콤플렉스가 최강점이 되는 순간

나를 지지해준 멘토

by 김지혜

IMF 경제 위기 속에 나는 대학을 졸업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이 힘들어 여러 통역 자원봉사나 아주 가끔 들어오는 통역일을 하며 겨우 부모님께 의지 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다 운이 좋게 LG전자 영국 공장 현채인 교육 통역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해외 신규 공장 인력 교육 담당 부서에서 교육 통역을 맡았다.

처음에는 2명의 통역사로 시작하여 점점 더 많은 영국 교육생들이 오면서 통역사가 어떤 때는 최대 통역사가 10명까지 있었다.

10명의 통역사는 모두 멋진 스펙을 자랑하는 분들이셨다.

영문과는 기본이고 해외 유학파, 어느 대학의 토익 최고득점자, 미국 국적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나는 국내파로 해외 유학이나 어학연수를 해본 경험이 없었다. 또한 영문과도 아니었다.

이들 사이에서 난 가장 스펙이 떨어지는 통역사였다.


나는 전기 엔지니어 20명의 교육을 담당했다.

당시 엔지니어링 통역 경험이 없었던 나에게 전기 엔지니어링 용어는 마치 외계어 같았다.

한국말을 들었음에도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외국어처럼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렇게 매일 같이 생사 고비 넘듯 하루하루 외계어를 소화해야 했다.

로봇 교육이 있는 날이었다.

다른 계열사에서 출장 온 과장님이 교육을 담당하였다.

우리는 모두 로봇을 둘러싸고 프로그래밍 교육을 받고 있었다.

강사님의 설명 중에 무언가 검출을 한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도저히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뭔가 이해를 해야 영어로 통역할 텐데 한국말이 이해가지 않았다. 당황한 나는 다른 말로 다시 말해달라고 요청했다.

강사님은 다른 한국말로 표현해 주었다. 여전히 나는 그 말도 이해하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한 번만 더 설명 주시겠어요?”라고 하자 강사도 당황하기 시작했다.

당황한 강사는 다른 쉬운 말을 찾기 위해 고심했고 그리고 뭔가 다르게 표현했다.

문제는 그 말조차도 난 이해하질 못했다.

로봇 주위에서 내 통역을 기다리는 20명의 교육생들의 기다림의 눈빛, 더 쉬운 말을 찾으려 고심하는 강사님의 모습,

3번이나 설명해도 그 한국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

순간 너무 미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순간 난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죄송해요 정말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T T”

24살의 나는 그렇게도 못난 나를 마주하는 순간을 감당하지 못했다.

나는 그 자리를 떠나 잠시 진정할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정말 싫었던 순간, 어딘가 숨고 싶은 순간. 잠시 그렇게 훌쩍이다 정신이 들었다.

순간 소통을 못하고 있는 저 교육장 안의 풍경이 떠올랐다.

내가 빨리 진정하고 다시 들어가서 지원해야 한다는 생각에 교육장으로 달려갔다.

강사님은 온갖 바디 랭귀지와 영어 단어들을 총동원해서 교육을 하고 있었다.

잠시 정신줄을 놓고 본분을 잊은 나로 인해 벌어진 상황이다.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바로 통역을 지속했다.

그러자 영국인들은 내가 어떤 말을 하던 엄청난 리엑션으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마치 ‘우리 모두는 네가 뭔 말을 하든 잘 이해하니까 걱정하지 마’ 그런 표정으로 말이다.

그렇게 그날의 로봇 교육을 마치고 담당 과장님이 해외 교육생들을 챙기러 오셨다.


그리고는 로봇 교육을 위해 다른 지역에서 오신 과장님께 저녁을 대접하려 한다고 함께 가자고 했다.

저녁을 맛있게 먹고 노래방도 갔다. 그날의 나의 부끄러움과 꿀꿀함을 쿨하게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열심히 노래 불렀지만 사실 난 빨리 기숙사로 돌아가 관련 자료를 살펴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내일도 내일모레도 있을 교육이다. 그만두지 않는 이상, 몇 달간 지속해야 할 일이며 이해하지 못하면 매번 당해야 할 고통이다. 다음 주에도 그다음 주에도 이런 실수를 지속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노래방에서 회식을 마치고 담당 과장님이 기숙사까지 태워 주셨다.

그리고는 한마디 하신다. “어떻게 기분은 좀 풀리셨나요?”

나는 그때까지 그 담당 과장님이 현장에 계시지 않으셔서 그 사실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담당 과장님은 통역 폭망의 사실과 그걸 견디지 못한 나의 찌질함에 대해 모두 알고 계셨다.

그럼에도 밥도 잘 먹고 노래방에서 열심히 노래도 불렀던 내가 부끄러웠다.

사실 그날의 회식은 멀리서 오신 강사님 저녁을 대접하는 의미도 있었지만 애써도 뭔가 할 수 없었던 나를 위로하는 자리기였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닭았다.

