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목적 잃은 자존심과 친절함이 가져다 준 실패

맛있어야 맛집이지 멋있어야 맛집이냐

by 김지혜

오전에 미국 에이전트에게서 반가운 이메일을 받았다.

통역한 고객으로부터 찬사를 받았다는 메일이었다.


전날 진행한 일본 컨설팅 그룹의 인도계 컨설턴트는 엔지니어링 관련 시장 트렌드를 조사하기 위해 한국인 전문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특수 설비 관련 트렌드에 대한 회의로 기술적 내용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컨설턴트는 각각의 질문을 전문가에게 던질 때 범주와 답변의 사례를 명확하게 알려주고 질문을 하나씩 이어 나갔다.

장황하지 않은 명료한 설명과 사례는 전문가가 어떠한 정보를 답변해야 하는지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고 필요한 정보는 전달되었다.

이렇게 질문과 답변이 명확하고 중간에 전달하는 통역에 문제가 없다면 당연히 질문자도 답변자도 만족도가 높아진다.

에이전트의 칭찬 메일에 약간의 겸손과 프로정신을 보여주려고 “내가 할 일을 한 것이고, 앞으로 계속 열심히 하겠다'는 답장을 보냈다.

하루를 뿌듯하고 보내고 저녁에 진행되는 또 다른 통역 건, 칭찬에 힘입어 자신감을 안고 통역에 들어갔다.

인도계 미국인 투자자와 한국인 전문가와의 인터뷰였다.

한국의 전문가는 영어를 어느 정도 잘했다. 영어를 잘하는 분들도 인터뷰 시 통역을 요청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영어의 지역적 엑센트로 인한 발음을 알아듣기 어렵거나, 전문 용어에 대한 실수를 대비하거나,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통역사를 요청한다.

이번 전문가는 첫인사부터 영어로 시작하며 영어에 대한 불편함이 없어 보였다.

전문가는 영어가 가능하니 본인이 영어로 진행하겠다고 했다. 만약의 경우에 도와 달라고 했다.

이런 경우, 가장 긴장되는 통역이다. 전체 내용을 다 정리하고 있어야 한다.

“방금 내용을 요약해 주세요, 방금 무슨 말이었죠?” 어느 순간 갑자기 요청한다면 원하는 만큼 내용을 알려줘야 한다. 어디서부터 제대로 이해 못 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는 의뢰인의 첫 번째 질문을 듣고 영어로 바로 답변하였다.

첫 번째 답변을 솔직히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의 영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건 나만이 아니었다. 질문을 한 의뢰자도 그의 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 이후, 전문가는 전문 용어가 있어 그런 것 같다고 질문은 바로 들을 테니 답변만 영어로 통역을 해달라고 했다.

이후 전문가의 답변 부분만 통역을 이어나갔다.

전문가의 답변을 들으며 의뢰인이 한 질문에 대한 답변이 아닌 것 같아 질문을 설명하자 “알고 있다’고 하며 나의 설명을 잘랐다.

전문가는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건가 의심이 들었지만 전문가의 태도에 더 이상 질문을 명확화 하기 위한 행동은 멈추었다.

원하는 답변을 받지 못하는 것 같은 의뢰자의 불만이 약간씩 느껴졌다.

의뢰자는 질문을 다른 말로 바꿔서 다시 묻기도 하며 결국 미팅 시간은 예정보다 30분이나 더 이어졌다.

보통 원하는 정보를 얻은 의뢰자는 이젠 목소리나 리엑션으로 대충 만족하고 있구나라는 감이 온다.

이번 통역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한 의뢰자를 느낄 수 있었고, 당황해하는 전문가의 목소리 또한 느껴졌다. 하지만 인터뷰가 마무리되고 마지막에 반전처럼 의뢰자는 정보가 매우 유익하고 좋다고 말했다.

의뢰인은 “정기적으로 통화하고 싶고 한국에서 만나서 맛있는 한국 음식도 함께 먹고 싶고 만나고 싶다”는 말까지 전문가에게 전했다.


인터뷰가 마무리되고 전문가는 자기가 요청한 답변 통역에 전문 용어가 많아서 힘들었을 텐데 어렵지 않았는지 물었다.

이런 경우 오랜 경험에 상황을 해석해 본다면 이러하다.

영어를 잘한다라고 생각하는 전문가는 영어로 답변을 하려고 했으며 첫 번째 영어 답변 상대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고 이에 당황했다.

