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전사를 찾아서

내 안의 저항과 현실의 격차가 만들어낸 문제

by 김지혜

외국인 대상 워크숍에서 말을 더듬는 외국인이 있었다.

매 한마디를 할 때마다 첫 단어를 엄청나게 반복하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많은 의견을 내기 위해 주저하지 않았다.

Actually라는 말로 시작하려 하면 ac ac ac ac ac 이렇게 10번 20번을 하고 나서야 actually라고 하는 사람이었다.

듣는 입장에서는 참 답답했다.

하지만 첫마디만 하고 나면 뒤에 문장들은 쉽게 이야기했다.

첫마디가 생각이 안 떠오르는 걸까?

Ac, ac을 수십 번 반복할 때 actually?라고 말해 주기도 했다.

여전히 그의 반복된 첫마디 말 더듬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더듬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면 왜 말을 더듬는 걸까? 의문으로 끝나버린 그 경험은 나에게도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며 해답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 왜 말을 더듬는 걸까?

의문으로 끝나버린 그 경험은 나에게도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며 해답을 알게 되었다.


첫마디의 어려움, 그로 인해 나타나는 약간의 말 더듬 현상, 그런 현상이 나에게도 나타났다.


나는 통역사와 강사, 컨설턴트 등의 일을 한다. 즉 말하는 것이 직업인 사람이다.

하지만 중년에 접어든 나에게 이런 밥줄 놓을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프리랜서로 일하며 장기 고객도 있었고 홍보나 영업을 하지 않아도 고객은 꾸준했다.

나는 메시지도 잘 전달라고 문맥도 잘 이해하는 통역사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코로나 시절,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이 줄어들고, 대면 워크샵이 사라지면서 계약직으로 한 프로젝트의 팀원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그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나는 '말이 안 통한다, 말기를 못 알아먹는다'고 욕을 먹고 있었다.

그 말을 듣게 된 첫 번째 이유는 내가 상사의 말을 이해하기 못했기 때문이다.

이해를 못하니 말기를 못 알아먹는다고 하는 게 어쩜 당연하다.

나는 그가 기대한 만큼 정보를 빠르게 파악하지 못했다. 언제나 나는 정보의 한계에 부딪혔다.

그럴 때면 나는 언제나 질문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더욱 말을 못 알아먹고 소통이 힘들다는 핀잔을 들었다.

나는 서서히 질문하는 것이 두려워졌다.

프리랜서로 오랫동안 일한 나는 명확하지 않은 사항을 짐작으로 일하는 건 더 큰 문제로 이어진다는 믿음이 있었다. 명확한 정보가 필요한 순간, 내가 욕을 먹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밀려와도 용기를 내서 질문을 해야 한다고 혼자 주문을 외웠다.


통역일을 오랫동안 하며 내가 깨닭은 중요한 사실은 모호함과 짐작의 위험성이다.

모호함을 그대로 두고 짐작으로 전달을 하면 결국 오역이 되어 소통의 문제라는 사고로 이어진다.

물론 그 모호함의 명확화를 위해 질문하면 영어가 부족한가, 경력이 부족한가라는 라는 인상을 고객에게 줄 수 있다.

그럼에도 제대로 이해되지 않은 메시지를 다시금 질문해야 하는 것이 나의 책임이라 여겼다.

그래야 제대로 일을 할 수 있고, 문제를 예방할 수 있고, 내 통역에 책임을 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리더가 나에게 "김지혜씨 정말 말이 잘 안통해요" 라고 하며 나를 향한 따가운 화살에 점점 견뎌내기가 힘들어졌다.

결국 나는 질문을 멈추었다. 어떻게 나는 질문을 멈추고 모호함을 극복할까?

끊임없이 스스로의 갈등과 사투를 벌였다.


그 결과 말을 시작할 때 가슴 한편 답답함과 약간의 말더듬이 생기기 시작했다.

말 더듬은 바로 나의 의지와 현의 충돌이 만들어낸 부작용이었다.

말을 시작할 때 두려움이 밀려오고 답답한 느낌이 들기 시작해며 시작하는 그 순간 예전의 그 외국인 처럼 첫마디를 반복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런 현상을 막아보고자 시작할 때 잠시 한숨 쉬었다 말을 시작하기도 해보았다.

이런 말하기 현상은 통역이라는 업무에도 영향을 주었다.

통역은 빠르게 옮기고 전달해야 다음 말을 따라잡을 수 있다.

하지만 첫 숨을 쉬었다가 하면 대화의 순간, 잠시의 시간차가 발생한다.


개인의 책임과 성과로 오롯이 살아오던 프리랜서가 팀원이 되자 협업의 부적응자가 되었다.

모호함을 극복하기 위해 회의를 마치고 팀원에게 물어봐도 사실 나랑 똑같은 상황이었다.

누구도 명확하게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팀에는 팀워크라는 게 존재 가능하다.

