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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혜 Oct 20. 2024

한국의 특별한 정서는 번역되기 어렵다.

한국인의 특별한 문화와 정서의 단어들은 결국 영어로 없다.

한국인에게는 익숙하고 좋아하지만 서양인은 그다지 즐기지 않는 음식 중 하나가 누룽지이다. 누룽지는 나의 최애 음식이다. 한국인들에게는 밥으로 만든 이 누룽지 맛이 인기라, 누룽지를 따로 팔기도 한다.

쌀문화의 사람들은 쌀의 맛을 내는 다른 식품들이 많이 존재한다. 쌀과자, 현미 녹차, 누룽지맛 사탕도 있다.

 

독일에서 온 한 외국인과 한국인 간의 통역을 하며 밥을 함께 먹게 되었다. 한국인 대표이사는 이 맛있는 삶은 누룽지를 독일인에게 대접하고 싶었다. 누룽지를 대접하고 맛있다는 반응을 기대하는 눈빛이었지만. 독일인은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빵을 주식으로 먹고 자란 외국인에게는 누룽지에 관한 추억이나 그 미묘한 맛을 느낄 경험은 풍부하지 않았다. 밥도 많이 먹지 않는데 그 밥을 이용한 요리의 미묘한 차이는 느끼기 힘들다.

그냥 처음 먹어보는 밥을 삶은 맛!  약간 탄 맛의 밥일 뿐이다.

이런 누룽지 맛을 우리는 ‘구수하다’고 표현하지만 이 표현에 딱 맞는 영어는 없다.

'구수하다'는 맛을 영어로 찾아보면 Nutty, earthy라고 나오지만 이는 전혀 맞지 않다. Roasted rice라는 표현도 쓸 수 있지만 여전히 정확한 ‘구수함’을 표현하지는 못한다.

 2021년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한국어 26개의 단어가 추가되었다.

2021년 영국의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등재된 한국어의 단어들에는 음식 이름이 많다.

우리가 표현할 수 없는 맛들처럼, 우리만의 음식을 영어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등재된 kimbap(김밥) 은 외국인들에게 설명하다 보면 ‘스시’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스시는 많은 외국인들이 이미 알고 있는 음식이다 보니 스시 같은 거고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스시와 김밥은 엄연히 다른 음식이다.  

스시의 하나인 노리마끼 보다 더 많은 다양한 재료들이 들어가고 색상의 조화를 고려한 간단히 먹는 음식이다. 지금은 저렴한 음식의 대명사지만, 내가 어릴 땐 소풍을 갈 때만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이런 음식을 스시와 비슷하다고 정의해 버린다면 아쉬움이 남는다. kimbap(김밥)이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등재되었다는 것은 뭔가 우리만의 차별화된 김밥을 인정받은 기분이다.

한국의 음식의 맛에는 아직도 영어로 표현되지 않는 수십 가지의 맛이 있다.

구수하다.

시원하다. (뜨거운 국물을 마시며 느끼는 시원함)

슴슴하다.

담백하다.

칼칼하다.

얼큰하다.

짭짤 하다. (짜다는 의미는 아닌 듯)

이런 맛들은 결국 한국의 음식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맛일 것이다.


이렇듯 각 지역과 국가에 따라, 자기만의 고유의 문화로 다른 언어에는 표현될 수 없는 언어들은 그 언어 그대로 표현되면 좋겠다. 그 호기심은 더 많은 경험을 하도록 사람들에게 동기부여가 될 것이고 내가 사는 국가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맛들을 느끼려 애쓰게 될 것이다.

낯섦의 맛은 맛있을 수도 맛없을 수도 있겠지만 그 맛에 담긴 추억과 스토리를 함께 한다면 그 맛은 문화 체험이 될 것이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등재된 한국의 단어 중에는 반찬(banchan)도 있다. 반찬이라는 단어는 전형적인 한국 식사 문화를 보여주는 단어이다. 나만의 것은 밥과 국뿐이다. 나머지 요리들은 모두 반찬이라 부르고 모두가 나누어 먹는다.

한국의 음식은 시간차를 두고 음식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한 번에 모든 음식이 나오는 한상 차림 문화이다.

이런 문화에서 반찬의 비중은 side dish (곁들임 음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맛있는 것들이 많다. 찌개나 주요 요리 없이도 반찬만으로 밥을 먹는 경우가 허다한 나에게 이 반찬들은 나의 main dish (주요리)나 다름없다.

이렇듯, 반찬의 고유한 가치를 일반적인 영어 번역 side dish라고 하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반찬 그 고유의 가치와 문화를 담은 그 단어 그대로 등재되었을 것이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책을 번역한 영국인 번역가 데버라 스미스의 번역에는 한국어를 그대로 사용했다. 한강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형’ ‘언니’ ‘소주’ ‘만화’ ‘선생님’ 등의 단어를 한국어 발음 그대로 번역했다고 한다. 이는 우리만의 정서에 담긴 그 뜻을 영어로 전달하는데 한계가 있었기에 그것을 그대로 두었을 것이다.


영어 통역을 오랫동안 해오면서 느꼈던 많은 영어 표현의 한계,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이제 와서 보니 그 모든 한국어에는 한국이 가진 특유의 문화를 포함하고 있었다.  

한국만이 가진 역사적 배경과 문화, 맥락이 만들어 낸 표현에는 언제나 번역하기 힘든 우리만의 정서와 문화를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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