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are the best translator I’ve ever had. 내가 만난 통역 중에 네가 최고다.
오늘 통역을 마무리하며 고객에게 들은 마지막 멘트였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멋지게 통역을 한 건 아니었다.
그는 통역을 잘한다고 했지만 나는 서로의 니즈에 맞게 소통에 약간의 조정을 했을 뿐이었다.
투자자와 한국인 전문가의 인터뷰 통역이었다.
1시간의 인터뷰 동안 상당히 긴장도 높은 대화였다.
30분이 지날 즈음 몇 분 남았는지 계속 확인할 만큼 나도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이유는 한국인 전문가의 대화 방식 때문이었다.
전문가의 답변 방식은 질문에 답변 전 배경을 먼저 설명하고 실제 답변은 가장 마지막에 나오거나 배경 설명 하느라 질문을 잊어버리는 스타일이었다.
질문에 대한 직접적으로 답변하지 않고 장황한 설명을 이어 나가자 투자자는 약간의 짜증 섞인 목소리로 되물었다.
‘I already know all of those, my question was ~. Please answer to my question. 그런 내용에 대해서 이미 다 알고 있다. 내가 질문한 것에 대한 답변 해달라.’
이런 요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문가의 답변 방식은 변하지 않았다.
그동안 전문가와 투자자의 인터뷰 통역을 오랫동안 지원해 왔다.
이런 전문가의 소통 방식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1. 상대가 충분한 배경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해서 어느 정도의 배경 설명이 필요하다고 믿고 있는 경우
2. 전문가의 생각에는 그 배경 설명 없이 답변만 한다는 것은 정확한 정보 전달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경우
3. 해당 질문에 대한 답변을 모르고 있는 경우
투자자가 설명한 배경 내용을 알고 있다고 이미 말하고, 질문에 대한 답을 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그렇다면 1번의 상황은 아니다.
그럼 2번, 배경 설명이 꼭 필요한 답변일 경우에는 대부분 소통을 잘하는 사람은 답변을 먼저 하고 뒤에 설명을 덧붙이거나 추가 설명이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다.
즉 두괄식으로 답변하고 추가 설명을 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투자자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전문가의 답변 방식이 동일하게 장황한 설명과 답변 흐리기로 일관된다는 것은 3번의 경우, 질문에 대한 답을 모르는 경우다.
오늘 만난 이 전문가는 2번과 3번의 복합적인 스타일이었다.
평소의 소통 방식이 미괄식, 관련 배경 설명이 길게 이어지고 나서 답변을 하는 스타일이다.
상대가 ‘내가 질문한 것에 대한 답변 좀 제대로 해주세요’라고 말한다고 해서 1시간 내에 본인의 소통 스타일이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런 경우 안갯속에서 정보를 더듬어 찾아야 하는 소통방식으로 대화가 어렵다는 이미지를 준다.
영어권의 사람들의 소통은 두괄식에 익숙해 있다.
영어의 표현만 봐도 알 수 있다.
I like, I don’t like ~ because ~ 나는 좋아한다,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
영어는 동사가 앞에 나오니 답변이 부정인지 긍정인지 바로 알 수 있다.
하지만 한국어는 동사가 마지막에 나오니 끝까지 들어봐야 알 수 있듯이 두괄식이 일반적이지는 않다.
“저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런 미괄식 소통 방식을 하는 한국인과 두괄식에 익숙한 영미권의 대화도 통역으로서 어느정도 도울 수 있다.
장황한 설명을 하고 있을때 통역으로서 살짝 끼어들어 “전문가님 질문이 이러했는데 혹시 이 답변부터 주실 수 있을까요?”
혹은 질문을 계속 기억했다가 답변이 나오지 않을 경우 다시 한번 질문에 대한 답변을 요청하는 것이다.
평소 소통 습관이 미괄식이고 그 설명이 장황하게 길어지는 스타일은 답하다 질문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흔하다.
“투자자님이 하신 질문은 --- 였는데 이 부분 답변 해주시겠어요?”
이렇게 다시 한번 알려줘야 한다.
이렇게 설명 끝에 겨우 중요 답변이 나왔다면 내가 통역으로 전달할 때는 두괄식으로 메시지를 통역하면 된다.
마지막에 나온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가장 먼저 전달하고 그리고 관련 설명들을 전달하면 스타일이 다른 상대 간의 대화의 갈등을 줄일 수 있다.
가끔은 투자자 입장에서 답변만 원하고 뒤에 설명들을 들을 필요가 없다고 느끼면 아예 듣지 않고 통역을 중단하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기도 한다.
가장 어려운 경우는 3번, 답변을 모르지만 인정하지 않는 경우이다.
전문가와 투자자의 통역을 지원하며 나는 전문가의 이러한 소통 방식으로 인해 갈등이 붉어진 경우를 많이 보았다.
한 투자자는 'just answer yes, or no' 3번 스타일의 전문가에게 "내 질문에 답을 안다 모른다,로만 답해라.' 라고 하기도 했다.
스스로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모른다는 말을 할 수 없어 장황한 설명으로 답변을 대신하며 본인이 답변을 제대로 했다고 생각하거나 상대가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 착각한다.
하지만 답변을 받는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느낀다. ‘상대가 몰라서 답변을 흐리고 있구나’.
이러한 인터뷰는 돈을 주고 인터뷰를 하며 원하는 정보를 받기 위한 명확한 목적을 가진 대화이다.
전문가로서 인터뷰를 받는 입장에서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더 어려울 수 있다.
전문가분들이 모르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 많은 대화가 오고 가지만 중요 정보를 받지 못한 투자자의 불만족스런 목소리는 전화로 충분히 느껴진다.
정보가 돈인 세상에서 정보는 철저하게 상대의 입장에서 소통해야 한다.
상대가 원하는 답변을 두괄식으로 먼저 전달하고 관련 배경 설명을 해야 상대가 나와 소통이 쉽다고 여긴다.
진짜 전문가들은 모른다는 것을 인정한다.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나의 전문성에 의심을 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들 수도 있지만 그 순간 상대에게는 정보의 신뢰감이 쌓이다.
‘제 분야가 아닙니다. 저는 관련 정보를 모릅니다. 저는 그 정보는 공개할 수 없습니다.’라고 명확하게 답한다.
그럼 그 분야를 제외한 다른 질문으로 넘어간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인정하는 전문가와 투자자 간의 대화에서 갈등은 없다.
해당 정보를 보유하고 있거나 없거나 하는 유무의 사실뿐이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인정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진짜 전문가들, 프로들은 이러한 용기 있는 태도를 보인다.
본인이 아는 부분과 모르는 부분을 이해하고 있으며 이것을 인정한다.
모르는 것을 스스로에게 인정하고 상대에게 말할 용기를 가진 전문가는 진정성을 가진 프로로 인식되며 상대와 신뢰를 쌓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