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 독일 출장의 깨닭음

변화하는 중입니다.

by 김지혜


독일 출장,

밖에서 마스크를 낀 사람을 찾을 수가 없다.

버스나 열차에서는 반드시 마스크를 써야 하지만 외부를 돌아다닐 때는 아무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다.

심지어 나는 거리에 인적인 드문 시골 마을에 와 있다.

아무도 다니지 않는 거리에서 난 내가 마스크 쓰고 있다는 것을 가끔 잊어버린다.

이곳 유럽에서도 코로나는 여전하다. 한국이나 중국이나 똑같이 엄청난 수의 확진자가 발생한다.

하지만 유럽인들은 너무 편안해 보인다.

이젠 그냥 감기와 별 차이 없다는 반응이다.

난 여전히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허전하다. 이젠 마스크를 벗은 내가 뭔가 하나 덜 입은 듯 부끄럽다.

같은 병인데 왜 이렇게 다르게 바라볼까?


첫 번째 유럽인들과 내가 가장 다른 점은 일을 할 수 있는가 없는가 이다.

워크숍 내내 마스크를 하지 않는 그들 가운데 마스크를 쓰고 있는 난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그럼에도 마스크를 쓰는 이유는 혹시 코로나에 걸려 이곳에서 격리되거나 한국으로 돌아가서 격리 상황이 될까 두렵기 때문이다.

격리라는 상황은 내가 하고자 했던 것을 못하게 한다.

회사를 다닌다면 회사에 갈 수 없고 일을 할 수 없다.

학생은 학교에 갈 수 없다.

우리는 그렇게 계획된 무언가를 못하게 되는 상황이 불편하고 두렵다.


곧 시험인 아이가 코로나 확진으로 일주일간 집에 있었다.

아이가 확진이 나오기 전 목이 아파서 학원을 하루 쉬겠다고 학원에 연락을 했다.

선생님의 반응은 “오늘 모의고사인데 어떡하죠?” 라며 주말 모의고사를 치러 가능하면 잠시 학원에 왔다 가라고 했다.

그게 얼마나 중요하길래 아이가 아프다는데 와서 시험을 보라는 걸까?

확진이라는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그냥 약간 목이 아픈 상태라고 생각했다.

어떡해 아이가 학원에 가서 시험을 칠 수 있을까 학원도 고민하고 아이도 고민했다.

X 세대인 나는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모두 개근상을 받았다.

다른 상을 받지 못하는 나에게, 졸업식 때 받을 개근상은 아주 중요했다.

아파도 학교에 갔어야 했고 그건 당연했다.

학교 생활 12년간 초등학교 4학년 딱 한번 난 아파서 조퇴했다.

열이 나는 나를 보고 선생님이 조퇴하라고 했다.

내가 움직일 수 있다면 아파도 학교는 가는 곳이었다. 그게 당연했다.

아픈 내가 가진 감기 바이러스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르고 학교에 간다면 감기는 여기저기 친구들에게 전염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학교에 갔다.

비염이 있는 첫째 아이는 계절이 변할 때마다 콧물, 재채기, 목이 불편함을 느낀다.

이젠 그런 알레르기 증상에도 학교에 오지 말고 집에서 쉬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불편한 건 누굴까?

쉬어서 신난다는 아이도 있지만 수행평가를 못 봐서, 수업을 못 들어서 걱정인 아이도 있다.

시험을 못 치면 전체 시험의 평균점수를 받는다. 내가 성적이 낮은 아이라면 좋을 것이고, 성적이 높은 아이라면 억울할 것이다.

열심히 사는 학생이라면 아프지 말아야 한다. 아프면 나만 손해다.

결국 더 나은 솔루션이 필요하다.

격리 상태로 회사에 가지 못하는 직장인은 어떤가!

회사에 가지 않으면 그 많은 일들이 진행이 안되고 그것들을 누군가 다른 사람들이 감당한다.

원격 근무라는 것을 해보지만 여전히 회사에서 일을 하는 것만 못하고 답답하다.

다시 회사로 돌아간다면 공백에 대한 부담이 있다.

