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이야기는 달리지 않아도 나의 가슴을 뛰게 한다.

Women basecamp, Wild Women Season 1!

by 김지혜

어디서 본 공지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여기저기 검색하고, 파도처럼 그 문장을 보게 되었다.


[ Wild Women Season!]

모험하는 여성들의 아웃도어 커뮤니티 ”자연 속에서 나를 마주하고 몸으로 연대합니다.”

- 우리는 모든 여성들에게 야성이 있다고 믿습니다. 모험의 경험이 조금 필요할 뿐이죠.



참여할 시간이 될지 알 수 없고, 오프라인 모임에 갈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그들과 정말 모험이라는 것을 할 기회를 가질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자연이라는 말에 머리가 맑아졌고, 모험이라는 말에 사실 나는 그런 인간이었던 것 같고, 여성이라는 말에 안전함을 느꼈다.


‘나도 한때는 이런 말들에 어울리는 인간이었어!’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잠시 내 맘을 두근거리게 만들어 주고, 잠시 내게 나라는 사람을 생각하게 해 주었다.

일단 공지를 제대로 읽지도 않고 가입비를 보냈다. 가입비를 보내지 않으면 지금의 현실에서 이런 모임을 하지 않을 수만 가지 이유를 나는 찾아낼 것이다.


첫 번째 온라인 모임 날짜가 잡히자 그제야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가도 되는 모임인가? 과연 나는 그 모임에 적응할까? 내가 어울리는 모임일까?

첫 번째 온라인 모임에서 [ 나를 소개할, 내가 좋아하는/하고 싶은 아웃도어 활동 사진을 배경으로 설정해주세요.]라고 했다.


그런 사진이 뭔지 생각나지 않는다. 모험과 자연이라면 결혼 전에 갔던 네팔의 안나푸르나와 말레이시아의 키나발루 산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 종이 사진은 어디에 있는지 조차 모른다.

벌써, 그 일은 내게 20년도 넘은 일이다.

난 그동안 산도 가고 바다고 가고 해외여행도 가고, 해외에 출장도 갔었다.

그럼에도 어떤 순간도 모험과 자연이라는 단어와 닿아 있는 장면은 떠오르지 않는다.

왜 그럴까?

산과 바다와 해외에서 내 마음속을 채우던 우선순위는 자연이나 모험이나 내가 아니었다.

아이와 함께한 산에서 난 아이들의 질문에 답을 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리엑션 하며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 세우고, 아이들이 투덜대지 않도록 짬짬이 간식 먹는 시간을 가진다.

출장을 가면, 잠시의 휴식과 업무 끝에 가지는 잠깐의 여행은 행복했다. 하지만 일의 연장처럼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방금 마친 회의와 내일 할 회의 내용으로 가득했다. 업무를 마치면 출장으로 엄마와 떨어져 지낸 아이들 생각에 집으로 돌아가기 바빴다.

그런 순간들은 내 마음속의 모험, 여성, 나, 야성 이런 단어들과 전혀 닿아 있지 않았다.


첫 온라인 모임! 궁금함과 기대감, 설렘, 걱정과, 뻘쭘한 마음으로 참여했다.

첫 모임, 역시나 모두 MZ 세대 친구들로 X 세대인 내가 올 곳이 아닌 곳에 온 듯하다. 다행히 Zoom에는 빵빵한 필터 기능이 있어, 비주얼은 적당히 묻어갈 수 있다.


운영진들은 모두 내가 꿈꾸는 삶을 살고 있었다.

아이들이 독립하면 나도 노마드의 삶을 살겠다는 꿈을 꾸고 있었는데 그들은 이미 그렇게 살고 있다.

외국의 알려지지 않는 어느 한적한 마을에서 온라인으로 통역과 강의를 하고, 동네 커피숍에서 글을 쓰고 먹고살 수 있게 되는 것! 이곳저곳에서 노트북 하나로 살아가는 디지털 노마드의 삶은 나의 꿈이다.

그들은 진작에 그렇게 살고 있는데, 나는 왜 그렇지 못했을까?


