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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jeong Oct 10. 2022

나를 칭찬해

학교급식(1)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할까?

칭찬을 들었을 때 내가 춤을 추었던가!

마음속으론 덩실덩실 춤을 추었던, 어깨가 간질간질하고 하늘이 높은지 내 입꼬리가 높은지 오르고 올랐던 시간을 살며시 꺼내 본다.


딸이 중학교 입학을 두고 학교 배정 발표가 있는 날이었다.

아들과 3살 터울이지만 어려서부터 잘 먹고 또래보다 키도 크고 똑똑해서(부모 눈에만) 생일이 5월임에도 불구하고 간단한 테스트를 거치면 조기 입학이 가능한 시기였다. 부모 마음에는 오빠랑 1년이라도 같은 학교에 다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글쎄 인생이 어찌 흘러갈지 기다려 보기로 했다.

중학교 결정을 위해 작성하는 서류에 관내 6개의 중학교 이름이 있고 그 옆에 자신의 선호도 숫자를 적는 방법이었다. 오빠가 다니는 학교를 1번으로, 학교 급식이 엉망이라고 소문난 학교를 6번이라고 적었다.


발표 당일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가족이 모여 종이를 펼치는 순간'이건 꿈일 거야'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xxx 님 6번 학교 입학을 축하합니다.

딸이 울었는지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실망이 컸던 날이었다.

언니 딸 둘 다 6번 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에 조카들은 '학교급식만 별로지 나머지는 다른 학교랑 비슷해.'라며 중학교 동문이 됐음을 축하했다.




입학식을 했고 딸은 6번이건 1번이건 중학생이 신난 듯 재미있게 잘 다녔다.

'그래 모르는 게 약이지 지금처럼 하루하루 신나게 살렴'이이라고 생각하며 친구를 향해 달려가는 딸을 보니 등에 매달려 있어야 할 책가방이 없었다. 차 뒷좌석을 보니 가방이' 뭐지'하는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2주쯤 지난 어느 날 딸이 학부모 총회에 참석해달라는 초대장을 가져왔다. 스케줄을 확인하고 총회 참석을 위해 일정표에 메모했다.

총회 당일 아파트 단지가 둘러있는 동네라서 그런지 엄마들 치맛바람이 예상되기도 했으나 나의 목표는 학부모들과 힘을 합해 학교 급식을 개선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교장 선생님 인사말과 여러 선생님의 학교 운영내용, 학교에 필요한 사항들을 설명했고 이제 임원 선출 시간이 되었다. 동네에서 방귀 좀 뀐다는 엄마들은 한 사람을 회장으로 추천하고 찬성 분위기로 몰아가는 레퍼토리를 미리 준비해온다는 것을 6개월이 지나서 알았다.

겉과 속이 같다고 생각하는 나는 뭔가 옳고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추진력에 지구력까지 데리고 탱크처럼 밀어붙이는 성격이라고 늘 말하던 남편이었다.


1학년 어머니회장을 먼저 선출하면 그 회장을 도와서 함께 할 부회장, 총무, 서기 등 나머지 임원을 뽑는 순서였다. 진행을 맡은 선생님이 먼저 회장을 하고 싶거나 추천하라고 했다. 갑자기 조용해지며 서로 눈치들을 보던 순간, 손을 번쩍 들은 나를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마이크를 잡고 단상에 섰다.

우리 아이들에게 깨끗하고 맛있는 밥을 먹이기 위해 일을 하고 싶고 관심이 있는 어머니들이 함께했으면 좋겠다며 인사했다. 나의 관심은 오직 하나 급식을 다른 학교 수준으로 바꾸는 거였다.




아들 학교 급식실로 식품 검수를 가면 재료들이 유명 식품회사 제품에 깨끗하고 신선하며 질 좋은 재료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결과표에 늘 개선할 점이 없는 만족에 체크를 했고 감사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딸 학교 급식실에 처음 식품 검수를 가서 재료를 확인한 순간 영양사를 부른 나는 이 재료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영양사는 난감해했지만 '어쩔 수 없어요'라고 말하는 표정에서 이건 영양사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지금부터 요리를 시작해야 아이들이 점심을 먹을 수 있다는 말에  다른 종류도 눈에 거슬렸지만 먹어도 별 해가 되지 않을 재료만 요리를 허락했다. 한 가지 재료만은 손대지 말라고 하며 교장선생님을 급식실로 호출했다.

