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온라인 회의 진행 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시공간 개념!
2020년 2월 대만 고객이 한국을 방문하기로 되어 있었다.
갑작스러운 코로나 상황으로 한국 방문 미팅을 한 달 정도 미루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대만 고객은 한국에 오지 못했다.
2020년 초, 외국으로 출장을 가고, 해외에서 한국에서 방문하기로 한 모든 일정은 취소가 아니라 잠정 연기되었다.
만나서 대면으로 회의를 진행하기 위한 계획들이 틀어지며 계약도 회의도 어느 하나 일정에 맞게 진행되는 건이 없었다. 외국과 업무를 하는 많은 고객들은 기한을 알 수 없는 이런 지연과 연기에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6개월 정도 지나자 업무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고객들은 하나둘씩 다른 방법을 모색했다.
그동안 출장을 가서 대면해야 가능하다고 여겼던 회의들이 온라인 회의로 조금씩 전환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면하지 못한 조그마한 화면 속에 상대를 보고 이야기하는 것은 참으로 답답했다.
우리는 왜 그렇게 네모 속 영상 안의 상대와 만나는 것이 답답했을까?
영어라는 언어의 장벽 속에 일단 우리는 갇힌다.
영어를 잘한다 해도 내가 한국어로 표현하는 것만 못하다. 우리는 그런 언어적 장벽을 넘어 이방인과 비즈니스를 진행한다.
직접 만나서 회의를 진행하게 그 장벽은 좀 더 나아진다. 서로의 비 언어적 요소를 읽어 내고, 언어에 담기지 않는 많은 메시지 들을 우리는 자연스럽게 인식하고 해석한다.
이런 비 언어적 요소를 해석하지 못한 채 언어와 작은 화면 안의 표정만으로 상대를 읽어 내야 하는 온라인 회의는 답답하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공간의 한계를 넘어선 온라인 회의의 효율성을 인지해 간다.
출장을 가기 위해 짐을 싸지 않아도 되고 불편한 비행기 안에서 잠을 청하지 않아도 되고, 준비와 이동의 시간도 절약된다. 회사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점, 출장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스크린 속 비언어적 요소를 읽지 못하는 상황에 우리는 적응해 간다.
상대의 비언어적 메시지를 읽지 못해 힘들었다면 이제는 그런 비언어적 요소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이 편해지고 있다.
만나서 상대의 미소 뒤에 불편한 몸짓, 불안한 손짓을 보았다면 다시금 상대와 대화를 시도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온라인 상에서는 한정된 메시지로 알아차릴 수 없는 것에 그런 노력과 시도에 에너지는 쏟지 않아도 된다.
서로의 관계 형성과 이해의 폭은 한계가 있지만 그 한계를 굳이 넘어서야 했었나 라는 의문조차 들기 시작한다. 우리는 이렇듯 온라인 세계에 모두가 적응해 가고 있다.
그 장단점을 스스로 알아가고 느껴가고, 그곳에 맞게 또한 일과 비즈니스를 만들어가고 있다. 온라인의 세계는 우리가 가진 공간의 한계를 극복하게 해 준다.
코로나 사태 이후 수많은 강의와 세미나와 미팅이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내가 어느 작은 섬에 살아도, 시골에, 구석진 원룸 한편에 있더라도 나는 여전히 세계 어느 곳과도 연결될 수 있다.
예전에도 많은 온라인 강의와 컨퍼런스콜이라는 전화로 진행되어온 회의가 있었지만 일상의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외국과 진행하는 형태의 대화와 전달의 방법이 모두 온라인화를 함께 갖추고 있거나 대응하고 있다.
정말 불가능할 것 같았던 심사, 감사, 현장 실사 또한 온라인으로 이루어진다.
온라인 라이브로 현장을 보여주거나 요청받은 사항을 녹화하여 보여주는 것으로 심사가 진행된다.
온라인은 오프라인보다 심사가 쉬울 것 같지만 심사관의 매의 눈은 빠르게 흘러가는 동영상 속에서도 지적할 거리를 잘 도 찾는다.
팬데믹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기회는 이런 공간의 한계를 넘어서게 했다는 것이다.
인터넷이 되는 곳, 그곳이 내가 세상의 중심이다. 내가 행동으로 실천만 한다면 누구와도 연결될 수 있다.
공간의 문제점이 온라인으로 극복되었다면 쉽게 간과할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서로 다른 시간의 상황이다.
온라인은 대면회의나 대면 워크숍처럼 우리를 같은 공간, 같은 시간 안에 두지 못한다.
온라인 회의가 진행 가능한 시간대를 살펴보면, 대부분의 미국 업체들은 아침 일찍 회의를 잡는다.
미국의 퇴근 시간 전, 한국의 아침 출근 후를 맞추어 진행하다 보니 짧은 시간 진행해야 한다. 아니면 어느 한쪽은 추가 근무를 하는 상황이 되어야 몇 시간을 잡을 수 있다.
자칫 회의가 길어지면 미국 파트너는 퇴근 시간을 넘어 회의를 하고 있는 것이다. 효율적으로 진행되지 못한 회의로 상대는 퇴근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대에게 불편한 상황이 될 수 있다.
동남아시아의 경우 주로 오전 10시~5시 정도까지 회의가 진행된다.
