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은 핑계일 뿐! 프로는 결국 다 해낸다.
통역을 제대로 못하고 마치면 이런 기분
게으르게 늦잠을 자다가 오전에 급한 call 통역을 요청받았다.
항상 하던 일이고 주제만 달라지는 전문가와 의뢰자의 대화.
이어폰이 어디 간지 없다. 이런 사무실에 두고 왔나 보다.
일단 온라인 Zoom이라 천만다행이다. 전화로 접속했는데 이어폰이 없으면 스피커 폰으로 해야 하는데 정말 듣는 사람도 말하는 사람도 그 사운드가 최악이다. Zoom으로 한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20분 전 미리 Zoom에 접속해 놓고 대기하며 주제 관련 검색하고 스터디를 시작했다.
시작 15분 전 회사에서 The client can speak English (고객이 영어를 잘한다)라고 메시지를 받았다.
무슨 말인가? 그럼 통역 지원을 안 해도 된다는 취소의 의미인가 해서 다시 확인했다.
그냥 참조하란다.
한마디로 네 말 다 알아들으니까 통역 잘해라 라는 말이다.
Call 시작
1. 아! 일단 나의 가정 오류
외국인이 client이고 한국인이 전문가(expert)라고 가정했다. 그 반대였다.
커피 드링킹 3잔을 했어야 했는데….
누가 한국인이고 누가 외국인이던 통역을 하는데 무슨 차이가 있을까?
별 차이 없을 것 같은 이 상황은 나에게 큰 차이가 있다.
전문가가 한국인이라면 한국인이 2~3분을 답변을 할 경우에는 내가 전체 타이핑이 가능하다.
말의 속도로 타이핑을 하면서 듣고 내가 이후에 빠짐없이 전달할 수 있다.
이 업체 통역은 외국 투자사에서 한국 전문가의 자문을 구하는 통역이 대부분이라 그냥 그대로 가정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건은 한국인이 질문을 하면 질문은 한두 문장이고, 외국인 전문가 답변은 영어로 2분 3분이라는 말이다. 영어 답변은 내가 말하는 속도만큼 영타 속도가 안 나와서 키워드로 수기 메모를 해야 한다. 난 일어난 지 한 시간도 안되었고, 카페인 섭취도 못한 상태인데 말이다.
2. 두 번째 난관은 인도인이라는 것,
인도인은 말이 무지 빠르고 말에 pause(중간에 띄어쓰기처럼 쉬는 거)가 없다는 특징이 있다.
이런 가정 오류와 예상치 못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애쓰는 사이 한국인 고객의 질문은 시작되었다.
3. 세 번째 문제 봉착
한국 측 고객이 회의실에서 스피커폰으로 참여를 하는지 목소리가 울리고, 크게 들렸다 작게 들렸다 한다. 전체를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중간에 드문드문 소리가 안 들리는 부분은 예상을 해야 했다.
“이 말씀을 하신 게 맞으실까요 ~~~~~~~”
처음에 당황하면서 약간 헤매고 있는데 한국 고객이 차분히 질문을 나눠서 다시 설명해 준다.
이후 겨우 정신 차리고 통역을 이어 나가는 사이,
4. 네 번째 예상치 못한 문제가 터졌다.
고객의 질문에 인도계 전문가가 두괄식으로 답변하지 않는다. 즉 묻는 말에 답부터 하지 않고 설명을 이어 나가자 한국 측 고객의 불만이 터졌다.
한국 고객이 화가 났는지, 답답했는지 ‘너 우리가 질문한 거 답을 모르는 거 같다, 왜 우리가 질문한 것에는 답을 안 하냐 모르는 거 아니냐’고 직접 영어로 말했다.
이 말을 한국말로 하고 내가 전달했으면 머리를 쥐어짜며 좀 더 착하게 전달하려고 했을 것이다. 왜 그대로 전달 안 하냐고 불만을 들을 수 있지만 이 말을 통역하라고 했으면 난 답변부터 주고 설명을 이어 나가면 좋겠다고 말했을 것이다.
학국인 들은 원하는 답변을 빠르게 받아야 하고 교육 방식에 따라 정답문화가 있어서 아무리 설명이 길어도 그에 대한 답변이 끝에 나오면 앞의 설명에 지속적으로 집중하기가 힘들다.
그러자 이 인도계 전문가는 답한다. ‘내가 그 답변을 하려면 공정을 이해해야 하고 그 공정을 이해 못 하니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건 정말 무례하다”
이 답변은 통역하지 않았다.
왜냐면 무례하다는 말을 직접적으로 통역해 버리면 성질 급했던 한국인이 회의실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가능성이 크고, 그는 영어를 잘해서 알아듣지만 다른 사람은 못 알아듣고 있는 상황인데 내가 그것을 한국어로 통역해 버리면 그가 곤란해질 수 있다.
아!!! 나의 이 심오한 의도를 이해했을까, ‘너 왜 이 부분 통역 안 해, 못 알아듣는 거 아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쩌나! 이런 걱정에 안 그래도 정신없는데 또 집중력을 잡아먹는다.
이 갈등의 대화 후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하고 멘붕이 왔다.
갈등이 첨예한 대화, 머리가 멍해지며 갑자기 양측의 말에 집중하기가 힘들어졌다.
아!! 정신 차려야 해! 넌 이 일을 10년도 넘게 했잖아. 프로잖아.. 머리를 흔들어가며 주문을 외우고 정신 줄을 잡느라 힘들었다.
서로 싸우는 걸 보고 그 사이에서 내가 정신을 차리고 말을 전달한다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난 그걸 해내야 하는 프로이다.
한국 측 담당자는 영어로 직접 무례함에 사과하고, 전문가도 한국의 질문에 두괄식으로 답하기 시작했다.
인도계 전문가는 냉정함을 유지하고 감정에 동화되지 않고 답변을 이어 갔다.
무례한 상대에게 “you are rude”라고 무례함을 인지시켜 주고, 그럼에도 다음 질문에 차분히 대답하는 모습은 정말 프로였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의 무례함으로 인해 내게 일어난 감정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영향을 주지 않는 그의 태도였다.
이건 회의를 통역하다 보면 나를 포함 많은 한국인이 약한 부분이다.
감정이 올라오면 대화를 하기가 힘들어지고, 개인감정으로 이어져 일에 영향을 준다.
이런 경우 감정이 나를 잡아먹기 시작하면 나 돈 안받아도 되니 이 대화 그만 하겠다. 라고 하는 사람이 나올것이다.
인도계 고객의 차분한 태도는 지금 당장 멘붕에서 정신줄을 잡기 위해 애쓰는 내가 꼭 배워야 할 태도였다.
몇 개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 이어지고 통역을 하고 결국 call 은 마무리 되었다.
마치고 나서 call report를 작성하려고 확인하다 그제야 회의 어젠다가 call 10분 전에 올라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회의는 다 끝났는데 말이다.
상황은 핑계일 뿐이다. 프로는 결국 다 해낸다.
오늘 일은 뭔가 프로페셔널하게 하지 못한 것 같아 찝찝하고 찜찜하다.
뭔가 화장실에서 뒤처리를 깔끔히 하지 못한 기분이다.
휴지도 모자랐고, 식당 휴지 처럼 별로였고, 뭔가 물도 깔끔하게 안 내려간 거 같고, 아직도 배는 좀 아픈데, 나왔더니 손 씻는데 물만 나오고 비누는 없는 그런 기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