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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단녀, 나의 미래 가치를 믿어라.

나는 나의 미래 가치를 인정하는가!

by 김지혜


경력 단절 5년 이후 처음 일을 하러 가는 날이었다.

첫째 아이를 낳기 전 일할 때 입던 정장, 거의 10년이 된 것 같은 정장을 입었다. 아이들 들었다 놨다 했더니 근육이 생겨 팔뚝 부분이 터질 것 같다.

입고 나갈 때까지는 몰랐다. 세상에 사람들이 어떤 옷을 입는지!

다른 통역사들의 모습들을 보고서야 내가 얼마나 촌스러운지 느끼며 움츠려졌다.

그날 이후 다음에 또 언제 일이 들어올지는 모르지만 다음 기회를 위해 정장을 한벌 장만 했다. 당시 아웃렛에서 40만 원 주고 정장을 샀다.

5년 만에 다시 잠깐의 통역 일을 하기 위해서는 대구에서 수원까지 친정 엄마가 아이를 봐주러 오셨다.

그렇게 5년 만에 몇 시간 통역일을 하고 7만 원을 받았다. 몇 시간의 일을 하며 번 돈에 비해 나는 참 많은 돈을 써야 했다. 경제적으로 따진다면 당연히 남는 게 없는 장사다.


그렇다면 이 일은 해야 할까? 하지 말아야 할까?

이런 순간 사람들은 말한다.

“애 키우는 게 돈 버는 거다, 애 키우는 것도 힘든데 굳이 나가야겠니, 그 돈 안 벌어도 괜찮아!”

주위 사람들은 이런 말들로 나를 끌어내린다.

내 인생에서 해야 했던 일 중에 육아가 가장 힘든 일이었고, 가장 적성에 안 맞았다.

이런 나에게 일은 숨 쉴 수 있는 시간이었고, 나라는 사람이 가치 있다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내가 일을 다시 시작하며 가장 바랬던 것은, 내가 돈 때문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도 사회적으로 일에서 가치를 가진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 난 내가 원하는 것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얼마 안 되는 돈을 벌어오는 것도 떳떳지 못했던 나에게 사람들은 지지가 아닌 나를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말들 뿐이었다.

사실 5년의 경력 단절은 나 스스로도 자신감이 사라지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실력도 함께 사라진다. 일을 하러 가는 나도, 일의 기회를 주는 고객도, 아직까지 나를 반기지 않는 상황에서 나 또한 무너지기 쉬웠다.

과연 우는 아이를 뒤로 하고 일하러 가는 게 맞나? 가치 있는 일인가? 내가 스스로의 가치를 느끼기 위함이라는 이 행동은 나의 이기심일까? 이런 생각들은 언제나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꾸역꾸역 포기하지 않고 일을 했다. 돈이 되건 안되건, 어느 날은 통역을 잘못해서 저주의 눈빛으로 고객이 나를 바라보는 날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꾸역꾸역 해 나갔다. 내가 원래 가졌던 그 실력으로 다시 올라오는 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몇 년의 시간은 다시 나의 실력을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결국 몇 년 동안 그렇게 꾸역꾸역 한 결과 나는 어느 정도 고객이 생기고, 정규직 보다 더 나은 수입을 벌 수 있었다.

돈은 사실 내가 시작할 수 있는 여러 동기의 하나일 뿐이다. 그 돈의 액수로 더하기 빼기를 하여 결정한다면 모두가 환영하지 않는 그 일을 해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때 내가 시작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을까? 아이를 키우고 나서 다시 시작했다면 과연 나는 환영받았을까? 지지받았을까? 더 나이 들고, 더 오랜 경력 단절을 겪은 후라면 그때 보다 더 큰 저항을 마주했을 것이다. 아이를 다 키우고 다시 나왔다면 나의 떨어진 실력을 회복하는데 몇 년이나 더 결렸을까? 과연 회복은 가능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 아찔하다.

나의 미래 가치를 보지 못한 채 스스로 주저앉아 버렸다면 어쩔 뻔했나!