지금 워크숍에 참여하는 이 많은 유럽인인들은 그럼 일에 대한 걱정이 없나?

일단 그런 걱정 따윈 없어 보인다.

예전 오스트리아에 출장을 갔을 때 우리가 만나서 회의를 해야 하는 친구가 아파서 회사에 나오지를 않았다. 분명 스케줄을 확인하고, 한국을 출발하기 전에 그와 미팅 약속을 잡았는데 그 사람은 회사에 아프다고 나오질 않고 있다.

그의 상사에게 그가 언제 오는지 물었지만 알 수 없다고 했다.

그의 컨디션이 다시 좋아지고 몸이 괜찮아져야지 회사에 나온다고 했다.

우리는 그곳에 10일 이상을 머물렀지만 한국 귀국 이틀 전에 겨우 만났다.

이곳 유럽에서는 아프면 회사에 오지 않는 것, 당연하다.

코로나에 걸려서 격리를 해야 한다면 감기에 걸려서 회사에 오지 않는 것과 뭐가 다를까?

우리도 이제는 안다.

내가 회사에 일주일 정도 안 간다고 해서 회사가 망하지 않는다.

나 없이도 잘 굴러가고 약간의 불편함을 보이던 동료들도 금방 적응해 간다.

이젠 모든 조직과 회사와 내가 이런 상황을 한 번쯤 경험했다.

충성을 다하던, 아파도 출근하던 회사는 사실 내가 없어도 잘 굴러간다.

섭섭하기까지 할지 모르는 이 상황은 이제 자연스러운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우리는 알아차렸다.

누군가 없다면 그 일을 누군가는 해야 한다.

준비되지 않은 우리는 전화를 건다. 카톡을 한다. 그리고 묻는다.

“그건 어떻게 처리해요? 집에서 결제 가능하신가요? 그 자료 좀 보내 주세요! “

내가 해오던 일이 무엇인지 정의되어 있어야 하고,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다면 누군가 그것을 이해하고 일을 받아서 해줄 수 있어야 한다.


상세 Job description (업무 기술서) 바로 그들은 있고 우리는 없다.

내가 일을 잘하면 나에겐 점점 더 많은 일들이 몰려온다. 어디까지가 내 일인지 두리뭉실하게 되어 있는 내 업무 기술서는 언제나 한계가 없다.

누군가는 일을 잘 못하는 인간이라면 우리는 일을 맡기지 않는다.

그럼 그 사람은 더 편하게 회사 다닌다.

우리는 성장할 수 있는 기회, 더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라고 스스로 위로하고 다독이며 일 잘하는 누군가는 그 억울 함을 참아낸다.

하지만 일 잘하는 누군가에게도, 일 못하는 누군가에게도 코로나는 찾아온다.

누군 없으면 너무 힘든데 누군 없어도 괜찮았다.

일 잘하는 누군가 없는 상황의 그 불편함을 줄여야 하고 남은 누군가는 해야 한다.

업무에 대한 상세 기술서는 이런 상황에 그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도와준다.

그들의 업무 기술서와 매뉴얼은 당연하다.


미국 사모펀드사가 한국의 기업을 인수하고 관리팀을 해고할 때 통역을 지원한 적이 있다.

변호사와 사모펀드사 대표가 호텔의 한 회의실에서 상무를 해고하고 퇴직 위로금 협상을 진행했다.

해고와 법적 절차까지 마무리하는데 채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미국인 사장은 그 상무에게 1시간을 줄 테니 회사에 돌아가 동료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물건을 정리해서 가면 된다고 했다.

미국에서는 누구든 즉시 해고하고, 누군가 갑자기 사라지는 불편함이 한국만큼 크지 않다.

한국에서 사원으로 일하며 퇴사해도 업무 인수인계를 하는데 최소 1주일 이상 걸린다.

말로 설명하고, 방법을 알려준다.

어디에도 그 정리된 사항은 없었다.

나 또한 그렇게 인수인계를 받았다.

이런 정의되지 않은 내 일들을 누군가에게 인수인계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시간이 걸린다. 내가 해오던 일의 범위를 어쩜 나만 잘 알고 있을 수 있다. 내 업무의 사이클을 돌려봐야 그 일들은 하나하나 드러나게 된다.