그 이유는 영어의 수준이 아니라 전문 용어 때문 이라고 생각하고 어려운 전문 용어 때문에 통역사에게 통역을 맡겨야 한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전문가가 한 이야기는 상당히 수준 높은 전문적 내용이고 영어로 전달되기 아주 어려운 내용으로 그는 간주한다.

따라서 영어를 잘하는 본인도 전달이 어렵지만 그것을 전달했을 통역사도 분명히 어려워했을 것이다 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나는 사실 관련 분야를 거의 30회 이상 진행했다. 전문 용어는 이미 스터디를 거의 다 했으며, 전문용어로 헤매는건 관련 분야 통역 초기에 어느 정도 다 겪었다.

자주 통역하는 분야이고, 답변이 길어 숨이 막힐 만큼 한 번에 많은 메시지를 전달해야 했다는 어려움을 제외하고는 그의 답변 통역에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난 “네 어려웠는데 혹시나 들으시기에 틀린 게 없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그의 입장을 존중하고 그를 위로하고자 했다.

내용이 도움이 되었다는 의뢰자의 말과, 전문가의 요청에 따라 답변 부만 통역을 지원했기에 양측에 전반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간주하고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보고서를 올렸다.


문제는 이후 에이전트에서는 의뢰인으로부터 통역이 문제가 많았다고 금액 지불을 할 수 없다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오전에 받은 칭찬과 찬사 속에 구름을 걸었다면 갑자기 우박이 되어 바닥에 떨어진 느낌이었다.

과연 내가 무엇을 잘 못한 것인가 이틀 내내 생각했다. 정말로 내용이 많았지만 빠지지 않고 전달했건만 무엇 때문에 통역이 문제였다고 느낀 걸까?


이틀간 상황을 되짚어 보고서야 의뢰인 입장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전문가는 영어 능력을 의심받지 않기 위해 통역사에게 질문을 이해한 게 맞는지 다시 확인하지 않았다. 질문 조차 통역을 해주는 것에 자존심 상했다.

그가 예측한 대로 해석하여 답변을 이어 나갔고 그 답변만 내가 통역을 했으니 의뢰자는 제대로 된 답변이 전달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질문부 통역을 하건 안하건 답변을 듣는 의뢰자는 내가 통역한 답변만 이해하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의뢰자 입장에서 문제는 분명 통역사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결국 이 전문가와 다음번에 다시 다른 통역사 지원을 받으면 원하는 답변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통역하는 그 순간에 사실 나 또한 많은 갈등을 했었다. 양측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한 것이, 전문가의 체면을 깎아내리지 않는 것이고 답변을 최대한 통역해주는 것이라 여겼다.

영어에 대한 자존심을 가진 전문가, 질문을 설명해주려는 나의 통역을 멈추며까지 지키고 싶은 그의 자존심을 건드려 제대로 이해 못 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면 어땠을까?

그럼 그 전문가가 통역사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을까? 예를 들어 ‘기술적인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라고 하거나 '알아듣는 내용을 자꾸 통역하는 바람에 시간이 모자랐다' 거나 그런 말을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었다.

그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았고, 그의 자존심과 체면을 지켜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과 판단에 머릿속이 복잡한 그 순간 내가 잊은 것이 있었다.

본 통역에 대한 돈을 지불하는 곳은 내가 소속된 에이전트이고 그 통역 에이전트에게 돈을 지불하는 사람은 의뢰자이다.

간접적이지만 의뢰자가 나에게 돈을 지불한다. 의뢰자는 돈을 지불하고 통역사를 쓰고, 전문가에게도 돈을 지불하고 정보를 받는다.

내가 초기 통역을 하면서 가졌던 통역사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과연 통역사는 중립을 지켜야 하는가’였다.

중립을 지키지 못하고 의뢰자, 즉 나에게 돈을 지불하는 측 입장에서 통역과 설득을 하고 ‘We’라는 표현을 쓰는 나를 지적하는 외국인도 있었다.

오랫동안 이 일을 하면 내가 스스로 정의한 통역의 역할은 철저히 돈을 주는 의뢰인의 입장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한가지, 내가 망각한 것은 바로 회의의 목적이었다.

이 회의는 소통을 잘하고 서로 사이좋게 마무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돈을 주고 정보를 얻으려는 정보 교환의 장이었다. 나는 그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존재하는 역할이었다. 정보가 제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어떠한 경우에도 어떤 두려움에도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액션을 취했어야 했다.

