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이 많은 이 상가 건물 1층에는 야채 가게가 있다. 슈퍼보다 저렴하다.
이 건물 병원에 오면 꼭 들르는 곳이다. 주차료가 있는 건물이라 저렴해도 상가 내 다른 볼일을 볼 때 만 들르게 되는 곳이다.
저렴한 야채와 과일들을 사는데 대파를 세일한다. 한단에 500원.
끝이 약간 말라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상태가 괜찮아 보이는 파 한단이 500원이다.
할인 파라 인기가 좋았는지 두 단 밖에 안 남았다.
나는 얼른 파 한 단을 집어 들었다.
주인아저씨가 두 단 남은 파에서 한단을 집어 드는 나를 보고 남은 파 한 단도 그냥 가져가라고 한다.
갑자기 500원에 파 두 단이 생겼다.
“아저씨 엄청 저렴해서 잘 팔릴 텐데 왜 덤으로 주시나요?”라고 물었다.
주인아저씨는 “할인하는 상품이 하나만 남으면 아무도 안 가져가요”라고 했다.
저렴한데도 불구하고 하나만 남으면 왜 안 사는 걸까?
나라면 하나만 남아 있는 할인 파를 샀을까?
시장가로 따지면 요즘 파 한 단에 2000원 정도다. 파 한단이 약간 끝이 말라 있고 오래돼 보인다고 해도 여전히 대부분 멀쩡하다면 500원이라는 가격은 정말 파격적인 가격이다.
처음 500원짜리 할인 파가 가득 놓여 있었을 때 서로 가져갔을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싱싱한 할인파로 골라서 모두들 기분 좋게 사갔을 것이다.
빨리 살수록 싱싱한 파를 가져갈 수 있다.
할인파에서는 나름 품질 경쟁이 심하다.
약간의 품질 차이로 파는 선택되거나 남는다.
그렇게 팔리고 남은 파 두 단.
거기에서 나는 둘 중에 그나마 싱싱해 보이는 파를 선택했다.
그럼 남은 한단은 할인파 중에 가장 못한 놈이다.
한마디로 할인파 중에 가장 품질이 안 좋은 파다.
내가 할인 파를 사고 싶은 손님이라면, 이 가장 못한 놈을 사고 싶을까?
뭔가 다들 더 좋을 것을 사 갔을 것 같고, 이 남아 있는 파 한 단은 가장 못한 놈이고 그걸 내가 산다는 것은 뭔가 좀 찜찜하긴 하다.
파 고유의 가치는 500백 원 이상인데 먼저 산 사람들이 나보다 더 많은 가치를 가져갔을 것을 생각하면 뭔가 나는 가장 못한 가치를 가져가는 것 같은 기분은 별로다.
저렴한 가격에 그래도 먹을 만한 할인파가 혼자 남아 제 가치를 못하고 있다.
품질 경쟁은 저렴한 제품 시장에서 치열하다.
저렴한 파들 사이에서 경쟁하다 선택받지 못한 마지막 남은 할인파
그렇다면 혼자 남은 이 할인파가 싱싱한 파, 할인하지 않은 원가파들과 함께 있었다면 어땠을까?
싱싱파에게 품질은 기본이다.
할인파로는 싱싱파의 품질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
하나 남은 할인파가 싱싱파 옆에서 할인 가격을 붙여 두었다고 하자.
누군가는 상태를 확인하고 계산을 두드려 봤을 것이다.
“어차피 파는 한단 사면 먹다 시들어서 반도 못 먹어! 여기 끝이 말라 있는 부분 끊어 내고 나면 아래는 싱싱하네! 근데 다른 파에 비해 1/4 가격이네! 한 개 밖에 없네 얼른 사야지”
할인 가격을 좋아하는 나는 얼른 샀을 것이다.
똑같은 파가 어디에 누구와 함께 있는가에 따라 갑자기 덤으로 거저 주는 존재가 되었다가 가성비를 따지는 고객의 1순위가 되기도 한다.
싱싱파 옆에서는 그 품질을 따라잡을 수가 없다. 그럼 가격의 차별화로 고객에게 선택될 수 있다.
그럼 할인 파는 그냥 그렇게 싱싱파 사이에서 가격으로만 승부해야 할까?
할인파를 깔끔하게 다듬어 자른 후 1인용 식자재처럼 포장하여 판매한다면 어떨까?
할인파를 다듬으면 아마도 소 포장 3개~4개는 나올 것이다.
깔끔하게 손질된 1인용 손질파 소포장이 500원이라고 해도 괜찮은 가격으로 보인다.
사람들에게 인식되는 상품/서비스의 가치는 상대적이다.
다른 제품/서비스와 비교할 때 쉽게 선택하고 그 비교 대상이 머릿속에 없다면 선택이 어렵다.
또한 어떤 상태로 진열 또는 브랜딩 되어 있는가에 따라 가치 인식은 달라진다.
시장의 가격은 절대적이지 않으며 이렇게 상대적이다.
덤으로 따라온 파 한 단에 공감하며 나는 어떤 시장에서 포지셔닝을 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본다.
1. 나는 내가 가진 고유의 품질을 파악하고 있는가?
2. 혹시 나는 할인파 안에서 품질 경쟁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3. 할인파 속에서 약간의 더 나은 품질로 내가 싱싱파라 착각하고 있지는 않는가?
4. 싱싱파의 기본 품질을 갖추고 있는가?
5. 내가 있는 시장(싱싱/할인)에서 경쟁파 대비 내가 가진 강점은 무엇인가?
6. 내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차별점과 브랜딩 방법은 무엇인가?
시장이 변하고, 더 좋은 서비스가 지속적으로 나온다. 싱싱파는 가만히 있었는데 어느 순간 할인파가 되어간다. 다듬고 자르고 손질하지 않으면 결국 시든 파 속에서 팔리지 않는 최후의 할인파가 되어버린다.
덤으로 받아 온 시든 파를 보며 오늘도 생각해 본다.
나는 더 쪼개고 자르고, 깎아 내고 다듬어 가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