많은 고용 계약서에 퇴사 석 달 전, 한 달 전 사전에 알려줘야 하는 이유 중 하나도 인수인계와 업무 효율성 때문이다.

코로나를 겪은 조직과 회사는 우리보다 빠르게 알아차린다.

원격으로 일을 해도 괜찮게 만들어야 하는구나!

사람들이 올 수 없다면 로봇으로 작업하도록 만들어야 하는구나!

사람들과 접촉하는 게 두려워서 판매할 수 없다면 키오스크를 만들어야겠구나!

누군가 하나쯤 사라져도 일을 지속할 수 있어야 하는구나!

정보는 공유되어야 하는구나!


그런 회사나 조직의 변화가 이어지고 있다.

느려 보이지만 사실 느리지 않다.

어떤 시스템이 마련되는데 까지 시간이 걸릴 뿐이다.


그 적응에 빠르게 대응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못한 건 바로 개인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그에 맞춰 조직도 애를 쓰지만 여전히 그 상황이 불안한 건 한 개인이다.

여전히 내가 없으면 안 된다고 느끼는 일을 하고 싶다.

내가 하는 일에 중요한 사람이고 싶다.

대체 불가능한 인력이고 싶다.

그 일을 내가 가장 잘 해내서 나의 성과와 업무가 더 빛나길 바란다.


유럽인 들과의 워크숍에서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그들은 경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젤 잘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해내면 된다.

순위 따위는 없다. 누가 이기고 지는지에 대한 결과물은 없다.

교육을 받는 참여자들이 기본 규칙(Ground rule)을 정하는 시간이었다.

각 그룹별로 7개의 룰을 정한다. 그런 다음 다른 그룹의 룰과 취합하여 규칙을 7개로 줄여야 한다. 즉 두 개의 그룹에서 나온 14개의 룰을 7개로 만들어야 한다.

내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14개의 룰에서 7개로 줄이기 위해 어떻게 결정하는 가였다.

투표를 해야 하나, 손을 들게 해야 하나? 서로 자기의 의견이 선정되지 않는 것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선호하는 다수결의 원칙이 가장 합리적일 것이다. 내 머릿속에는 모두가 인정하고 기분이 덜 상하는 의사 결정법을 생각하느라 복잡했다.

하지만 어떤 의사 결정도 하지 않았다.


각 그룹이 정한 룰들을 서로 검토하고 더 큰 의미로 확장해서 그들은 모든 의견을 표함 하는 새로운 룰을 만들었다.

예를 들어 Active participation (활발한 참여)와 Proactive in a program이라는 의견은 투표 없이 함께 취합되었다.

그들은 Active participation (활발한 참여)에 Proactive in a program이라는 룰이 포함될 수 있는지 의견을 나누고 동의하였다.

만약 동의하지 않는다면 더 큰 의미의 룰을 다시 만든다. 예를 들어 Proactive participation in a program처럼 말이다.


매번 삶에서 경쟁에 노출된 한국인에게는 나의 의견이 채택되거나 내가 이기는 상황에서도 상대를 염려해야 한다.

이기는 것도 남들보다 튀어 힘들고 지는 것도 힘들다.

아름다운 패배는 없다.

그건 성공했을 때야 인정받고 언급되는 성공을 위한 단계이다.


누군가와 대면하지 않고 일을 하는 내가 누구보다 앞서는지 뒤지는지 제대로 발맞춰 가는지 매번 염려한다.

내가 부족하면 묻어갈 수 있었고, 내가 뛰어나면 누군가 묻어가려는 게 얄미웠다.

이젠 모두가 각자 혼자 해내야 한다. 다시 모두 모여 일을 하게 되더라도 언제 다시 내가 없는 상황이 될지 모른다.

조직은 그 순간을 준비하고 있다.

조직의 일원이건, 학교의 학생이건 이젠 내가 오롯이 혼자일 수 있나!

가장 늦게 변하는 건 결국 나다.


https://www.youtube.com/c/thewiser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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