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나는 과거의 내가 만들어낸 결과

나는 나에게 어떤 스토리를 들려주고 있나요.

by 김지혜

40대 후반이 되니 이런저런 큰 일을 나만 겪으며 살아온 것 같아도 누군가와 이야기 나누다 보면 상대도 적어도 한번, 인생의 큰일을 겪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40대 중반을 넘어가면 평화만 깃들었던 누군가도 한 번쯤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사건을 한 번쯤은 겪게 된다.

그 상황을 어떻게 겪어 냈는가, 나는 그 사건에 어떤 반응을 하고 살아왔는가가 지금의 나임에 분명하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나라는 인간이 달라질 수 있었다는 건, 그만큼 그 사건은 내게 엄청난 일이었고 나를 심하게 흔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트라우마로 남아서 어떤 비슷한 상황이면 언제나 작동하는 경고음 같이 내 안에 남아 나를 긴장시킨다.

누군가의 죽음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배신일 수도 있고, 내가 바꿀 수 없는 문제를 안고 살아야 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는 그런 상황

그런 사건을 마주하며 우리는 결국 스스로를 변화시킨다. 우리의 관점을 바꾸고, 태도를 바꾸고 삶을 바라보는 방식을 전환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물론 나를 변화시키지 못하고 그 속에 아주 오랫동안 머무를 수도 있다. 헤어 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


미국의 Emily Esfahani Smith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이 스스로 말하는 자신의 스토리를 보면 스스로 어떤 삶을 사는지 알 수 있다고 한다.

큰 트라우마적인 사건을 인생에 겪고 나면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자신의 스토리는 두 가지로 나뉜다.


Contamination story와 Redemption story

Contamination이라는 단어는 ‘오염, 악영향’을 의미하는 것으로

큰 사건 이후 지속적으로 그 사건에 대하여 부정적인 이야기로 가득한 스토리를 말하는 경우다.


Redemption 단어는 ‘구원, 구제’의 의미로

그 사건이 나에게 어떤 것을 가르쳐 주었고, 나는 그것으로 인해서 무엇을 깨닫게 되었는지가 그의 스토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람들이다.


에밀리 연구의 사례에는 에미카라는 축구선수 이야기가 나온다. 사고로 마비가 되어 더 이상 축구를 할 수 없는 장애인이 되었을 때 그와 나눈 대화를 통해 에미카의 스토리가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지를 보여준다. 에미카의 처음 스토리는 Contamination story (부정적인 스토리)로 가득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또 다른 삶의 의미를 찾고, 더 나은 자신이 되어 가는 Redemption story (구원의 스토리)로 전환되었다.


누군가는 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도, 혹은 죽을 때까지 과거의 부정적 영향에 머물며 Contamination story(부정적 스토리)로 가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관점의 변환을 이루어 낸 이들에게서 나오는 삶의 이야기는 힘든 이야기와 더불어 대부분 Redemption story (구원의 스토리)다.


우리는 모두 스토리 속에 살아간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고, 그 스토리를 통해 누군가에게 인정받거나 공감받고 싶어 한다.

우리의 삶은 매 사건의 연속이다. 아침에 인사하고 나간 누군가를 저녁에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어제 까지 잘 지내던 누군가가 갑자기 이유도 모른 채 등을 돌린다.

그 사건을 대하는 나는 힘들고 당황스럽다. 그러한 사건들에 나는 반응하고, 그 반응은 지금의 나를 만들어 낸다.

내가 하고 있는 나의 스토리는 어떤 스토리 일까? 나의 스토리는 과거의 부정적 힘든 경험으로 가득한가 아니면 새로운 성찰과 구원의 전환된 관점으로 가득한가?


나의 스토리를 가장 먼저 듣는 사람은 바로 나이다.

타인은 나만큼 온전하게 나의 스토리를 듣지 못한다.

나는 나에게 어떤 스토리를 들려주고 있는가?


나는 충분히 내 속의 수많은 이야기에서 나의 스토리를 선택할 수 있고 나에게 좀 더 나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우리 스스로의 스토리의 작가임에도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한다.

나라는 삶을 살아내야 하는 어느 누구보다 다이내믹한 내가 주인공인 소설 속에서 말이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내가 만들어낸 결과이고 미래의 나는 지금의 사건에 반응하는 내가 만들어 갈 것이다.

알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사건들을 마주하는 나의 소설 속에서 나는 결국 나에게 구원의 스토리만 들려주고 싶다.

언제나처럼 알람 버튼이 울리고, 두려움이 밀려와도 구원의 스토리를 들은 나는 용기를 낼 것이고,

결국 나의 스토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해피 엔딩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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