함께 하는 이들은 여러 가지 아웃도어 활동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볼더링, 플로킹, 파쿠르, 하나하나 구글링을 해본다.

검색을 하며 찾은 사진들은 하나같이 멋지다. 검색만 하고 사진들만 구경하는데 머리카락이 바람에 상쾌하게 스치는 기분이다.

한 명 한 명 아웃도어 활동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이야기를 듣는 것 만으로 마치 내가 자연 속을 달리는 상상을 해본다. 그들의 이야기에 달리지 않았는데 숲 속을 달린 듯 가슴이 뛴다.


자연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자연이라는 단어에 모기를 떠올리며, 아이들이 모기에 물리지 않게 모기 퇴치 팔지를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산이라는 단어에 산 꼭대기는 추우니까 아이들 잠바를 챙겨 가져가야 한다.

도대체 이 모임에서 난 자연이라는 말에 왜 설레었던가?

난 자연을 자유라는 말로 해석하고 있었다. 새로운 모험이 아닌 잠시 잊었지만 이미 내가 누렸었던 자유, 모험, 그것을 다시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소그룹으로 나눠 소개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각자의 가상 배경은 어떤 곳인지, 어떤 의미인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할 말이 없다. 기억나는 곳이 없다.

자연 속에서 누군가가 즐기는 모험 순간에, 삶의 우선순위가 다른 나에게 생각나는 순간은 없었다.

나의 소개 순서가 되었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의식의 흐름대로 아무렇게나 이야기해버렸다.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모두들 나를 받아주는 분위기였다. 내가 그곳에 함께 해도 된다는 인정받는 기분이었다.

나도 작은 모험들을 실천해보고 싶어 졌다. 뭔가 시도 정도는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에너지가 올라왔다.

그렇게 소개를 마치고 메인 zoom으로 다시 모였다.


그 순간, 갑자기 밖에 아이들이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

소리를 지르고, 울고, 난리가 났다.

난 지금의 이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다. 문을 닫아버렸다.

아이들은 엄마가 들었으면 하는지 더 크게 소리 지르고 더 크게 울부짖는다.

나는 듣지 않기 위해 안 들린다고 주문을 외우며 모임에 집중하려고 애쓴다.

언니에게 혼이 난 둘째 놈이 방으로 들어와 울음을 참으며 책상에 앉아 숙제를 한다.

그런 아이를 보고야 말았다. 이게 나의 현실이다. 구름 속에 있었던 난 다시 현실로 내려와 버렸다.

아이들을 돌보지 않고, 나를 위해 그들의 갈등을 무시한 난, 또 미안한 몹쓸 엄마가 되었다.

아이들을 불러 이야기를 듣고, 최대한 상황을 빨리 정리하고 모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여전히 모두들 환한 미소로 벅찬 감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아직 나를 위한 꿈을 꾸기에는 너무 이른가? 내가 너무 이기적인 엄마인가 라는 생각에 조금 전 느껴지던 상쾌한 바람은 가슴에 휑하게 불어 드는 먼지 낀 환풍기의 뜨끈한 바람이 되어버렸다.


모임의 반은 꿈을 꾸었고, 나머지 반은 현실에서 허덕이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잠시의 행복은 여전히 나에게 꿈을 꾸어도 된다고 말한다.

다른 이들의 삶을 바라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나는 여전히 꿈꿀 수 있다. 꽃잎을 떨어뜨리는 바람을 느끼며 나도 자연이라는 곳에서 자유를 꿈 꾸고 싶다.

그들의 이야기는 달리지 않아도 나의 가슴을 뛰게 한다.

그래서 더 기대된다. 현실 속에서도 나는 이 모임을 통해 마음 한편 자연과 모험의 순간을 누리고 싶다.

그들은 어떤 이야기를 나누어 줄지, 또 혹시나 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갈지 아직 모른다.

오늘도 현실에서 허덕이는 육체와 구름 위를 걸어 다니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낸다.



https://youtu.be/op-k11yDWZ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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