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성을 드러내는 용기

연결의 결정적 단계

by 김지혜

온라인의 세계는 물리적인 국경과 거리두기의 장벽을 무너뜨린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많은 사람들을 강제든 자발적이든 온라인의 세계로 이끌었다.


우연히 영국과 미국인만 가득한 온라인 워크숍에 참여하게 되었다.

공감을 통한 대화 모임이었고 영어를 좀 한다는 생각에 용기 내 참가했다.

처음 참여한 날 다른 참여자를 보며 바로 알 수 있었다. ‘내가 잘 못 왔구나.’

사람들은 눈에 띄는 단 한 명의 아시아인을 환영한다고 했다.

마치 그들 사이에서 유일한 이주민이 된 기분이었다.

전체 프로세스를 설명하고 서로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바로 4명 ~5명으로 구성된 소그룹 방으로 이동했다.

환경문제에 대해 심도 있게 자신의 의견들을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알게 된 그날의 주제는 환경 문제였다, 참여자들은 비폭력 시민 환경 운동가들이었다.

깊이 생각해 본 적 없는 주제였고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도무지 이해할 수도 없었다.

도대체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한 영어는 다 어디로 가버린 걸까?

정신적 지옥을 경험하며 갈등하기 시작했다.

사정이 있다며 자연스러운 거짓말과 함께 소그룹 방을 나갈까?

그리고 이상한 한국인 한 명으로 잊히는 게 나을 것인가?

멘붕 속에서도 예의는 지키는 아시아인으로 이 진땀 나는 순간을 견뎌낼 것인가?

환경에 대한 개인의 의견을 듣고 서로 공감하는 대화였지만 나로서는 알아듣지 못하는 이야기를 공감해주기가 힘들었다.

마치 나는 인터넷 기사를 읽을 때, 기사를 가리는 광고가 된 기분이었다.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무시할 수도 없고, 간과할 수도 없는 존재..

참가자 한 명은 본인이 생각하는 환경 관련 갈등 상황을 이야기하며 마음속에 두었던 분노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 순간 나갈까 말까 하던 나의 고민은 사라지고 그냥 그 순간을 견디기로 결심했다.

내가 갑자기 나가고 나면 그 사람의 분노가 더 커질 것 같았다.

오늘만 잘 견뎌보자. 이 순간을 잘 참아내고 그래도 예의를 지켰다는 나만의 유종의 미를 이루리라 다짐했다.

그렇게 소그룹 토론을 마치고 다시 전체 방에 모여 성찰의 시간이 되었다.

난 긍정적이고 적절한 멘트로 분위기를 흐리지 않고 마무리했다.

주제가 뭔지도 모르고 참여한 아주 큰 실패 사례로 모르는 모임에 함부로 참여하면 안 된다는 큰 가르침을 주는 경험이었다.


이후 모임의 주최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다음번 모임에도 오라는 것이었다.

시간이 되면 가겠다고 했지만 가고 싶지 않았다.

두 시간 반 내내 “나는 누구? 여긴 어디?”라는 기분을 계속해서 느끼며 사람들과 연결되지 못하는 나를 마주하는 건 고통스러웠다.

이후 꾸준히 모임에 대한 메일을 받았다.

나의 고통이 잊힐 때쯤 다시 한번 용기내기로 했다.


모임의 프로세스는 동일했다. 전체 모임방에서 개별 소개와 안내 후 소그룹 토론으로 이어졌다.

소그룹 토론 진행 전 주최자는 참여자에게 질문이나 할 말이 있는지 물었다.

난 지난번과 같은 고통스러움과 자괴감은 겪고 싶지 않았다.

나는 손을 들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니 혹시나 못 알아들을 수 있는 점을 고려해달라고 했다.

한국에서는 통역이라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나에게 굴욕적인 상황이었지만 현실이었다.

다행히 그들은 아무도 내가 통역사 일을 한다는 것을 모른다.


소그룹 방으로 모여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각자의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한 대화가 이어졌다.


대화는 흥미로웠고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중간에 한 개의 단어를 이해하지 못한 나는 다른 단어로 표현해주겠냐고 요청했다.

상대방은 다른 단어로 바꾸어 표현해주었다.

소그룹에 참여한 4명 중 한 명은 이주민이나 외국인 난민과 일한 경험이 있는 활동가라고 했다. 이러한 상황을 잘 이해한다면서 언제든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이면 물어보라고 했다.

내가 그 정도로 영어가 안 되는 건 아닌데 라는 약간의 자존심에 스크레치를 당하며 그녀의 배려에 감사를 표했다.

내가 다시 한번 참여하겠다고 결심했을 때는 이미 지난번과 같은 경험은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아는 척하며 고개를 끄덕이지만 전혀 연결되지 않는 기분, 그건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때와 다른 참여와 이해라는 상황에서는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소그룹 대화를 마무리하고 다시 전체 모임방에서 서로의 성찰을 나누는 시간이 되었다.

소그룹에서 함께 했던 이들의 배려에 감사했다.

하지만 나로 인해 조금은 불편했을 다른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내 무식을 드러내는 건 내가 감당할 일이지만 누군가의 대화의 깊이에 방해가 된다는 미안함은 극복하기 힘들다.