질문을 잘못 알아듣는 전문가에게, 질문은 통역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전문가에게, 그의 영어에 대한 자존심을 꺾고, 제대로 다시 전달했어야 했었다.

또한 그의 알아들을 수 없는 첫 영어 답변도 통역할 테니 다시금 한국말로 해달라고 했어야 했다. 빠른 판단과 단호함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그랬다면 전문가는 어쩌면 질문은 자기가 알아들을 수 있다는 착각과 자존심을 내려놓고 전문가로서의 정보 전달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이후 이어진 또 다른 통역 건, 이번에도 전문가는 영어를 잘한다고 되어 있었다.

상당히 긴장하고 회의에 참여했다. 똑같은 실수를 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결심했다.

이번 전문가는 정말로 영어를 잘했다. 누구나 아는 글로벌 기업에 근무하는 전문가의 영어 수준은 거의 원어민 수준이었다.

그녀의 원어민 같은 유창한 영어에 나도 당황하고, 의뢰인도 당황했다.

의뢰인이 물었다. “혹시 통역이 필요한 게 맞는가?”

전문가는 통역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본인이 요청 시 통역을 부탁한다고 했다.

어제와 같은 상황이었다. 질문은 모두 알아듣고 답변을 통역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이날의 전문가는 어제의 전문가와 달랐다.

질문을 듣고, 일부 질문은 나에게 "해석 한번 해주시겠어요?"라고 물으며 본인이 이해한 것이 맞는지 중간중간 확인했다. 정확한 답변을 위해 본인이 이해한 것이 맞는지 나와 맞춰 보는 것이었다.

내가 통역하는 동안 꼼꼼히 살피고, 추가적인 내용이 있을 경우 간단한 내용은 본인이 영어로 추가하기도 했다.

질문을 듣고 바로 답변하지 않고 멈칫하면 전문가가 이해가 안 되는 것으로 여기고 얼른 치고 들어가 통역을 해서 전달했다.

그런 나의 성향을 알고, 한 번은 질문을 받은 후 잠시 멈추는 순간 나에게 “지금 제가 답변을 정리하느라 잠시 멈춘 거예요. 질문 이해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어제와 똑같은 상황이었지만 어떤 문제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가 보여준 태도는 전문가로서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를 아주 명확하게 알려주었다.

그녀는 본 미팅의 목적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있었다. 미팅의 목적은 정보의 전달이다. 의뢰자가 알고 싶은 건 정확하고 제대로 된 정보이다. 이 정보를 제대로 Give & Take 한다면 서로 만족한 미팅이 되는 것이다.

아마도 외국계 근무를 하는 그녀에게서 영어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고 사람들이 놀랄 만한 능력이 아닌 하나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녀가 통역을 요청한 이유는 아마도 본인의 정보를 정확히 전달될 수 있는가에 대한 우려에서 나온 대비였을 것이다.

에이전트와 이 문제에 대한 논의 후 알게 된 점은 영어가 일반적인 역량이 아니라 아주 큰 역량으로 취급되는 국가에서 가끔 나타나는 전문가의 문제점이라고 했다.

한국의 경우 영어를 잘하면 아주 큰 능력으로 인정받는다.

내가 가진 전문 분야가 없음에도 영어를 잘한다는 것만으로 누구보다 쉽게 인정받을 수 있다.

내가 이런저런 일을 한다고 사람들에게 이야기해도 사람들은 통역사라는 직업만 기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확실히 한국에서 영어는 상당히 큰 역량이 속한다.


그날의 전문가와 같이 본인이 발휘해야 할 정보의 중요도를 넘어 영어 역량을 드러내고 싶을 경우 이러한 잠재 문제가 발생한다.

전문가는 전문성으로 돈을 받는다. 분명 영어를 잘한다는 것은 더 큰 부가가치를 준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지금 현재의 대화에서 목적과 중요 가치가 무엇인지 잊지 말아야 한다.


소통의 역할인 나 또한 회의의 목적을 잊지 말고 그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필요시 단호함을 가져야 한다. 누군가를 배려하느라 목적을 잊은 행동은 결과를 망친다.

맛있어야 맛집이지 멋있어야 맛집이 아니다.

맛과 멋이 함께 하면 최고다.

하지만 여전히 맛집은 맛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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