전업주부 생활이 17년 차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미숙했다. 저녁 7시가 넘어가니 남편이 배가 고프다고 했다. 카레 냄새가 맛있겠다며 식사 준비를 했다. 카레와 막 버무린 파김치로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식사 후 갑자기 피로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토요일에 모든 준비를 해놓고 일요일은 침대에서 굴러다닐 생각이었다.




오후 1시쯤 되자 남편이 배가 고프다며 양고기 바비큐가 어떠냐고 했다.

좋은데 오늘은 꼼짝하기 싫다고 했다. 그럼 혼자 다 할 테니 먹기만 하라고 했지만 어디든 같이 다니는 걸 좋아하는 남편. 마트에 함께 가려고 방에서 나왔는데 뭔가 문에 붙어 있다는 느낌에 돌아다보니 '오늘은 아내의 휴일'이라는 글을 종이를 써서 남편이 방문에 붙여 두었다. 딸에게 엄마를 방해하지 말라는 접근금지 명령서 같았다.

그래서인지 쌓였던 피로감이 급하게 몸에서 빠져나간 듯 가벼워졌다.

남편이 구워준 양고기를 보니 식욕이 확 살아났다.

양고기 먹고 운동하고 성당 다녀오면 오늘 하루 연극무대의 막이 내려오겠지.

오늘은 하루 잘 쉬었다. 이 하루로 내일부터 또 달려야지. 아내와 엄마의 이름표를 떼어 낸 하루가 이렇게 가벼울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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