이때 회의 진행에 있어 고려할 중요사항, 바로 서로의 점심시간이다.
호주의 감사관과 진행하는 며칠간의 심사 일정이 있었다. 호주는 한국보다 2시간이 빠르다.
한국시간 오전 8시부터 미팅을 시작했다. 호주 시간 10시, 심사관은 점심시간을 우리의 시간에 맞춰서 진행해도 좋다고 했다.
호주 또한 코로나로 재택으로 진행 중이므로 언제든 쉬는 시간에 짬을 내서 점심을 먹으면 되니 우리 시간에 맞춰서 언제든 점심 먹어야 할 시간을 알려달라며 우리를 배려했다.
한국의 점심시간 12시면 호주는 2시이다. 심사관의 배려와 구내식당의 배식 시간을 고려해서 그냥 12시에 점심을 먹으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심사를 진행했다.
심사가 순조로울 때는 그래도 큰 갈등 없이 진행되었지만 서로의 니즈와 대응이 맞지 않을 때 심사관은 상당히 예민해졌다.
추가적 대응을 위해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다. 우리는 빠른 점심시간을 가지겠다고 했다.
업무 대응을 위해 이것저것 챙기고 식당 문이 열기를 기다렸다가 빠르게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돌아와 심사를 지속하였다.
심사관은 휴식과 점심으로 다시 어느 정도 진정 모드로 심사를 진행하였다.
그 패턴을 보면 심사관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긴 오전과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 버린 시간까지 일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쉽게 스트레스가 올라가고, 예민해질 수 있는 상태임에 분명하다.
이렇게 한국 시간 낮에 진행하는 경우는 서로의 점심시간을 반드시 고려하고 가능하다면 상대의 점심시간을 맞춰 주거나 그 시간을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루는 인도네시아와의 미팅이 오전에 예정되어 있었다. 우리보다 2시간 늦은 인도네시아와의 미팅은 인도네시아 시간 9시, 즉 한국 11시부터 시작되었다. 회의는 당연히 1시간을 훌쩍 넘었고, 결국 한국의 점심시간은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그 순간 뭔가 미팅 시간에 있어서 우리 측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배도 고팠고, 뭔가 중간중간 간식이라도 먹을 분위기조차 되지 않았고, 화면을 켠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건 고작 차를 마시는 정도였다.
결국 두 시간의 꽉 찬 미팅은 한국의 점심시간을 송두리째 가져가 버렸다.
이후 잠깐의 휴식 후 홍콩과의 미팅이 이어진다.
이렇게 동남아 측과는 이른 오전과 늦은 오후를 제외한 대부분의 업무시간, 10경부터 오후 4시 정도에 진행된다.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 중동과 같은 무슬림 국가와의 미팅은 기도 시간 또한 고려해야 한다.
한국 측에서 제안한 온라인 미팅 시간에 참가하지 않는 말레이시아 팀에게 전화를 하니 지금 기도 시간이라고 했다. 10분 정도 걸리며 마무리되는 대로 들어오겠다고 했다. 10분 정도 지나자 한 명씩 들어오기 시작하고 모두가 들어오는데 거의 30분이 걸렸다. 남성과 여성의 기도실이 다르고, 참여자가 어디에 있는가에 따라 기도실의 거리가 다를 수 있다. 우리가 제안한 미팅 시간을 거절하지 못한 말레이시아와의 미팅 시간은 기도시간을 고려하지 않아 결국 30분 뒤에 시작할 수 있었다.
이후의 시간은 대부분 유럽과의 미팅 시간대이다.
유럽과의 미팅은 유럽 아침 시작하자마자 한국과 미팅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의 퇴근 시간이 늦어지지 않게 대부분 4시에 미팅이 시작된다.
만약 회의가 두 시간 넘게 진행되어 버리면 우리는 오롯이 야근각이다.
그래서 한국 측이 예민해지는 시간이다.
한국 측의 상황을 보면 하루 중 미팅이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순간이다.
청소년들과 진행하는 글로벌 콘퍼런스가 있었다.
파키스탄, 미국, 말레이시아, 한국 이렇게 4개국이 참여한 콘퍼런스였다.
한국이 주최하는 만큼 한국의 시간 중심으로 상대가 참여 가능한 시간, 오전 11시로 잡았다.
하지만 파키스탄의 경우는 새벽 7시, 미국의 경우 저녁시간이다.
토론을 진행하며 같은 온라인 공간에서 상대의 시간을 잊고 나와 같을 것이라는 가정하에 우리는 대화를 나눈다. 하지만 문득 알게 된 상대방의 이른 시각, 그 시간에 일어나 지금 나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 되면 상대에게 고마움은 커진다. 친한 친구에게 새벽 7시에 전화를 해서 내 이야기를 들어줘라고 한다면 과연 저렇게 열심히 들어줄까?
시차에 대한 인지가 부족하거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누군가는 나와 함께 하기 위해 더 큰 노력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알면서도 대화를 나누다 보면 우리는 잊어버리기 쉽다.
온라인이라는 공간에서 간과하기 쉬운 상대가 있는 공간에서의 시간, 나와의 시차!
온라인 세상 속에서 우리는 함께 하지만 여전히 배려해야 하는 상대가 있는 공간에서의 시간!
그는 다른 세상에서 지금 함께 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