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반적으로 행동과 말, 글 등을 보고 상대를 판단한다. 상대가 ‘잘한다, 못한다, 좋다, 나쁘다, 맞다, 아니다’를 판단하는 근거는 내가 가진 기준이다. 내가 가진 기준과 맞지 않을 경우 우리는 상대를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글로벌 청소년 콘퍼런스를 온라인으로 진행하였다. 파키스탄, 말레이시아, 미국, 한국 4개국이 참여하는 이벤트였다.
청소년들이 참여하여, 각자의 의견을 나누고, 토론하고 발표하는 프로세스로 진행되었다.
다섯 번의 이벤트에서 유독 파키스탄 참여자 대부분이 핸드폰으로 접속하고 화면을 끈 상태에서 참여하였다.
다른 국가의 친구들이 화면을 켜고 의견에 반응을 하고 미소 짓고 이야기 나누는 반면 파키스탄의 참여자들은 얼굴도 볼 수 없고, 핸드폰으로 접속하다 보니 화면도 공유할 수 없어, 매번 화면 공유를 도와줘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매번 늦게 들어오는 친구들도 있었다.
진행하는 입장에서 파키스탄 참여자의 태도가 성실하지 못하다고 여겨져 좀 더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하고 싶었다.
늦지 않도록 더 일찍 접속해서 제시간이 참여하고, 적극적 참여를 요청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사항을 어필하고자, 파키스탄 코디네이터와 미팅을 잡았다.
먼저 파키스탄에서 참여하는 청소년들의 콘퍼런스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큰 만족감을 느끼고, 참여의 즐거움을 느낀다고 했다. 별로 신뢰가 가지 않는 말이었다.
제대로 참여를 하지 않는데 어떻게 만족감을 느낀다는 것인지, 사실인지 궁금했다.
우리가 바라보는 입장, 우리가 느낀 바를 설명하고 파키스탄의 청소년들이 진심으로 만족감을 느끼고 있는지 확인해 달라고 했다.
또한 적극적인 참여에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알고 싶었다.
파키스탄 코디네이터의 현지 상황에 대한 설명은 우리가 얼마나 쉽게 나의 기준에서 가정(Assumption)하고 판단해버렸는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열심히 참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파키스탄 참여자는 사실 누구보다 열심히 참여하고 있었다.
파키스탄은 한국과 4시간의 시차가 있다. 그 시차를 알고는 있었지만 온라인 미팅을 하며 같은 사이버 공간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쉽게 잊게 된다. 그냥 나와 같은 시간대라고 어느 순간 착각하기 쉽다.
한국 시간 오전 11시는 파키스탄의 아침 7시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 참여를 위해 준비하는 파키스탄 친구들은 한국에서 보다 훨씬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
IT가 발달한 한국에서는 이미 많은 학교가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온라인 수업을 위한 IT 디바이스, 노트북이나 PC, 웹캠 등을 갖추고 있거나 지원받을 수 있다.
하지만 파키스탄 친구들은 대부분이 노트북이 없어 핸드폰으로 접속해야 했다. 한국의 기준으로 나는 쉽게 모든 참여자가 노트북이나 PC가 갖춰져 있다고 가정해 버렸다.
한국에서는 한 가정에 한 자녀 아니면 두 자녀로 중고등학생이 되면 각자의 방에서 공부를 하고 잠을 잔다.
하지만 파키스탄은 대가족 구성원이 함께 지내는 집에서 나 외에 가족 구성원이나 동생들이 함께 할 수 있다.
지금 내가 참여하는 이 온라인 글로벌 콘퍼런스는 한국이라면 상당히 중요한 기회와 순간이다.
부모로서 아이가 글로벌 청소년들과 문화 교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하면 상당히 기쁘게 적극적으로 지원해줄 것이다. 그런 프로그램에 참여도 엄마의 독려이거나 엄마가 신청해서 참여했을 확률이 높다. 이런 가정에서 아이들은 내가 의지만 있고, 충분히 몰입할 수 있다면 오롯이 이 콘퍼런스에 집중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모두가 똑같을 것이라는 가정은 분명 문화적 이해가 부족한 결과였다.
파키스탄 참여자들에게도 온라인 콘퍼런스는 중요했다. 하지만 대가족이 함께 사는 파키스탄 문화에서는 그들이 해야 하는 중요한 집 안 일들이 있을 수 있다. 할머니를 위해 우유를 아침마다 사 와야 할 수도 있고, 할아버지를 위해 신문을 가져다 드리는 일이 그들에게는 더 중요할 수 있다.
그러한 대가족 구성원으로 서의 역할이 핸드폰으로 콘퍼런스에 참여하는 것보다 더 중요시될 수 있다.
이런 문화적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는 쉽게 ‘열심히 참여하지 않고 있구나’라고 가정하고 오해했었다.
온라인 강의나 온라인 회의, 콘퍼런스에서 나는 화면을 켜고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는 끝까지 화면을 켜지 않으면 상대가 열심히 참여하고 있지 않다고 쉽게 판단하게 된다.
하지만 집에서 접속하고 있을 경우나 내가 별도의 방이 없는 경우 가족과 함께 인 경우, 워킹맘이 아이와 함께 있을 경우 등, 화면을 켤 수 없는 상황은 다양하다.
한국의 IT 인프라는 놀라울 만큼 훌륭하다. 하지만 다른 국가의 네트워크 상황이 한국만큼 좋지 않을 수 있다. 네트워크 상태로 인해서 목소리가 끊어진다 거나, 자꾸 접속이 끊어지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 화면을 끄면 상태가 좀 나아지기 때문에 접속상태 유지를 위해 화면을 끄고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인도와 미팅 시간 조율을 하고 있었다. 한국시간에 맞추어 오전에 회의를 하자고 했을 때 인도 파트너는 인도의 출근 시간 이후에 진행하면 좋겠다고 했다.