마치 내가 들어간 소모임 사람들은 ‘우리 소그룹에 Jane 이 들어왔네, 오늘 그룹 잘못 걸렸네’라는 생각을 할 것 같았다.


성찰의 시간 동안 사람들의 배려 속에서 내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그럼에도 또 미안했는지를 나누었다.

주최자는 설명했다.

대화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잘 경청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가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을 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대화는 상호 간의 이해를 기반으로 한다. 듣는 사람만의 책임이 아닌 말을 하는 사람 또한 상대가 이해할 수 있도록 말을 해야 하는 책임도 있는 것이다.

어떤 언어를 사용하든, 그게 한국어든 영어든, 우리는 서로 상대방에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와 표현으로 이야기를 해야 한다.


나와 함께 소그룹에 참여한 한 미국인은 내가 취약점(vulnerable)을 드러내고 모르는 단어를 물어보는 모습이 놀라웠다고 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데는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지 그는 이해했다.


우리는 대화 중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기 어려운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내 무식을 드러내야 한다. 내가 다른걸 얼마나 많이 아는가와 상관없이 그 순간 내가 모르는 것은 무식한 것이다.


둘째, 상대가 이야기에 빠져 더 많은 이야기, 더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경청자로 촉진해 주고 싶지만 중간에 맥을 끊어 찬물을 끼얹는 건 아닌지 고민한다.


셋째, 내가 모르는 단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소그룹 방의 사람들은 앞으로 지속적으로 표현할 때 다시 한번 생각하며 용어를 골라서 사용할 것이다. 한마디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맘대로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상대와 용어를 바꿔 가며 상대가 이해하는 용어를 써야 한다는 생각으로 대화하는 건 분명히 다른다. 일종의 불편함이 존재하게 된다.


그래서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은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하다.

처음 내가 참여했을 때처럼 혼자 지옥과 무식을 경험하더라도 그냥 아는 척하는 게 더 쉽다.


그럼에도 내가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하더라도 이후 나아질 수 있다는 경험을 통역을 통해서 무수히 해왔기 때문이다.

일을 하며, 한국에서 살아가며 대화에 대한 이해가 오롯이 듣는 사람의 책임인 상황을 겪으며 살고 있다.

우리 사회는 개떡같이 이야기하는 누군가의 말도 눈치껏 행간을 읽어 내야 인정받는다.

잘 들어야 하고, 잘 이해해야 하고 말하는 사람의 의도를 제대로 해석해야 한다.

오랫동안 통역으로 일해온 나는 더욱이 누군가의 말을 이해 못한다는 건 실력의 문제다.


내가 잘하는 분야면 인정받고, 찬사 받고 스스로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잘 모르는 분야를 통역하면 아무리 자료를 보고 준비를 해도 반드시 모르는 용어가 나온다. 한국말로도 알아들을 수 없는 이론과 원리들이 언제나 존재한다.


그때 “잘 모르겠어요. 다시 설명 부탁드려요.”라고 해야 한다.

시간당 돈을 받고 일을 하는 내가 그 시간을 나를 위해 잡아먹는 경험과, 대화의 맥을 끊는 경험과, 정작 대화를 해야 하는 상대는 기다리고 있는 상황을 오롯이 겪을 각오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모르겠으니 알려달라’고 하는 용기를 낼 수 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지 않고, 짐작으로 넘어가면 결국 소통에 문제가 되는 경우를 나는 수없이 겪었다.


모르는 것을 질문하면 답변과 설명을 듣고 그 부족함을 줄이고 더 잘 이해하는 통역사가 되어 고객을 더 잘 지원할 수 있다. 하지만 더 이상 그 고객은 나를 불러주지 않을 수도 있다.

모르는 분야를 간과하지 않고 학습하고 배우고, 더 잘하려는 나를 받아주는 고객은 지속적으로 연결된다.

기대에 못 미치는 나를 마주한 고객의 실망은 더 능력 있는 사람과 연결을 원하여 더 이상 나와 연결되지 않는다.


세상은 멋진 나를 더 좋아하는 듯하고, 그런 나를 기대한다.

나 또한 그런 내가 되고 싶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고, 지금도 그렇지 못한 나를 수없이 마주한다.

나는 과연 나의 부족함을 스스로 느낄 때, 모자란 나를 마주하고 오롯이 받아들일 수 있는가?


통역의 경우처럼 그 모임에서 참여자들이 가진 기대와 상상의 나를 버리고 진짜 내가 되면 두 가지의 결과 중 하나다.

그들과 앞으로 연결될 것인가 아니면 연결을 잃을 것인가!


부족한 나를 드러내는 것은 어렵고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드러낸 취약점에도 불구하고 연결된 이들은 취약점을 수용한다.

취약점을 수용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약점이 아니라 성장의 요소로 수용한다.

치부가 아니라 함께 탐험하고 지원해야 할 연결의 고리로 받아들인다.


어떠한 결과가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오늘도 난 쿵쾅거리며 나대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손들 용기를 내기 위해 애를 쓴다.

그럼에도 연결될 이들을 기대하며, 오롯이 나로 함께 할 수 있는 이들을 기대하며 오늘도 나는 묻는다.

나는 과연 나의 부족함을 스스로 인지하며 모자란 나를 마주하고 오롯이 받아들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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