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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Fly Dec 12. 2018

1. 엄마가 준 별명

- 나는 망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TV를 산 건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에서 고학년으로 올라가던 때였다. 그 바보상자를 보기 전에는 아빠를 따라 매일 책만 읽었다. 하도 같은 책을 읽어서 모두 외울 정도여서 슬슬 지겨워지던 참이었다. 그러니, 움직이고 말도 하고 심지어 매일 내용이 바뀌는 방송을 처음 영접했을 때 어떠했겠는가. 그날부터 나는 방학숙제용 독후감을 써야 할 때를 제외하고는 책과는 담을 쌓아버렸다.


TV에 빠지게 된 이유는 또 있다. 나는 오빠와는 십 년, 언니와는 육 년 터울이라 같이 놀아줄 형제가 없었다. 물론 친구들과 놀기도 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저녁식사를 할 즈음이 되면 아이들을 집으로 소환시키는 “XX야, 밥 먹어!”라는 마법을 부릴 친구들의 엄마와는 달리 우리 엄마는 늦게 들어오셨기에 그럴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 중 아빠는 엄마보다 항상 일찍 오셨다. 그 시절만 해도 여자인 언니와 나 둘 중에 하나는 아빠 저녁상을 차려 드려야 했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그게 너무 싫었다. 한창 놀 시간에 들어와서 저녁을 차려야 한다니 말이 되냔 말이다. 남녀 불평등과 성차별, 그리고 또 뭐냐, 성 역할에 대한 회의를 아주 어릴 때부터 갖게 된 건 이런 연유에서다.


퇴근이 늦은 엄마는 거의 매일 술에 취해 집에 왔다 - 이 사연은 다음 기회에 털어놓을 기회가 있기를-. 그래 놓고 안 취한 척하는 엄마가 미웠고, 불같은 성질의 아빠와 맞서 싸우는 것도 싫었다. 당시에 두 분은 모두 음주와 흡연을 하셨다. 내 코가 개코가 된 건 그 때문이다. 그 시절에는 내 부모가 아니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던 적이 있을 정도로 그들이 내뿜는 매캐한 공기와 술 냄새가 정말이지도 너무 싫었다.




하지만, 이런 갈등은 텔레비전을 켜는 순간 모두 꺼져버린다. 아니, 내가 주변의 소음을 차단해 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때는 학교를 마치고 집에 와서 잘 때까지 눈이 빠지게 텔레비전만 들여다봤다. 심지어 배도 안 고파서 알약이라도 있으면 했다. 너무 집중해서 보느라 누가 오는지도 모를 정도여서 엄마에게 등짝을 맞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주말이면 하던 외화 시리즈도 줄줄이 시간대를 외우고 있었다. 당시에는 3개 채널만 존재했다. 슬프게도 공중파 방송은 하루 종일 프로그램을 방영하지 않았는다. 오후 5시 반에 애국가로 시작해서 애국가를 4절까지 웅장한 합창으로 보여주던 화면은 갑자기 총 천연색 막대기를 보여주면서 그 날을 마감한다. 자야 한다는 게 슬펐지만, 누워서 그 날 본 프로그램을 바둑처럼 복기하기도 했다. 여전히 나는 TV에 목이 말랐다. 그러던 나에게 신이 선물을 주셨다.




당시 나는 4학년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도착하면 2시 반 정도가 된다. 혹시나 방송을 하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브라운관 오른쪽에 붙어있는 둥근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영상이 나오는 채널을 발견했다. 주한미군방송 AFKN-AFN이라고 바뀌었다가 지금은 없는 것 같음-을 발견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게다가 영어였다! - 내가 아는 외국어가 영어밖에 없어서 단정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 방송이 시작하는 5시 반 전까지 약 세 시간 동안 두 개의 드라마가 연속으로 방영된다. 흔히 soap opera라고 하는 막장 일일 연속극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이름도 유명한 전설의 Guiding Lights와 General Hospital을 매일 틀어주었다! 생각해 보면 초등학생이 보면 안 될 키스신과 베드신이 난무하는, 주인공만 수십 명으로 이루어진 이들이 파트너를 바꿔 가며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민 소희는 점이라도 찍고 나오지, 얘네들은 뻔뻔하기 이를 데가 없다. 그러나 당시의 나는 하나도 못 알아들으면서도 배우들의 표정과 스토리, 무엇보다 키스와 사랑하는 장면에 스토리 전개를 절로 알 수 있었다.


내가 영어를 좋아하게 된 이유도 TV 때문이다. 당시의 영어교육 순서는 쓰기-읽기-말하기 순서였는데, 나는 TV를 보면서 거꾸로 배웠다. 배우들의 발음을 따라 하고 어느 정도 익숙해진 단어를 찾아보고 써보는.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방법이었지만 나름 단점이 있었다. 문법을 배우면서 갈등이 많았기 때문이다. 회화체에는 비문이 많았는데 그 부분을 문법에서는 인정하지 않으니 문법 문제만 나오면 족족 틀렸다. 중 2부터 시험 점수와 직결되면서 문법을 암기했는데 그때부터 영어 성적만큼은 안정권이었다.


하지만, 더 깊이 내려가 보면 어린 나는 너무 외로웠던 거 같다. 어리광 피울 엄마도 없고, 같이 놀 언니도 없으니 TV가 그 역할을 했던 것이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TV 앞에 바짝 다가앉아 보고 있는 나에게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넌 그렇게 TV만 보다가 망할 거야.”어떤 날은 정말 나 자신도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도 조금만 더 하면 되는 데, 연속극 본다고 그만 했다. AFKN을 알고부터는 친구들과 노는 게 더 이상 재미있지 않아서 항상 바로 집에 왔다. 더 재미있는 게 있는데 뭐하러 시간낭비를 한담.


나는 바보상자에 멈추어 있지 않았다. 다음 날 학교에 가면 한국 드라마든 예능이든 상관없이 못 본 애들에게 분량만큼 똑같이 얘기해줬다. 내 이야기를 들으며 꺄르륵 거리는 애들의 표정 때문에 나는 더 열심히 TV를 봤다.


세월이 이만큼 흘렀는데도 나는 여전히 약속이 없는 주말이면 하루 종일 TV를 켜놓고 있다. 중독증상은 많이 나아졌지만 좋아하는 드라마나 예능 방송은 봤던 걸 또 보고, 그것도 모자라 다시 보기 무료방송을 또 찾아본다. 약속 때문에 못 본 경우에는 돈까지 내가며 본다.


이젠 엄마가 안 계시지만 가끔은 내가 생각해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TV를 보고 있으면 문득 '망할 년'이라는 소리가 뒤통수에 울리는 것 같다. 자신있게 말하건대 나는 폭삭 망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아주 성공하지도 않았다. 나의 상상력은 모두 TV 덕분이며 그래서 이렇게 쓰는 게 즐겁다. 그러므로 나는 여전히 TV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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