그 재료는 오이장아찌. 높이 약 50cm 정도의 큰 깡통이었다. 깡통을 오픈해 달라는 나의 요구에 영양사는 내용물까지 확인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는지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

뚜껑을 열어보니 비닐봉지에 오이장아찌가 들어 있었지만, 봉지 속 물이 깡통 내부로 다 흘러나왔고 깡통 안은 녹이 슬어 심하게 산화되었다.

얼마 후 교장 선생님이 도착했고 전후 사정을 설명하자 영양사는 이 재료를 사용하지 못하면 반찬 한 가지가 부족해서 곤란하다고 했다. 교장 선생님이 나를 쳐다보며 어떻게 할까?라는 표정이었다.

반찬 한 가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런 음식은 아이들에게 먹일 수 없다고 했다.

그날 점심은 반찬  한 가지가 부족한 채로 넘어갔고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식품검수 일정표에 나의 이름이 있었지만 매일 조리실로 출근해서 재료를 꼼꼼히 검수했다.

재료의 식품회사도 모두 처음 보는 곳이었다 치*산 식품의 참기름, 고춧가루 등 다 바꾸고 싶었지만, 차차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코앞에 정년퇴임을 기다리고 있는 교장 선생님 지인이 학교 급식재료를 납품하는 업체라는 사실을 조카한테 들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제부(동생 남편)는 방송국에 제보하자고 했지만 교장 선생님의 교직 생활을 조용히 마무리 짓고 싶은 마음도 컸다.

점점 재료는 싱싱하고 좋아졌지만, 급식재료 납품업체를 다른 학교들처럼 학교에서 직접 교사와 부모들이 결정하는 방식으로 변경하자는 나의 요구는 계속 미뤄졌다.


어느 날 교육청 장학사가 학교를 방문하기 때문에 임원 몇 명이 참석해서 대화도 나누고 점심도 하면 어떻겠냐고 연락이 왔다. 나를 포함 3명의 임원과 교장실에서 장학사를 만났다. 학교에 건의 사항이나 발전을 위해 의견이 있으면 알려달라는 장학사의 말에 급식 납품 방법을 타학교와 같은 방법으로 개선해 달라고 했다.

장학사가 무슨 내용인지 교장 선생님께 묻자 얼굴이 하얗게 변한 교장 선생님은 현재 변경 중에 있으며 결과는 문서를 통해 교육청에 보고 하겠다며 마무리 지었다.


그날 오후 장학사를 함께 만났던 두 명의 임원이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그 엄마들은 어머니회에 가입한 이유가 자신의 아이들이 선생님들에게 좋게 보이고 학교생활을 잘하기 위함이지 학교나 교장 선생님을 불편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며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들을 설득하고 싶지 않았다. 학교생활을 잘하려면 우선 깨끗하고 건강한 점심을 먹여야 한다는 나의 의견과 많이 달랐기 때문에 할 말이 없었다.


임원들은 녹색 어머니회로 빠져나갔고 일손이 필요한 나는 2학년 어머니 회장을 찾아가 사정 이야기를 했다.

그녀도 자녀가 1학년일 때 급식체계를 바꿔보려고 시도했지만 포기했다며 필요한 건 뭐든 도울 테니 말하라고 했다.

다음 일정은 교육청에 직접 방문해서 6번 학교에서 시행하고 있는 개인 납품업체 교체 방법을 알아보기로 했다.

구체적인 일정을 잡아가던 어느 날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알고 보니 교육청에 학부모가 직접 민원을 접수하면 학교장이 징계를 받을 수 도 있고 그렇게 되면 정년퇴직 전에 인사이동부터 퇴직금까지 불이익이 생길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떻게 교장 선생님이 먼저 알게 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한 줄 요약: 칼을 뽑기 전에 충분히 분석하고, 뽑았다면 무를 자를 것이 아니라 분석한 대상을 잘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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