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방문객 통역으로 질병 관리 본부를 방문한 적 있다.
본부의 높은 담당자 방의 벽에는 피라미드 같은 삼각 조직도가 걸려 있었다.
우리와 미팅을 하고 있는 이 담당자는 조직도 상에서 아래에 훨씬 많은 직원을 둔 높은 분이셨다.
당시 그 삼각 조직도에서 최고 높은 자리에 한 여성분의 사진이 있었다.
자세히 보지는 않았지만 그냥 같은 여성이라는 것만으로 마치 잘 자란 딸을 둔 듯 으쓱해졌다.
분명 기억나는 건 우리네 증명사진이 대체로 실물보다 훨씬 이쁜 것처럼 그 사진도 그러했다.
지금 내가 통역하는 이 앞에 높은 분도, 저 여성 본부장님에게 보고를 하러 갈 것이다. 상상만으로 그냥 기분이 좋다.
우린 그렇게 높은 자리에 있다고 해도 결국 또 누군가에게는 보고를 하고, 가끔은 혼도 나고, 또 나를 낮춰야 하는 삶을 산다.
회사에서 을로 살다, 퇴근하며 식당에서 고객으로 다시 갑이 되기도 하고 집으로 돌아가 화난 아내, 남편 눈치를 보는 을이 된다.
나의 입장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뀌고 그 다름에 나도 바뀌는 삶을 산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황에 모두 두려웠다.
나와 같이 떨고 있을 국민들을 위해 TV에서는 매일같이 브리핑을 한다.
가장 높은 자리임에도 국민이라는 이름을 가진 일반인에게 보고를 올리는 그녀가 있었다.
질병관리본부의 정은경 본부장.
내가 보았던 질병관리 본부 조직도에서 가장 위에 계셨던 분이다.
우리는 매일 그녀의 보고를 받으며 어느 날은 안도하고 어느 날은 두렵고 어느 날은 밖에 나가고 싶은 맘을 다잡았다.
내가 보았던 조직도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었던 분이었는데 지금은 나에게 보고를 하는 분이 되었다.
우리는 공무원을 향해 가끔 “우리 세금으로 월급 받는 사람들”이라는 말을 하곤 한다.
아직 정확히 내가 얼마를 내는지도 잘 모르는데 말이다.
내가 세금을 아주 조금 내든 아주 많이 내든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공무원에게 화가 나면 이런 말로 우리는 갑이 된다.
특히나 위기 상황에 내게 필요한 정보가 제대로 제공되지 않으면 우리는 저 높은 곳을 향해 자꾸만 그런 말을 하게 된다.
국민의 갑질처럼 느껴지는 이 말의 의미는 지금의 상황처럼 국민으로서 원하는 정보를 듣고 싶다는 말이 아닐까.
내가 가질 수 없고 접근할 수 없는 그 정보를 우리는 제대로 알고 싶다.
‘나를 안심시켜줘’가 아니라 내가 접근할 수 없는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내가 가진 불안과 의문을 해결하고 대책을 세우고 싶은 것이다.
나에게는 나보다 더 소중한 가족과 아이들이 있다면 더욱더 접근할 수 없는 그 정보에 목마르다.
물론 멋진 대책으로 우리를, 나의 가족을 안심시켜 주면 가장 좋겠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 사태로 알게 되었다.
우리는 근거 없는 위로나 대책을 원하지 않는다.
그냥 현상의 상황을 정확하게 공유하고 어떤 조치를 취하고 있는가를 알게 됨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었다.
우리가 기대한 소통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정은경 본부장처럼 적어도 우리의 눈높이로 내려와 내가 원하는 정보를 조곤조곤 알려주고 무엇을 하면 좋을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뭔지를 이야기 나누듯 말이다.
그녀의 소통은 국민 스스로 무언가를 하게 만든다.
무서움에 떨 수밖에 없는 현실이지만 현실을 직시하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녀를 향해 왜 우리의 맘을 편안하게 해주지 않냐고 소리치는 사람은 없다.
그녀에 대한 신뢰는 "나를 책임져!"가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판단하고 해 나가며 그녀가 전해줄 내일의 보고를 기다린다.
그녀의 태도와 역량은 이해하기 쉬운 방법의 전달력을 가지며
그녀의 지식과 정보의 투명성은 불안감 속에 신뢰를 구축하고
그녀의 공유와 공감적 행동은 1대 : 국민의 상호작용이 이루어낸다.
이에 따르지 않는 누군가의 행동에 대한 화살은 왜 그들을 통제하지 않았는가를 그녀에게 묻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그들을 통제하기 위해 애를 쓴다.
지금 것 신뢰를 주지 못한 리더의 모습을 상상하면
그들은 충분한 내용 공유 없이 우리는 그것을 해야 한다고 한다.
용기 내에 질문하면 나에게 좋을 것이라는 말 뿐인 경우도 있었다.
나의 안전을 위해서, 나의 미래를 위해서, 그래서 잘은 모르지만 보스의 지시처럼 우리는 자꾸만 올라오는 '왜'라는 의문을 눌러가며 뭔가를 해야 했다.
이제는
'나를 따르라',
'나만 믿어',
'다 잘될 거야',
라는 공허한 말들은 신뢰감을 주지 못한다.
내가 무지해서, 내가 몰라서, 내가 이해하지 못해서인가?라는 의문이 생기는 건 내 눈높이에 맞지 않는 대화를 할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누군가 나보다 높다면 지위, 나이, 직급, 위치, 입장, 나에게 걸려있는 많은 차이점을 접어두고 그녀처럼 나의 눈높이에 맞추는 소통은 공감을 일으키고 공감은 행동을 유발한다.
나는 그럼 누군가의 눈높이에 맞추어 대화하고 있을까?
나는 아이와도 연세가 드신 분과도, 젊은 청년과도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인가?
과연 그들은 나와 대화하고 싶어 하는가?
아이와 대화할 때 나는 대화의 상대일까, 엄마라는 입장일까?
이룰 수도 없는 일들에 혹시나 '엄마만 믿어!'라고 하진 않았나!
나는 과연 그녀처럼 소통하고 있나?
대답할 수 없는 나를 보며 오늘도 그녀처럼 되기 위해 그녀의 대화법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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