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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스토리는 영웅스토리인가 희생자스토리인가?

나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나의 서사들

by 김지혜

나는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당신에 관한 이야기는 희생자 스토리 인가? 영웅 스토리인가?


30대 중반, 오빠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나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가족의 죽음에 누가 쉽게 감당할 수 있을까? 하지만 우리는 태어난 순서대로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막연한 가정을 하며 살아간다.

갑작스러운 순서가 바뀐 예상치 못한 죽음은 사람들에게 큰 트라우마로 남는다.

친구들과 주위 사람들은 나를 위로한다. 나는 정말 위로를 받아야 할 만큼 힘들었다. 사람들은 위로하기 위해 만나려고 하고, 밥을 사거나 차를 마시며 나를 위로하려 한다. 위로받는 것조차 사치인 그런 상황이었다.

그렇게 장례식과 자식을 잃은 엄마를 잠시 돌보고, 나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세상은 언제나처럼 잘 돌아가고 있었다.

일상으로 돌아가는 세상이 원망스러울 만큼 사람들은 여전히 잘 살아간다.

나를 위로해 주려던 사람들도 일상으로 돌아가 일을 하며 그들의 삶을 이어간다.

당연한 상황이지만, 나는 그때 나를 위로하려던 사람들 게 섭섭했다.

나는 아직 위로가 필요하고, 하나도 치유가 되지 않았는데 그들은 더 이상 나를 위로하려 들지 않는다.

나는 오빠를 잃고 여전히 힘들고 갑자기 무남독녀로 세상에서 더욱 귀해진 자식이 된 상황을 적응하기 어려운데 말이다.

난 오랫동안 위로받을 만큼 힘들었다고 믿고 있었던 듯하다. 그들은 당연히 그들의 삶을 살아야 하고, 나 또한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난 누구보다도 힘든 피해자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나를 지속적으로 신경 써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힘든 고난 속에 슬픈 혹은 괴로운 피해자는 동굴 속에서 사람들이 구해주기를 기다린다.

우린 모든 자신만의 세상 속에서 기쁨과 슬픔을 마주한다. 그 세상을 우리는 삶이라 부른다.


나라는 사람은 나의 삶의 이야기를 통해 표현된다.

자기소개를 하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술을 마시며 한탄을 하거나 축하를 할 때 우리는 모두 스토리텔러가 된다. 어떤 상황을 마주하며 그 사건 속에서 우리는 해석하고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나의 경험을 나라는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삶의 조각들이다. 우리는 각자 이러한 삶의 조각들을 엮어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사건을 마주하며 스스로 만들어낸 내면화된 이야기들을 타인에게 들려주고 타인들은 그 이야기를 통해 나라는 사람을 이해한다.


노스웨스턴대학교 심리학자 댄 맥애덤스(Dan McAdams)는 인간은 “서사의 선택(narrative choices)”을 한다고 말한다. 우리의 이야기는 대개 가장 특별했던 사건, 좋거나 나빴던 사건들에 집중한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이해하려 하고, 또 우리를 형성하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석은 사람마다 다르다.

자전거를 배울 때 뒤에서 잡아주는 누군가가 손을 떼었을 때 그럼에도 과감하게 나아가는 성공의 스토리 일 수 도 있고, 손을 땐 누군가와의 신뢰가 무너져 다시는 도전하기 어려웠던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다.

같은 상황에서도 누군가는 역경으로 희생된 이야기를 하고, 누군가는 도전을 극복한 영웅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내가 타인에게 들려주는 나의 스토리는 어떤 패턴을 가졌는가?

나를 어려움을 마주한 희생자인가, 영웅적으로 고난을 극복한 해피엔딩인가?


나의 스토리의 첫 번째 청중은 바로 나다. 내가 나의 스토리를 어떻게 만들어가는가가 바로 삶의 태도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개인의 서사, 스토리의 패턴을 전환함으로써 항우 울적 효과와 인지 행동 치료적 효과가 있다고 한다.


내 삶의 스토리를 전환함으로써 삶의 태도에 변화를 이루어 낼 수 있다.

맥애덤스의 연구에서 비슷한 사건을 겪었음에도 어떤 사람들은 회복과 성장의 스토리를 이야기를 했고, 다른 사람들은 절망과 상실을 강조하는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었는가는 개인이 꿈을 실현하는 행동을 촉진하거나 억제했다. 이야기를 낙관적으로 풀어내느냐 비관적으로 풀어내느냐에 따라 앞으로 그 이야기를 유지할 가능성도 달라졌다고 한다.

우리는 우리가 겪는 사건들을 해석하고 그 해석들을 선택한 이야기를 나의 이야기로 만들어간다. 우리의 기억은 단순히 사건의 데이터를 저장하고 데이터를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겪은 사건들의 감정과 느낌들이 동반된다. 강화된 감정과 느낌으로 우리는 사건을 이야기한다.


내가 어떻게 스토리를 전개하는가가 바로 나의 정체성이다.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새롭게 쓸 수 있다. 같은 사건을 내가 어떻게 바라보는가, 나의 성장 요소로 보는가, 변화의 계기로 보는가, 그 사건을 겪은 나는 그것을 극복하고 성장한 영웅으로 보는가, 혹은 어리석은 선택을 한 희생자로 바라보는가.

인생은 다른 방식으로 서술하면 자신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얻게 된다.

스스로 영웅적 요소를 찾아내고, 긍정적 메시지를 스스로에게 들려줌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정체성을 변화시킬 수 있다.


우리가 삶의 저자가 되는 일은 많은 외부 환경에 의존하지만,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서술할지는 언제나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https://blog.naver.com/janekimjh

김지혜 (Jane Jihye Kim)

글로벌 역량 강화/문화 간 이해/외국인 대한 한국 사회, 비즈니스 문화 이해(영어진행)

퍼실리테이터/DEI trainer /영어 통역사다양성과 포용성을 위한 문화 토크 커뮤니티 운영자

janekimjh@naver.com

010 3808 0227

#DEI #다양성포용성 #글로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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