상사의 불명확한 지시는 본인의 기준에서는 상당히 명확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모두가 알아들을 것이라고 여기고 대화한다. 질문을 받을 준비가 되지 않는 상사에게 그 말을 못 알아먹는 부하직원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모자란 직원으로 보일 뿐이다.

그러한 조직에서의 팀은 최대한 팀워크를 발휘해야 한다. 리더가 명확한 설명없이 지시를 하는 경우, 그리고 질문 받는 것을 싫어한다면 직원들간의 집단 지성이 발휘되어야 한다.

각자가 해석한 상사의 의미를 조합하여 그 의도에 가장 가까운 답을 찾기 위한 팀워크가 필요하다.

협업이 잘 되고, 오래 그 상사와 근무한 누군가의 해석에 따라 제대로 이행되기도 한다.


난 오랜 프리랜서 생활에 그 팀워크란 것을 경험하지 못했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모호함을 극복하고자 질문을 하고 욕을 먹고 분위기를 망치고 회의가 길어지는 것은 결코 팀원들이 좋아할 리 없었다.

팀 리더도 아닌데 굳이 총대를 매고 그것을 해결하려고 하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다.

팀의 한 일원일 뿐이고 팀에는 나보다 경험 많은 누군가의 경험치로 그 모호함에 대한 현명한 설루션이 존재할 수 있다.

그럼에도 프리랜서로의 습관으로 나는 질문을 통해 모호함을 해결하려고 했고 상사의 비난에 저항하려고 했었다.


말을 더듬던 그 외국인에게 첫 단어를 알려준다고 해도 왜 그 말이 나오지 않았는지 알 것 같다.

머릿속에는 단어와 문장이 입을 통해 나올 준비는 되어 있다.

하지만 그 말은 마음 어딘가에 두려움에 걸려 첫 단어를 붙잡는다.


이미 지난 병의 후유증처럼, 지금도 가끔 비슷한 상사나 비슷한 말투의 상대를 만나면 나의 첫마디는 붙잡혀 있다. 한 호흡일 뿐이지만 나는 여전히 그 답답함 때문에 힘들어한다.


Tony Robbins의 30 years of stuttering (말 더듬 30년) 이란 영상을 보면 Tony는 30년간 말을 더듬던 리처드의 문제를 7분 만에 해결한다.

Tony는 리처드에게 말한다.

"Confront the problem 문제에 직면하라"

어떤 패턴에 잡혀 벗어나지 못할 때 그 패턴은 지속된다고 말한다.

리처드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엄마에게 가하는 폭력을 보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세 살 아이였다.

결국 그때부터 말더듬이 시작되었다.

Tony는 문제의 원인을 찾는다.

문제의 요소를 자기 자신에게 돌려 엄마의 문제를 보호하려고 했던 3살 어린아이의 작은 설루션이었다.

그 당시 그 패턴에 잡혀 30살이 된 이 남자는 여전히 말을 더듬고 있었다.

7분의 대화로 토니는 3살 아이가 머문 그 패턴에서 벗어나도록 돕는다.

그 상황을 이겨 낼 수 있는 리처드 안의 전사(warrior)를 불러낸다.

"내 안의 전사는 나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나는 멋지고 옳다고 말한다."

"더 이상 더듬지 않는다고 한다."

리처드는 그렇게 자신에게 존재하는 전사를 불러내 그의 말을 붙잡고 있는 패턴 무너뜨렸다.


과연 30년간 말을 더듬은 리처드처럼 나도 나의 패턴과 전사를 만나면 가끔씩 밀려오는 이 답답한 단추를 풀어낼 수 있을까?


나는 에너지와 자신감을 갉아먹는 이유를 항상 외부의 요인을 찾아왔다.

그 요인을 피하거나 극복하면 나는 다시 힘을 가지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 외부의 요인에 저항하며 내가 옳다는 생각에 한없이 흔들렸다.

마음도 내 말도 한없이 흔들리며 말이다.

하지만 그 외부의 요인이 사라져도 여전히 그 저항의 흔적들은 나에게 남아 나를 괴롭힌다.

오랫동안 패턴이라는 감옥에 자기를 가두었던 리처드처럼 스스로를 가두어 버린 나의 패턴을 찾아야 한다.

전사는 현실과 타협하고 스스로의 부족함을 탓하며 그 역할을 멈추었다.

이젠 갇혀 제 역할을 하지 않는 전사를 다시 불러내는 연습이 필요하다.

"내 안의 전사여! 당신이 옳았습니다, 당신의 역할이 정말 필요한 지금 다시 한번 용기 내주세요!"

이젠 나의 내면을 좀 더 들여다봐야 할 시간이다.
나는 힘과 자신감을 찾아 항상 바깥으로 눈을 돌렸지만
자신감은 내면에서 나온다. 자신감은 항상 그곳에 있다.
– 안나 프로이트-


Tony Robbins의 30 years of stuttering (말 더듬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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