고객에게 프로그램 제안을 하는 회의였고, 프로그램 시연을 하며 화면 공유를 해야 하는 미팅이라 네트워크가 상태가 좋아야 시연이 제대로 가능했다. 무거운 프로그램을 돌려야 할 경우, 컴퓨터 사양뿐만 아니라 네트워크 상태에 따라 프로그램이 제대로 작동이 안 된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인도인의 경우 집에서 접속하는 네트워크 상태보다 회사에서 접속할 경우 네트워크 상태가 훨씬 좋아 지기 때문에 회사에 출근 이후 회의를 진행해야 제대로 프로그램을 보여 줄 수 있었다.
온라인 회의 중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돌려야 하고, 데이터 공유를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면 더 큰 부하가 걸린다. 이럴 경우, 비디오 화면을 끈다면 좀 더 원활해진다.
아시아 지역의 온라인 미팅은 대부분 화면을 켜고 진행한다. 한국의 경우 대부분 화면을 켜고 회의 진행하는 것을 선호한다.
한국 측 업체에서 미팅 중 화면을 켜고 있는데 상대 방이 화면을 끄고 있다면 무례하다고 느끼기도 한다.
특히나 수직적이 조직 문화인 한국에서 높은 사람이 화면을 켜고 참여하는데 아랫사람이 화면을 끄고 참여하거나 고객은 화면을 켰는데 공급업체가 화면을 끄고 참석한다는 것은 매너가 없다고 여겨질 수 있다.
회의를 진행하는 데 있어서 나는 화면을 켜고 있고 상대가 화면을 계속 끄고 있고 그 이유를 모른다면 면 나 또한 화면을 끄고 싶어 진다. 마치 나 혼자 벽보고 이야기하는 기분을 느끼기 때문이다.
부득이 화면을 켤 수 없을 경우, 왜 켤 수 없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누군가 화면을 끄고 있고 누군가는 화면을 켜고 있다면, 상대에게 화면을 켤 수 없는 상태인지, 화면을 끄고 진행하는 이유를 개인적으로 물어보면 좋을 것이다.
네트워크 상태로 인해, 혹은 집에 가족들이 함께 여서 화면을 켤 수 없거나, 혹은 개인적 사정으로 화면을 켤 수 없다면, 양해를 구하거나 다른 참여자에게 알려 주는 것이 오해를 줄이고 화면을 켜고 참여하는 다른 참여자를 이해시킬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진행자의 입장이라면 하나둘씩 꺼져가는 화면에 점점 힘이 빠질 것이다.
파키스탄과 인도의 문화와 인프라를 이해하지 못한 채 가졌던 오해들은 에드거 샤인(Edgar Schein)의 문화 모델로 설명될 수 있다.
가장 상위에 인위적 결과물(Artifacts)이 존재한다. 즉 눈에 보이는 구조와 프로세스, 행동들이다.
나는 파키스탄 참여자들이 화면을 끄고 제시간에 참여하지 않고, 핸드폰으로 참여하는 이러한 일련의 행동들을 보았다.
또한 다른 참여자는 화면을 켠 상태에서 적극적으로 다른 이들의 의견에 호응하고, 박수도 치고 화면 공유도 도와주었다.
문화 모델의 두 번째 단계 표현되는 믿음과 가치가 존재한다. 이는 목표와 기준, 정당성 등이 이에 해당한다.
다른 참여자는 화면을 켠 상태에서 적극적으로 다른 이들의 의견에 호 흥하고, 박수도 치는 행동을 봤을 때 나는 다른 참여자를 존중한다면 화면을 켜고 호응을 함께 하며 참여하는 것이 맞는 것이다.
또한 발표 시 다른 이들에게 화면 공유를 부탁한다 거나 하는 행동은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게 된다.
나의 가치는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시간 약속을 지키며,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이었다.
이런 기준 하에 마지막, 바로 내가 가지는 가치의 기준에 따른 가정들을 하게 되었다.
파키스탄 참여자는 열심히 참여하지 않고 있구나! 파키스탄 참여자는 이 콘퍼런스가 재미없구나!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 마주할때 일반적으로 나의 가치와 기준에 따라 가정한다.
긍정적인 가정의 경우는 문제 되지 않지만 글로벌 협력이나 외국인과의 업무, 협업에 있어서 좋은 경험뿐만 아니라 어떠한 다름을 마주할 때 쉽게 부정적인 가정을 해버린다.
이럴 때 다시 한번 살펴봐야 하는 것이 바로 나의 기준 가치와 상대의 가치와 기준이다.
글로벌 문화의 이해, 상대방의 문화적 기준과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은 내가 가졌던 부정적 가정과 느낌에서 오는 오해를 하나하나 풀어준다.
외국인과의 교류와 협업, 파트너십은 많은 장점과 기회를 가진다. 언어적으로 극복하였음에도 외국인과의 업무가 어렵다고 여겨지는 이유는 이러한 가치의 차이에서 오는 오해와 갈등 때문이다.
어떠한 결과와 현상을 마주하고 부정적인 감정이 든다면 돌아보자.
나의 기준과 상대의 기준 그리고 그 가정들을 하나하나 풀어본다면 오해의 실마리를 하나하나 풀어나갈 수 있으며 상대가 나와의 업무나 상호작용에 얼마나 많은 가치를 두고 참여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