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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Fly Dec 19. 2018

7. 아빠와 손을 잡고

JTBC에서 방영했던 ‘강남미인’은 내가 좋아하는 소재의 드라마가 아니었다. 제목 자체로 주제가 뭐인지 뻔하고, 못 생긴 아이가 성형으로 변신하여 자신감을 찾게 되는 과정이라는 뉴스 기사는 내 예상과 일치했다. 또, 유명한 웹툰이 원작이기에 영상으로 옮기는 데에는 '치즈 인 더 트랩'이 그랬듯이 한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우연히 재방송을 본 이후로 끝까지 보게 된 이유는 상상하지 못했던 깊이가 있어서였다.


성형 전 주인공이 별명은 '오크'라는 독백이 나오는 데 오크 그림자로 그녀의 모습을 나타내는 장면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사람들이 놀리자 스스로도 본인의 그림자를 오크로 보는 설정은 자존감이 얼마나 중요한 지 말해준다. 성형을 하면 자존감도 높아질 줄 알았지만, 못생겼던 과거가 발목을 잡고 있어 그녀는 여전히 열등감에 빠져 있다. 사람들이 예뻐서 쳐다보는 것도 성형한 게 티 나서 쳐다보는 거라고 착각한다. 조금 자신감을 찾으려고 용기내는 순간엔 모르는 남자가 어제 강남 클럽에서 재밌게 놀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그 남자는 아니라고 울듯이 외치는 그녀에게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상하다, 분명히 맞는데.” 성형미인들이 대부분 비슷하다는 걸 비꼬고 있다. 뻔한 장면들도 나오지만 중간중간의 현실적인 부분들과 대사들, 그리고 각각의 인물들이 내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사람마다 꽂히는 부분이 다르겠지만 내게 가장 좋았던 부분은 딸과 아빠의 이야기이다.


자기 딸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줄 아는 보수적인 아빠는 택시기사이다. 아빠는 운전석 창문 어딘가에 성형전 딸의 사진을 달고 다닌다. 타는 손님들에게 딸을 자랑하지만, 손님들은 경악하는 표정을 짓거나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비웃는다. 아빠 눈에만 예쁜 딸은 그 현실이 너무 힘들지만 아빠는 이해하지 못한다.


주인공은 자신을 이해해주는 엄마와 함께 성형외과에 가서 성형수술을 감행한다. 하지만 아빠에게 거짓말한 대가는 너무도 컸다. 캠퍼스에서 우연히 만난 딸을 알아보지 못한 아빠의 모습에 주인공은 좌절하고, 결국 성형수술 사실을 알게 된 아빠는 분노하며 택시 안에 걸어두었던 딸의 사진을 떼어 버린다.


아빠는 성형한 딸을 만나기를 거부했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은 지치지 않는다. 자신의 얼굴을 보기 싫어하는 아빠를 위해 뒷모습을 사진 찍어 보낸다. 아빠는 그 사진들에 조금씩 무너져 내린다. 신체 전체에서 얼마 차지하지도 않는 얼굴 하나 고쳤을 뿐인데,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해 보였을까. 결국 마음을 연 아빠는 딸을 받아들이게 되고, 성형 후 사진을 택시 안에 걸어놓는다. 하지만, 칭찬인 줄 알았던 '강남 미인'이라는 말이 욕이라는 걸 알았을 때, 아빠와 엄마는 앞으로 딸이 헤쳐나가야 할 난관을 걱정한다. 어느 저녁 아빠는 성형한 딸과 길을 걷는다. 키가 큰 딸은 자신보다 작은 아빠의 손을 잡고 씩 웃는다. 그 장면에 나와 우리 아빠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버렸다.


서울에 올라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라 미취학 상태였던 나는 아빠와 빈집에서 놀던 기억이 많다. 아빠는 이야기꾼이었다. 가난한 시절이어서 책살 돈은 없었지만 아빠는 구연동화가처럼 나에게 매일 동화를 이야기해줬다. 전래동화를 책으로 읽은 적이 없지만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빠 덕분이다. 처음으로 짜장면을 끓여줬던 사람도 아빠였고, 설거지하기가 귀찮을 때는 신문지를 구겨 닦으면 된다는 걸 가르쳐준 것도 아빠였다. 첫 생리를 시작했던 날, 생리대를 사 오라고 한 엄마와 달리 내 마음을 다독여준 사람도 아빠였다. 산을 탈 때 발을 십일 자로 두지 않아야 넘어지지 않는 것도, 멀리뛰기할 때는 바로 앞을 보는 게 아니라 멀리 봐야 한다는 것도, 이어달리기할 때 바통을 연결해주는 방법도 아빠에게 배웠다. 아빠는 잘 안아줬고, 농담도 잘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나는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우리집이 얼마나 못 사는지 깨달았던 언니와 오빠와는 달리 불행했던 기억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엄마보다 아빠와 손잡고 다니는 게 자연스럽다. 아는 사람은 안다는 어른이 아이의 손을 잡는 형태가 있다. 어른의 손등이 앞을 향하게 하고 아이의 손등을 감싸는 모습이다. 항상 아빠 손에 이끌려 다니던 내가 어느 날부터인가 아빠가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던 키 ‘백육십이쩜오'를 내가 넘어버리자 그렇게 잡으면 불편해졌다. 그래도 그때는 참을만했다.


하지만, 내 키가 165센티미터가 되자, 아빠가 잡은 내 손이 영 어색했다. 많이 불편해져 버린 것이다. 나는 과감하게 손을 빼 방향을 바꿔 아빠의 손등을 감싸 쥐었다. "이제 편하네"라면서 농담하듯이 그렇게 슬쩍. 보호자의 역할이 바뀐 것만 같았다. 더 이상 아빠는 자식을 끌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시점이 온 것이다. 그순간 아빠의 입에서 짧은 헛웃음이 나왔다. 안도감이었을지, 아쉬움이었을지 지금도 모르겠다.


매년 첫눈이 오면 아빠는 자식들에게 전화를 걸거나 문자를 보냈다. "XX야. 첫눈이 오네. 사랑해, 우리 딸."이라고. 바쁘다가도 문자를 받으면 창밖을 바라보게 되는데, 잠시나마 평화로워진다. 문자를 받으면 나는 곧바로 "응. 여기도 눈 내려요. 나도 사랑해요."라고 답장한다. 문자 한 통 보내놓고 얼마나 기다릴지 잘 아니까. 올리브 채널의 ‘밥 블레스 유’의 어느 편에서 이영자가 막내는 항상 안쓰럽다고 하길래 고개를 갸웃거렸다. 막내는 부모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데 뭐가 안쓰러울까? 그녀의 “부모님과 가지는 시간이 제일 짧으니까”라는 설명에 멍하니 TV를 보다가 코끝이 찡해지면서 눈물이 솟구쳤다.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오빠와 언니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부모님에게 더 사랑받았고, 그들이 겪었던 '찢어질 정도로 가난했던' 시절이 상대적으로 짧았기에 더 행복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오빠와 언니가 나보다 더 많은 시간을 부모님과 보낸 게 미치도록 질투가 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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