사람들은 먼 미래의 가치까지 판단하지를 못한다. 점쟁이도 아니고, 미래학자도 아니고, 알 수 없는 미래가 오는 동안 내가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다는 확신도 없다.

그런 상태에서 미래 가치를 계산하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경력 단절 여성들은 얼마나 될까?

경력 단절은 이전의 경력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경력 지움의 기간이다. 그 기간이 길면 길수록 더욱더 내 과거의 경력들은 인정받지 못한다.

내가 할 수 있다고 느낄 때 다시 시작해야 한다. 자전거를 탈 수 있었다가 오랫동안 타지 않다가 다시 타게 된다면 삐끗거리며 흔들린다. 넘어지기도 한다. 그런 나를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처음 자전거를 배울 때는 뒤에서 아빠가 잡아 주었다. 이제는 아무도 잡아주지 않는다. 넘어지더라도 내가 다시 그냥 털고 일어나야 한다. 무릎이 까져도 회복되면 또다시 타야 한다.


경력 단절 기간 동안 아줌마들과 키즈카페에서 영어 모임을 운영했었다. 영어 실력을 잃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써봤지만 모임에서 제대로 영어 스터디를 할 수 있는 시간은 채 20분도 안된다. 애들을 따라다니느라, 이유식을 먹이느라, 업고 재우느라 서서 모임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한때 영어 좀 했다는 아줌마들이 모여서 좀 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려고 애썼다.

당시 모임에 함께 하던 한 아줌마가 내가 통역 알바를 나간다고 하니 얼마를 받는지 물었다. 내가 일을 나가는걸 돈으로만 보는 것 같아서 당황하고 부끄러웠다. 그 아줌마는 남편이 미국 주재원을 하면서 함께 미국에서 머물러 영어를 꽤 잘하던 분이었다. 내게 얼마를 버는지 물었던 이유는 아마도 자기가 더 잘하는 것 같은데 내가 통역일 할 수 있다는 것, 본인도 가능할 것 같아 얼마나 버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나는 함께 해보면 어떻겠냐고 했지만, 금액을 듣더니 흥미가 사라지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렇다면 그녀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녀는 아직도 가정 주부이다. 내가 일을 꾸준히 하는 사이에도 그녀는 나의 일에 관해 묻곤 했다. 내가 받은 일부 번역일을 맡겨 돈을 지불한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는 본인의 커리어를 쌓은 일은 하지 않는다.

이제는 나와 그녀와의 격차는 더 이상 좁힐 수 없을 만큼 벌어졌다. 시작은 누구나 비슷한 곳에서 뛴다. 넘어진다. 그러고 다시 뛴다. 그렇게 벌어진 격차는 어느 순간 엄두를 내기도 힘들 만큼 멀어진다. 경력은 복리다.


지금 고등학생, 중학생인 두 아이를 키우며 내가 그때부터 경력을 쌓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나라는 생각이 들 만큼, 돈이 많이 든다. 남편의 월급만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경우가 팍팍 터진다. 교육비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기 위해서 목돈이 들기 일 수다. 공부를 잘하면 잘하는 데로 못하면 못하는 데로 나름의 돈이 예상하지 못했던 만큼 쓰인다. 그 순간 우리가 그러한 아이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줄 수 없는 경제 사정이었다면 어땠을까? 상속받은 것도, 원래 가진 돈도 없던 부모로 아이들에게 능력이 부족함을 드러내고 미안함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내 미래 가치를 믿어주는 이들은 찾기 어렵다. 아무도 젖 주고 있는 엄마의 미래 가치를 가늠하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나를 믿고 도전해야 한다. ‘얼마 번다고, 애 키우는 게 돈 버는 거다.’라는 말들을 무시하고 여전히 이 사회로 다시 나올 용기를 내야 한다. 아무도 응원해주지 않는 외로운 싸움을 끝까지 해야 결국 오롯이 설 수 있다. 어느 순간 당당한 나를 마주 할 수 있다. 그런 미래의 나에게 미안하지 않도록, 타인의 헛소리는 더 이상 듣지 말고 내 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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