짤릴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더 공부해서 앞으로는 실수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과장님은 말씀하셨다.


"전체 교육 중에 지금 전기 엔지니어 교육생이 20명으로 가장 많고 내용이 가장 어려워요.

근데 왜 내가 김지혜 씨를 이 교육 담당 통역으로 지정했는지 아세요? "

김지혜 씨는 이과 출신이라 그래도 다른 통역보다 잘 알아먹어요. 걱정 말고 자신 있게 계속 지원해주세요."


나의 가장 큰 콤플렉스는 가장 큰 장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나는 영문과도 아니고 유학파도 아니라는 생각에 늘 부족하다고 여기며 그곳에 있었다.

내가 가진 이 콤플렉스로 나는 스스로 경계선을 만들어 벗어나기 위해 애썼다.

실패의 경험은 콤플렉스라는 이름으로 내가 만든 한계점을 합리화시킨다.

마치 '거봐 나는 유학도 못 가고, 어학연수도 안 해봐서 결국 다른 사람보다 못하잖아'

콤플렉스는 도전을 주저하게 하고 실패를 정당화시킨다.

유학 못 간 형편이 억울하고, 어학연수 보내주지 않는 부모님을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그 순간 과장님은 내가 쌓은 한계점의 벽이 허상임을 알려주었다.

나에게 확신과 지지를 통해 계속 도전하라고 말씀하신다.

나의 콤플렉스가 나의 가장 큰 나의 강점으로 다시 태어난 순간이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교재와 자료를 보며 매일같이 거의 새벽 두 시까지 기술 용어와 전기 원리를 학습했다.

그렇게 멋진 스펙을 가진 10명의 통역사 중에 가장 많은 교육생을 담당하고 다른 통역사들이 미안해할 만큼 매일 같이 하루 많은 교육 스케줄을 담당했다.

이후 나는 자동화 부품 소싱 회사에 근무하며 해외 구매 업무 담당하였으며 싱가포르 엔지니어링 업체에 취업하여 말레지아와 중국에 체류하며 설비 영업과 사업개발을 담당했다.

가장 어렵다고 느끼고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고 느끼며 힘들어했던 그 엔지니어링 분야가 결국 이후 나에게 다음 발걸음을 내딛는 디딤돌이 되어 주었다.

그렇게 나는 지금 기술 엔지니어링 전문 통역사가 되었다.


내가 무너지는 그 순간, 포기하고 싶은 그 순간 나에겐 과장님, 훌륭한 멘토가 있었다.


히스 형제의 [순간의 힘]에서

훌륭한 멘토는 맨티에게 다음을 표현한다고 설명한다.

높은 기준 + 확신 + 방향 제시 + 지지


또한 그런 멘토는 멘티에게 3 가지를 이야기한다고 한다.


* 나는 당신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고 당신이 부응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 그러니 이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보라.

* 실패한다 해도 극복할 수 있게 내가 도와주겠다.


그렇게 살짝 멘토가 등을 밀어주면

결국 멘티는 [= 자기 통찰 증진]이라는 긍정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즉 " 내가 생각보다 더 유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라는 결과를 가질 수 있는 기반을 얻는다.


멘토의 지지로 자기 확장을 시도해도 이것이 꼭 성공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지만 실패하더라도 배움과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처음 자전거를 배울 때 나의 아버지는 항상 뒤에서 자전거를 잡아 주셨다.

어느 순간 나를 믿고 그 손을 놓으신다.

그리고는 넘어질지도 모르는 나를 따라오셨다.

나는 아버지가 자전거를 잡아주고 있다는 생각에 불안감을 극복하고 역량을 발휘한다.

내가 큰 두려움을 느끼는 그 순간은 아버지는 놓은 손을 나에게 알리지 않으신다.

아버지는 내가 혼자서 탈 수 있다고 확신 한 순간, 나에게 혼자 타고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셨다.


내가 스스로 쌓은 벽속에서 힘들어하는 순간

주저하는 나의 등을 조금 밀어 줄 그런 멘토가 필요하다.

아버지일 수도, 어머니일 수도, 친구일 수도, 동료일 수도 상사일 수도 있다.

우리는 스스로의 확장을 시도하지 않는다면 내가 어디까지 나아갈지 결코 알 수 없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자전거에 올라타야 알 수 있다.

그 여정에 누군가가 나의 등을 조금만 밀어준다면 그 힘은 나의 확장에 엄청난 에너지가 될 수 있다.


여기까지 오는데 내게 지지와 신뢰를 준 멘토들은 누구였을까?

나의 성장이 나만의 노력으로 착각하고 간과한 멘토는 없었나?


많은 이들이 자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의 곁에서 누군가 할 수 있다고 믿어 주었기 때문이다.
-unknown





keyword
작가의 이전글글로벌 커뮤니케이션- '~같아요'는 어떻게 해석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